
1992년 4월 29일 오후 당시 최영호 LA 라디오코리아 부사장은 퇴근길에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매질한 백인경관 4명이 무죄평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13개월 전인 3월 3일밤 술 취해 운전하던 로드니 킹을 백인 경관들이 정차시켰다. 이 청년이 반항하자 경관들은 알루미늄 방망이로 50여차례 매질했다.
뭔가 일이 터지겠다는 것을 감지한 최 부사장은 방송국 직원들에게 전화해 퇴근하지 말라고 지시한 후 본인도 방송국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뉴욕에 소재한 한인역사 보존단체인 KoreanAmericanStory.org는 지난 24일 4·29 폭동 25주년을 맞아 당시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중 한명이 최영호 라디오코리아 부회장.
인종차별과 불공평한 사법체제에 대한 분노, 피해의식과 좌절감으로 불만이 차오른 흑인들에게 이 평결은 기폭제가 되었고 사우스센추럴 일대는 순식간에 무법천지가 되었다. 폭도들은 북으로 밀고 올라와 코리아타운을 습격했다. 불길이 치솟아도 소방대는 오지 않았다. 폭도들이 떼지어 가게들을 약탈해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라디오 코리아는 방송을 통해 사고가 있으면 방송국으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전화들이 오기시작했다. 리쿼스토어인데 폭도들이 쳐들와 불태우고 있다고. 옆 가게도 쳐들와 다 훔쳐가고 있다고. 어떻게 하냐고.
라디오 코리아는 가게도 중요하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다며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집으로 돌아간 한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와 피땀흘려 일군 가게가 어떻게 되었는지 불안해 했다
다음날인 4월 30일. 당시 수퍼마켓을 운영하던 하기완 상공회의소 회장이 방송국을 찾아왔다. 권총을 꺼내 최 부사장의 책상에 놓으면서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고 몰아부쳤다. 어떻게 만든 한인타운인데..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하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면 한인타운은 없어집니다. 밖은 전쟁입니다. 우리가 만든 한인타운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당시 경찰도 안오고 소방차도 안오니 우리가 총을 들고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총 쏘는 것이 가능하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라디오 코리아는 그 때부터 방송 내용을 바꿨다. ‘우리 타운 우리가 지킵시다’ 한인들은 친구들을 불러 총을 들고 나와 가게를 지켰다.
다음 일주일 동안 라디오코리아를 중심으로 한인사회는 똘똘 뭉쳤다. 피해를 본 한인들이 보상을 어떻게 받느냐 전화로 묻의하니 공무원인 한인들이 재난부처인 FEMA에 연락해 한인타운에 임시 사무실을 설치하도록 하라는 조언을 했다.
임시 사무실 장소가 필요하다고 하니 방송국 옆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자기 건물을 쓰라고 오픈했다. FEMA 신청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한인 회계사들과 변호사들이 나섰다. 피해를 본 한인들이 먹을 식량이 필요하고 하니 한인마켓들이 쌀과 라면을 FEMA 임시 사무실이 될 한인교회로 보냈다. 식당들은 설렁탕을 만들어 보냈다.
이렇게 해서 라디오 방송국과 FEMA 임시 사무실이 있는 한인교회는 재난센터가 되어 한인들이 하루에 500여명까지 자원봉사로 모여들었다.
최 부사장은 이 폭동 속에 있던 한인 피해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 것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라디오코리아를 방문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한인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며 모든 것을 다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는구나라며 한인들은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현역 미국 대통령이 언론사를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최 부사장은 미디어에서 4·29 폭동을 한인과 흑인들 간의 갈등으로 보도하는 데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것은 흑백 간 갈등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한인사회가 낀 것이죠. 한인들이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본 것입니다.”
그는 4·29 폭동은 다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한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저부터도 미국에 와서 살고 있지만 늘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민자들은 그런 경향이 많은데 한국사람들은 더 심합니다. 그런데 이 폭동을 보면서 미국에서 살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인계 미국인(Korean American)이 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국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진정한 의미의 Korean American이 되어야 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정치력 신장도 해야 하고 투표도 해야 하고 말입니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