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우리는 왜 목적지를 알면서도 헤매는가?

모세의 40년 광야와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이 현대인에게 던지는 질문

 

인간은 목표를 세우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데는 놀랄 만큼 서툴다. 새해가 되면 건강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은퇴를 앞두고는 더 철저히 자산을 관리하겠다고 다짐한다. 사업가는 회사를 성장시키려 하고, 학생은 좋은 대학을 꿈꾸며, 부모는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목적지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수천 년 전 두 고전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보여준다. 하나는 성경 속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가는 데 실제로 40년이 필요한 거리는 아니었다.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에서 고향 이타카까지 돌아오는 데 10년씩 걸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두 이야기에서 여행은 끊임없이 지연된다.

왜일까.

결국 문제는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인간 자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벗어났지만 마음까지 자유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광야에서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불평했다.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에 따르는 불확실성과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지금의 직장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한다.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하면서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지 못한다. 건강을 위해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한 음식을 먹고 익숙한 생활을 반복한다.

인간은 종종 불확실한 가능성보다 익숙한 불편함을 선택한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의 귀향을 방해한 것은 폭풍이나 괴물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만과 호기심,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이 여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탈출한 뒤의 행동은 상징적이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안전하게 빠져나왔음에도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고 싶어 진짜 이름을 외친다. 그 결과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면서 귀향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현대인의 삶에서도 이런 장면은 반복된다.

투자에서 큰 수익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지나친 위험을 감수한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기 시작한다. 권력을 얻은 사람이 자신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때로 인간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성공 이후의 오만이다.

《오디세이아》의 세이렌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흥미롭다.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세이렌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SNS의 끊임없는 알림,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단기간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투자 유혹,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여주는 영상, 즉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콘텐츠가 모두 현대판 세이렌일 수 있다.

우리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 단기적인 유혹에 끌린다.

은퇴를 위해 저축해야 하지만 새 자동차를 사고 싶고, 건강을 지키고 싶지만 운동보다 소파가 편하며, 책을 읽고 싶지만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어렵다.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실패하는 것은 거대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선택들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목적지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앞에서 두려워했던 장면 역시 현대인에게 익숙하다. 정탐꾼들은 가나안의 강한 민족들을 보고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표현했다. 목표는 눈앞에 있었지만 자신들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나는 너무 늦었다.”

“내가 어떻게 저 사람처럼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작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많은 경우 목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실제 장애물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판단이다.

그래서 모세의 광야와 오디세우스의 바다는 단순한 여행 공간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다. 광야에서는 두려움과 불평, 믿음과 배신이 드러난다. 바다에서는 오만과 욕망, 유혹과 인내가 시험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직장에서 겪는 실패, 사업의 어려움, 자녀 문제, 경제적 위기, 건강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은 우리가 계획했던 인생에서 벗어난 ‘우회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우회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운 경우가 많다. 인내를 배우고,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깨닫는다.

결국 두 고전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일지 모른다.

목적지보다 사람이 늦게 완성된다.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는 이미 존재했고 이타카 역시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해야 했던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가능한 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라고 요구한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부자가 되고, 빨리 승진하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돈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지혜와 절제, 인내는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인생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완전한 낭비라고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헤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헤매는 동안 무엇을 배우느냐이다.

가나안과 이타카로 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가?”

어쩌면 인생의 진짜 여행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목적지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김택용 발행인 / 주간미시간  / 248.444.8844 /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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