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여러분의 짐은 내가 덜어주겠습니다”…미시간 한인사회에도 이런 재단이 필요하다

로버트 F. 스미스가 Morehouse 졸업생들에게 남긴 ‘Pay It Forward’ 정신, 이제 한인사회가 이어갈 때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2019년 5월 19일, 애틀랜타의 Morehouse College 졸업식장. 수백 명의 졸업생과 가족들이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있었다. 이날 연단에 오른 사람은 미국의 투자회사 Vista Equity Partners를 세운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 Robert F. Smith였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성공과 책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연설 후반부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This is my class — 2019.”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2019년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없애기 위한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Morehouse College에 따르면 이후 지원 범위는 학생뿐 아니라 부모와 보호자가 이들의 학비를 위해 부담한 대출까지 확대됐고, 최종 지원 규모는 약 3,400만 달러에 이르렀다. 400명이 넘는 학생과 부모·보호자가 혜택을 받았다.

졸업식장은 순식간에 환호와 눈물로 뒤덮였다. 그러나 Smith의 선물을 단순히 “억만장자가 학생들의 빚을 대신 갚아준 사건”으로만 이해한다면 그 의미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졸업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더 중요한 메시지는 Pay It Forward, 즉 ‘오늘 받은 도움을 다음 세대에게 다시 돌려주라’는 것이었다.

Morehouse College 역시 이 선물의 의미를 졸업생들이 경제적 자유를 얻어 자신의 경력과 공동체에 투자하고, 훗날 미래 세대의 교육을 다시 지원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말로 그 정신을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던 짐은 우리가 덜어주겠습니다. 대신 여러분은 훗날 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한 번의 기부를 세대를 이어가는 선순환으로 바꾸는 힘이다.

학자금 대출을 없앤 것은 단순히 빚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에게 수만 달러의 학자금 대출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빚이 많으면 취업 후 월급의 상당 부분을 대출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대학원 진학을 미루거나, 집을 사는 시기를 늦추고, 창업이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수도 있다.

Morehouse가 이후 실시한 연구에서도 Smith의 선물이 졸업생들의 삶에 단순한 재정적 효과를 넘어 진로 선택과 미래 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대학 측은 학자금 부담에서 벗어난 졸업생들이 대학원 진학, 경력 개발, 주택 마련 및 자신과 가족을 위한 투자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Smith가 준 것은 결국 돈만이 아니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 지원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렇다면 미시간 한인사회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 이야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시 한인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인 이민 1세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세탁소, 식당, 마켓, 공장, 전문직과 사업체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그 결과 오늘날 수많은 한인 2세와 3세가 의사, 변호사, 교수, 기업인, 엔지니어, 금융인, 공직자 등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우리 한인사회에는 교회도 있고 여러 협회와 단체도 있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기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한인 교육재단 또는 미래세대재단을 만들어야 할 때다. 단순히 매년 학생 몇 명에게 1,000달러나 2,000달러를 지급하고 끝나는 장학사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기금을 축적해 그 투자수익으로 장학사업을 운영하는 endowment형 재단을 만들 수 있다.

100명이 $1,000씩만 내도 시작할 수 있다

재단은 반드시 억만장자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Robert Smith 한 사람이 3,4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은 특별한 사례다.

하지만 공동체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100명이 1년에 1,000달러씩 기부하면 10만 달러다. 500명이 참여하면 50만 달러가 된다. 기업과 전문직 종사자, 성공한 한인 사업가들이 참여하고 유산기부와 기업 매칭 프로그램까지 연결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금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다.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부금을 그해 모두 사용하는 대신 원금을 장기간 투자해 수익 일부만 장학금으로 지급한다면 세대를 이어가는 기금이 될 수 있다. 오늘 60대와 70대 한인들이 만든 기금으로 지금의 학생을 돕고, 그 학생이 20년 뒤 성공해서 다시 재단에 기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로 그것이 Pay It Forward다.

장학금만 주는 재단을 넘어야 한다

미시간  한인사회의 미래세대 재단은 단순히 등록금을 지원하는 기관에 머물 필요도 없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우수한 학생의 대학원 진학이나 연구를 지원할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금융교육과 투자교육을 제공하고, 성공한 한인 전문인과 학생을 연결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다. 인턴십을 연결하고,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작은 seed money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언론, 정치, 과학, 기술, 의학, 교육 등 한인사회가 더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재단은 단순한 장학재단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미래 인재를 키우는 플랫폼이 된다.

도움을 받은 학생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자

그리고 저는 이 재단이 가진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런 약속을 부탁하는 것이다. “언젠가 여러분이 성공했을 때 다음 세대의 한 학생을 도와주십시오.”

10년 뒤가 될 수도 있고 30년 뒤가 될 수도 있다. 100달러일 수도 있고 10만 달러일 수도 있다. 돈이 아니어도 된다. 멘토가 되어줄 수도 있고, 인턴십 자리를 만들어줄 수도 있으며, 후배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눠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Robert F. Smith의 2019년 Morehouse 선물이 특별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Morehouse는 그의 기부를 계기로 Student Success Program을 발전시켰고, 이후 학생들의 학자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대규모 기부도 이어졌다. Smith의 선물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더 큰 교육 지원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제 우리 세대가 질문받을 차례다

미시간 한인 이민 1세대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가정을 일으켰으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그러나 한 세대의 성공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될 때 비로소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

건물만 남기는 것이 유산은 아니다. 돈만 물려주는 것도 유산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시스템을 남기는 것이 더 큰 유산일 수 있다. 언젠가 미시간을 비롯한 미국 각 지역의 한인 졸업식에서도 한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당신 앞세대의 한인들이 당신을 위해 이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당신의 짐을 조금 덜어주겠습니다. 당신이 성공한 뒤에는 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십시오.”

그 약속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면 한인사회는 단순히 성공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이민사회에서 벗어나 서로의 미래를 만들어주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

Robert F. Smith 한 사람의 결단이 400여 명의 젊은이에게 새로운 출발선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미주 한인사회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출발선을 만들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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