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친일파 후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조상의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그러나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의 몫이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광복 81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에서 친일 문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한편,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행적 역시 계속 발굴되고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친일파의 후손들이다.

선조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어느 날 공개된다면 후손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조상의 잘못에 대해 사죄해야 하는가. 물려받은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므로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말하면 되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세워야 할 원칙이 있다.

조상의 죄는 후손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근대 법치국가에서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할아버지나 증조부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손자와 증손자에게 도덕적·사회적 처벌을 가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연좌제와 다르지 않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친일파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혈통이 개인의 도덕성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죄는 물려받지 않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의 책임이다

후손에게 선조의 친일행위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그 역사적 사실을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후손 자신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역사 자료를 통해 증조부가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하자. 후손이 “그것은 증조부가 한 일이고 나는 그 행동에 책임이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고 말한다면 충분히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명백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거나 친일행위를 미화하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조상의 선택만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 자신의 선택이 된다.

한국은 법률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목적을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데 두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가 후손을 모욕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과거의 잘못을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친일 청산을 이유로 특정 정치세력을 증오한다면

친일 문제는 오늘날 정치적 갈등과도 연결돼 있다. 일부에서는 자신의 선조가 친일 인물로 평가받았거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가족사가 공개된 것을 계기로 특정 대통령이나 특정 정치세력을 강하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구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경제정책이나 외교·안보정책, 대북정책 등의 이유로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자유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선조의 친일행위가 기록됐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청산 자체를 적대시하거나 확인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정치적 선택을 넘어 가족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어느 집안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가족에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역사에 남겨야 한다.

그렇다면 친일파 후손의 재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도 매우 중요한 구별이 필요하다. “친일파 후손의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과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역시 친일파 후손이라는 이유로 모든 재산을 환수하도록 만든 법이 아니다. 그 목적은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면서 동시에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해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토지나 경제적 특혜를 받았고 그 재산이 그대로 자손에게 상속됐다면, 그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후손을 처벌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반면 후손이 해방 이후 자신의 노동과 사업, 투자 등을 통해 정당하게 형성한 재산까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빼앗는다면 그것은 명백히 부당하다.

헌법재판소도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관련 사건에서 친일재산 여부를 둘러싼 입증 문제와 국가귀속 제도의 헌법적 쟁점을 판단해 왔다.

결국 원칙은 간단하다. 사람의 혈통을 추적할 것이 아니라 재산의 출처를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의 아픔도 이해해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이유로 후손 개인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친일 인물로 기록된다면 그 충격은 작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명예가 공개적으로 비판받고 자신까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면 수치심과 억울함,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 감정을 무조건 비난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회적 낙인을 찍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따라서 사회는 친일파의 후손에게 공개적인 사죄를 강요하거나 “네 집안이 친일파였으니 너 역시 문제가 있다”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는 엄격하되 사람에게는 관대할 필요가 있다. 다만 후손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이 역사를 바꾸거나 지운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후손이 상처받는다고 해서 친일행위가 없었던 것이 될 수는 없으며, 독립운동가들과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고통이 축소되어서도 안 된다.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은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파 후손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 거창한 사죄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나는 조상의 행동에 책임이 없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정한다. 나는 그와 다른 삶을 살겠다.”

그것이 가장 건강한 역사 인식일 수 있다. 원한다면 독립운동사 연구나 역사교육을 지원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적으로 연구하도록 허용할 수도 있다. 아무런 공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친일파 후손에게 필요한 것은 평생의 속죄가 아니라 역사를 직시할 용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네 할아버지가 친일파였으니 너도 친일파다”라고 공격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당연히 가족사를 숨기려 할 것이다. 반대로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당신을 그 조상과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한 역사를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친일 청산의 목적은 친일파의 후손을 또 하나의 피해자로 만드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잘못한 사람의 행동은 정확히 기록하고, 부당하게 형성된 재산은 법에 따라 바로잡되, 그 죄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적 정의와 인간적 관용을 함께 지키는 길이다.

친일파 후손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결국 하나다. “당신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는가”가 아니라 “그 역사를 알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조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일이 아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고, 선조의 잘못과 자신을 분리해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역시 기억해야 한다. 조상의 죄는 상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자신의 책임이다. 이 원칙을 지킬 때 우리는 친일 청산을 복수나 연좌제가 아니라, 과거를 정확하게 기억하면서도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회를 물려주는 역사적 성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택용 발행인 / 주간미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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