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한인사회

아시안들은 생각할 줄 모른다, 한국인은?

– 미시간 한인 사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키쇼 마부바니

대한민국이 2천 5백년의 역사 가운데 993회의 외침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약 90회 정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7차례, 고려 시대에 20차례, 삼국시대에는 약 50 차례에 고조선 때를 합치면 그 정도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국사 시간을 통해 이렇게 많은 외세의 침략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한민족의 끈기에 대해 배웠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있는 우리 민족의 생존력은 너무나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침략을 받으면서 침략을 받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 내지 못했을 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그렇게 많이 쳐들어 왔다면 또 쳐들어 올 것을 알았을 텐데 왜 미리 방비하지 못했을까? 왜 계속 약소국이라고 하면서 약소국에서 벗어나는 장기 플랜을 세우지 못했을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어서 일까, 한치 앞도 못 보는 근시안적인 국민이기 때문일까?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국제 시장’이란 영화를 통해 한국전을 통해 살아남은 한국 국민과 국가 재건을 위한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처절하고 근성 있는 삶이 조명되었다. 이 영화를 보신 한국의 아버지들이 눈물을 흘렸고 한국 사람에 대한 자긍심에 사무쳤다. 국민의 희생을 미화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속이 상했던 것은 왜 우리는 소 읽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국난을 어떻게 극복했느냐 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미연에 방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통렬한 자성은 왜 없는 걸까? 계속 당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 민족의 숙명이란 말인가? ‘당했는데 살아남았다’라는 사실이 후세들에게 남길 자랑거리인가 아니면 ‘당하지 않고 부강해 졌다’가 자랑거리인가? 생각해보면 분명히 후자일 것이다.

한반도에서 마지막 전쟁이 있은 지 65년이 지났지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천성은 여전하다. 최근 세월호 사태 때도 그랬고 지금 한국을 뒤집어 놓고 있는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한치 앞을 못 보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만 허둥대는 것일까?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으르렁대는 형상도 수십 년 전과 그대로다, 아니 2천 5백년 내내 약소국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혹자는 정치 지도자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 지도자들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수준이 높으면 정치인들도 그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아무렇게나 정치하도록 국민들이 방관하고 있는 것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뽑아 놓은 것도 국민이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상대가 된 것도, 속여도 아무 말도 못하는 국민이 된 것도 다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다. 한국의 국민들이 남의 일처럼 방관하지 말고 떨쳐 일어난다면 못 바꿀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복종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수긍하고 그냥 견디는 것이 미덕이란다. 당하는데 익숙해진 민족, 당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민족, 어디서부터 문제인가?

우리는 과연 생각을 할 줄 아는 국민인가?

1999년 5월 31일 ‘Time’ 매거진은 ‘It’s True. Asians Can’t Think’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신밍 셔우라는 기자는 싱가폴 정치인인 키쇼 마부바니가 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1,000년 전 송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서방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시안 들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했다. 이는 경제적인 파워나 엔지니어링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안 들이 원천적인 사고 즉 세계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오리지날’을 만들어내는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첨단 원자력 기술을 보유하고 일본이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어 내지만 이것은 서구에서 온 뉴톤의 물리학과 양자 역학을 원천으로 두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도 서구의 막시즘과 케인즈와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골드만삭스로부터 재정관련 조언을 받고 있다. 대만의 민주주의는 중국보다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서구의 복장을 하고 조인식에 참석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서구 정치 문화의 산물이다.

왜 아시안 들은 아시안이 최초로 개발한 독창적인 산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서방 국가에 정착한 아시안들은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는 결론을 내린다.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안들이 획득한 수많은 노벨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아시안 국가들의 지적 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나이를 중시하는 아시안 문화에서는 ‘브레인’보다는 ‘seniority’를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시안 국가의 학교들에서는 ‘사고’보다는 ‘암기’를 강요하고 대학이 사회를 주도하기보다는 사회상을 반영한 교육을 하고 있다. 교사들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부모님은 언제나 옳고, 정치인들은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이 안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행정부가 끌어당기는 사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마치 왕처럼 군림한다. 대통령이 능력이 없거나 표현이 진부해도 상관없다. 고급 공무원들은 과거 왕궁의 내시들과 비슷해 권위적이고 부당하며 무능하다. 공식석상에서 권위자에게 질의하는 것은 불손한 것으로 치부된다.

이 책은 유교적 사고를 깨뜨려야만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국가들에는 권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주장하는 생각과 민중의 신뢰 없이는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적 사고가 공존한다. 하지만 일본이 아시아 최대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유교적 기본 질서를 깨뜨렸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왜곡된 유교정신이 아시안들의 창조적 사고를 막았다고 주장한다. 홍콩 대학교 과학기술대학장인 유 치아웨이 박사는 순서와 질서를 강조하는 유교가 아시안들에게 독창성을 금기하는 본성을 기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모든 지식의 발전은 현존하는 틀을 부정하거나 수정하는데서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근본적 변화(paradigm shift)라고 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는 발전의 저해 요인인 것이다. 아시안은 이것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가 쓰여 진지 26년이 지났다. 지금쯤 아시안들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나? 그렇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제2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서방 세계의 상품을 모방했거나 개선한 것이 대부분이다. 상품뿐만이 아니고 비즈니스 패턴이나 기본 원리도 모두 서방의 원리를 도용한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삼성 전자가 이제는 반도체 생산 1위 기업이 되었고 현대가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가 되었지만 이 모든 것들은 서방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어 세계화 한 것은 많지 않다. 김치, 비빔밥 정도다. 서방에서 만든 스포츠에 열광하고 있고 서방이 만든 인터넷에 물들어 있다.

미시간 한인 사회는 생각하는가?

멀리 한국의 대기업을 비유할 필요도 없다. 미시간 한인 사회단체들이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를 보면 우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한인 사회의 대표 기관이라고 하는 한인회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한인회라는 이름아래 회장단과 이사진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회칙이 있어야 하고 모든 일은 회칙에 의해서 진행되면 된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차기 회장감이 없어 전전긍긍한다는 것은 이미 협회로서 존재 가치를 잃었다는 것이다. 공석으로 놔 둘 수가 없어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회장직을 맡다 보면 엉뚱한 결정을 내리기가 일수고 더 나아가 동포들의 관심이 떠나게 되니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민 생활에서 꼭 필요하지 않는 단체로 절락한 한인회를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까? 먼저 한인회는 이민 사회 동포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들으려는 귀를 가져야 한다. 한인회를 비즈니스로 본다면 손님들이 찾아와 사고 싶은 물건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 초기에 한인회가 제공하던 서비스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면 상품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관심을 가져 달라고 애원할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어젠다를 만들어 낸다면 관심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와 앤아버 한인회 회장과 이사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회장과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그 목표가 미시간 한인 동포들이 원하는 어젠다입니까? 5년 후 10년 후 50년 후의 미시간 한인사회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귀가 닳도록 들어온 뜬구름 잡기 식의 내용은 원치 않는다. 어떤 구체적인 어젠다가 있는지 그 어젠다들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가지고 동포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냉정하다. 아무리 한인회라도 비전이 남루하면 동포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한인 사회가 중요한 것이지 한인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인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한다면 대중들은 대체 역할을 하는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어젠다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여기에는 생각하는 파워가 필요하다. 회장단의 브레인이 부족하다면 최소한 들을 수 있는 귀와 청할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세네명이 모여 회장과 이사장을 임명하고 모양새만 갖추는 것 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반한 민심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때그때 회장 자리는 억지로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한인회는 지금보다 더 도태될 것이다.

회장이 누가 되는지는 이래서 중요하다. 먼저 모든 면에서 중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사로운 이해득실이 있거나 편파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면 전체를 아우를 수 없다. 개인적인 핸디캡을 덮기 위해서나 나쁜 평판을 잠재우기 위해 회장이 되었다면 한인 사회를 욕보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던 차에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으쓱대려는 생각이 있다면 곧 들통이 나고 만다.

미시간 타 커뮤니티의 단체들이 성공적인 것은 회장감이 일단 훌륭해서다. 전문성이 인정을 받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최소한 회장이라도 잘나다보니 그 사람을 보고 후원하는 기업이 늘고 네트워킹을 맺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인사회에서 신망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한인 회장직을 마다한다. 한인회의 가치와 이미지가 추락되어 있다 보니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을 담으려면 그릇이 깨끗해야 하는데 한인회를 ‘싸움터, 쓰레기장’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수기지다. 그래서 남들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회장 자리에 앉아 남들의 비웃음만 사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총리직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청문회가 8일부터 열렸다. 총리 후보를 검증하는 수준을 아닐지 몰라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따르는 사람이 생긴다.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아무나 시키면 그 협회는 계속 추락할 수밖에 없다. 또 냉정하게 말하면 회장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이미 그 단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예 없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잘못된 리더십이 들어와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오히려 이민사회에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꼭 한인회를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인회가 못하면 다른 단체들이 하면 된다. 하지만 한인회가 제대로 서주면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적이다. 협회의 기본인 이사진도 없고 달랑 회장이란 자리만 채워진 한인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른 의견이 듣기 싫다고 차단하고 좋은 소리만 해주는 매체만 주위에 둔다면 한인회라는 이름을 떼어내어야 한다. 한인회장이라는 타이틀이 권력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그냥 2년을 흘려보내면서 기다릴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체로 묵살하면 그만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심하게 들렸다면 한인회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먼저 생각을 하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서 함께 동참하자. 무조건적인 비방과 무관심은 더 나쁘다. 능력이 없는 것도, 분명히 희생인줄 알면서도 회장직을 맡은 사람들보다 못한 것이다. 한인회가 지지를 얻느냐 무관심을 자초하느냐는 한인회에 달렸다. 문을 닫으면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민심을 잃을 것이고 한인회가 문을 열면 속도는 느려도 민심을 얻을 것이다.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려는 겸손함이 있다면 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쉬운 길을 가느냐, 어렵지만 옳은 길을 가느냐 생각할 때이다. 미국은 문화보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미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한인회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시안은 생각을 할줄 모른다’는 한 저자의 비판을 26년이 지난 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대통령이 생각이 잘못되면 너무나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민 사회에서도 지도자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면 사회를 분열시킨다. 그리고 그 분열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또 수많은 세월을 소비해야 한다. 지도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미칠 사회적인 파장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생각을 미리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잘못된 지도자라면 차라리 없는 편보다 못하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자격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택용 기자 /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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