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오디세우스에서 맥아더까지, 오만·분노·방심이 불러온 말의 재앙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반대로 말 한마디 때문에 권력을 잃고, 선거에서 패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배우 하영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증조부를 자랑했던 발언이, 일제강점기 증조부의 친일 단체 활동 이력이 재조명되며 논란과 사과로 이어지고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논란이 커지면서 출연 예정이던 홍보 인터뷰 및 관련 방송 다시보기가 중단 및 비공개 처리되었으며 기업들도 하영이 출연한 광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양 고전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요즘 영화로 재연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완벽한 승리였다. 그러나 배를 타고 안전한 거리까지 나온 오디세우스는 참지 못했다. 자신의 진짜 이름과 고향을 폴리페모스에게 밝혀버렸다. 자신을 쓰러뜨린 사람이 바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폴리페모스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다는 점이다. 아들의 기도를 들은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가혹하게 만들었다. 오디세우스의 실수는 정보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겼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역사를 보면 이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1. 헨리 2세 — 분노 속 한마디가 살인으로
1170년 영국왕 헨리 2세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분노한 왕이 베켓을 두고 “이 성가신 성직자를 없애줄 사람이 없는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표현은 사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네 명의 기사는 왕의 분노를 사실상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가서 베켓을 살해했다. 베켓은 순교자로 추앙받았고 사건은 헨리 2세에게 엄청난 정치적·종교적 부담이 됐다. 결국 왕은 베켓의 무덤에서 공개적인 참회까지 해야 했다. 권력자의 말은 평범한 사람의 말과 다르다. “그냥 화가 나서 한 말”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것을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2. 키케로 — 말로 적을 쓰러뜨리려다 목숨을 잃다
고대 로마 최고의 웅변가 키케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가 발표한 이른바 ‘필리피카이’ 연설들은 정치적 공격의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안토니우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상황이 뒤집혀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레피두스와 제2차 삼두정치를 구성하자 키케로는 숙청 명단에 올랐다. 기원전 43년 그는 도피 중 붙잡혀 살해됐고 머리와 손은 로마의 연단에 전시됐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말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3.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 인터뷰 한번에 황제의 권위가 흔들리다
190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영국과 독일의 관계를 개선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영국인과 독일인 모두를 불쾌하게 만드는 경솔한 발언들을 쏟아냈고, 자신의 외교적 능력을 지나치게 과시했다. 인터뷰가 공개되자 독일 의회와 언론에서는 “황제가 국가 외교를 마음대로 해도 되는가”라는 비판이 폭발했다. 독일 역사 자료는 이 사건으로 빌헬름의 신뢰와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한다. 오디세우스와 상당히 닮아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이 침묵보다 앞섰다.
4. 더글러스 맥아더 —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맞서다
한국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미국에서 영웅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전쟁을 확대할 것인지 등을 놓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문제는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그 표현 방식이었다. 맥아더는 행정부의 전쟁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전략적 견해를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현장 지휘관이 공개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1951년 4월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했다.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자료도 맥아더가 권한을 넘어섰고 상부 지시에 도전했다고 당시 결정의 배경을 설명한다. 맥아더는 전쟁에서 패해 해임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방식이 결정적인 문제가 됐다.
5. 리처드 닉슨 —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확대되던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대통령이 부정한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발언 자체가 닉슨을 몰락시킨 것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수사와 백악관 녹음테이프, 사건 은폐 문제가 훨씬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닉슨이 1974년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면서 이 문장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부메랑 발언’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부정하려고 한 말이 오히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의혹을 영원히 각인시키는 문장이 된 것이다.
6. 제럴드 포드 — TV 토론의 한 문장이 선거를 뒤흔들다
1976년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공화당 후보 제럴드 포드는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와 외교정책을 놓고 맞섰다. 포드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지배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당시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대부분이 소련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회자가 즉시 되물었다. 그러나 포드는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포드의 외교정책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순간이 됐다. 특히 토론에서는 틀린 말을 하는 것보다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수정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7. 마이클 듀카키스 — 너무 이성적인 답변도 실수가 된다
1988년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는 예상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사회자는 만약 그의 부인 키티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면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지지하겠느냐고 물었다. 듀카키스는 평소의 사형제 반대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논리적으로는 일관된 대답이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의 끔찍한 피해를 가정한 질문에 지나치게 감정이 없는 모습으로 비쳤다. 그의 ‘차갑고 기계적인 정치인’ 이미지가 더욱 강화됐다. 당시 토론에서도 그의 답변은 크게 비판받았다. 말실수는 항상 잘못된 말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맞는 말을 하더라도 상황에 맞지 않게 말하면 실수가 될 수 있다.
8. 게리 하트 — “나를 따라다녀 보라”
1987년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게리 하트에게 사생활 문제가 제기됐다. 하트는 언론에 자신을 따라다녀도 좋다는 취지로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얼마 후 한 여성이 그의 워싱턴 자택을 방문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정치적 폭풍이 일어났다. 하트는 결국 대선 경쟁에서 물러났다. 다만 중요한 사실 하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Miami Herald》의 취재가 그의 “따라다녀 보라”는 발언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후대 설명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가 있다. 언론과 세상에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고 말하는 순간 스스로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9. 조지 앨런 — 단어 하나가 정치적 미래를 바꾸다
2006년 버지니아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 조지 앨런은 한때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치인이었다. 유세 도중 그는 자신을 촬영하던 상대 후보 캠프의 인도계 미국인 대학생 S. R. 시다스를 향해 ‘macaca’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갔고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인종적 모욕 논란이 일어나면서 앨런의 선거운동은 크게 타격을 받았다. 그는 결국 민주당 후보 짐 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당시 분석에서도 이 사건은 앨런의 지지율 하락과 선거 패배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됐다. 21세기에는 말실수의 위험이 더욱 커졌다. 옛날에는 현장에 있던 수백 명이 들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에 찍힌 몇 초짜리 발언을 수천만 명이 볼 수 있다.
10. 밋 롬니와 힐러리 클린턴 — “우리 편끼리 하는 말”은 없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는 비공개 후원행사에서 미국 유권자의 ‘47%’를 정부에 의존하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행사는 완전히 비공개가 아니었다. 녹화된 영상이 공개됐고, 발언은 롬니가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공격의 소재가 됐다. 4년 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비슷한 교훈을 경험했다. 2016년 후원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를 ‘개탄스러운 사람들의 바구니’라는 표현으로 묶어 말했고 곧 거센 논란이 일었다. 클린턴은 일부 표현을 후회한다고 밝혔고, 훗날 자신의 저서에서도 이 발언이 상대 진영에 정치적 선물이 됐다는 취지로 회고했다. 다만 이 한마디가 선거 패배를 결정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리다.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편끼리 있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오늘날에는 비공개 발언도 사실상 공개 발언이다. 말실수의 뿌리는 대부분 ‘오만’이다
이 인물들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혀가 꼬여 단어 하나를 틀린 경우는 별로 없다. 공통된 원인이 있다. 오디세우스는 승리에 취했다. 헨리 2세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했다. 키케로는 자신의 말의 힘을 지나치게 믿었다. 빌헬름 2세는 자신이 뛰어난 외교관이라고 생각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군사적 판단이 대통령보다 옳다고 확신했다. 게리 하트는 자신은 언론의 검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롬니와 클린턴은 제한된 청중 앞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치명적인 말실수의 상당수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자신감이 지나치면 사람은 불필요한 말을 한다. 분노하면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한다. 권력이 커지면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잊는다. 그리고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위험한 말을 한다.
그래서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교훈은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른 장면이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목숨을 걸고 동료들을 구했고, 놀라운 지혜로 탈출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모든 위험이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보다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입을 조심해야 한다.

역사가 남긴 수많은 말실수는 결국 하나의 오래된 교훈으로 모인다. “하지 않은 말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로는 가장 현명한 대답이 훌륭한 웅변이 아니라 침묵일 수 있다.
주간미시간 발행인 김택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