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알 권리와 미성년자 의료 프라이버시가 충돌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미시간에서 부모가 미성년 자녀의 의료기록을 어디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Bridge Michigan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조 아라고나 주 하원의원은 부모가 자녀의 의료기록에 전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의사와 청소년 건강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미성년자가 의사에게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비밀보장 장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미시간 법은 18세 미만 청소년이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부모 동의 없이 일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약물·알코올 등 substance use disorder 치료, 성병 검사, 임신 검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14세 이상 청소년은 제한적인 외래 정신건강 치료를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받을 수 있다. 반면 낙태, 백신 접종, 항우울제 처방, 입원 정신건강 치료 등은 여전히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라고나 의원은 부모가 자녀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려면 의료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성년자는 투표도 할 수 없고, 모기지나 자동차 대출도 받을 수 없으며, 군 입대도 할 수 없고, 부모 없이 문신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미성년자가 의료기록 접근권과 의료 판단에서 부모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다.

이 법안은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는 “부모 권리” 논쟁의 일부다. 1950년대 이후 여러 주는 정신건강, 성 건강 등 제한된 분야에서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주에서는 이런 미성년자 의료 접근권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Bridge Michigan은 몬태나, 테네시, 아이다호 등에서 관련 제한이 추진됐고, 노스캐롤라이나와 오하이오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최종 통과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병원마다 부모의 온라인 의료기록 접근 정책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의 포털 계정에서 모든 기록을 볼 수 있다가, 어느 나이가 되면 갑자기 일부 정보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Michigan Medicine은 과거 주 비밀보장법을 이유로 11세부터 일부 부모 접근을 제한했지만, 이후 그 기준을 13세로 조정했다. 이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어제까지 보이던 기록이 왜 갑자기 안 보이느냐”는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반대 측의 우려는 분명하다. Ypsilanti의 The Corner Health Center를 운영하는 알렉스 플럼 CEO는 부모의 무제한 접근이 청소년의 핵심 의료 프라이버시와 보호 장치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관은 12세부터 25세까지의 청소년과 젊은 성인을 돌보는 곳이다. 플럼은 의료진이 청소년에게 부모와 상의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이가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의사에게라도 안전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폭력, 가정 내 학대, 성 건강, HIV 치료, 임신 여부, 정신건강 위기 처럼 민감한 사안에서는 부모에게 모든 기록이 자동 공개되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플럼은 한 청소년이 가정 내 성적 학대를 당한 뒤 HIV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경우 부모가 기록을 알게 되면 피해자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법안 지지자들은 부모의 권리가 너무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오클랜드 타운십에 사는 마리아 다고스티니 루코사비치는 12세 딸의 병원 방문 중 아이에게 엄마의 향후 의료기록 접근을 허용하는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받은 뒤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안을 “Mama Bear Law”라고 부르며, 부모의 권리는 매우 신성한 권리이고 이를 제한하려면 아주 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법에도 의사가 아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부모에게 기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부모의 접근을 미리 막기보다는, 문제가 있는 경우 의사가 경고 신호를 제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또 생식 건강과 같은 민감한 대화도 부모와 자녀, 의사가 함께 앉아 건강한 대화를 나누도록 유도해야지, 가족을 갈라놓는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부모가 알아야 한다”와 “청소년은 숨길 권리가 있다”의 대립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며, 의료기록 접근은 치료 결정과 사후 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일부 청소년은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고, 그런 아이들에게 의사와의 비밀 대화는 마지막 안전망이 될 수 있다.
한인 부모들에게도 이 문제는 낯설지 않다. 미국 병원 포털 시스템에서는 자녀가 일정 나이가 되면 부모 계정에서 일부 정보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병원의 실수라기보다는 미시간 주법과 청소년 의료 프라이버시 규정에 따른 조치일 수 있다. 따라서 자녀가 10대에 들어서면 병원 포털 접근권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기록은 부모에게 보이고 어떤 기록은 제한되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장 바람직한 접근은 법적 권리만 따지기보다 자녀와의 신뢰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무조건 다 알아야 한다”는 태도보다, 아이가 민감한 문제도 부모에게 질문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건강 문제, 성 건강, 정신건강, 약물 문제는 숨길수록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부모가 평소에 판단보다 대화를 먼저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이번 법안은 미시간에서 부모의 의료기록 접근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미성년자의 제한적 의료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부모의 접근권은 넓어질 수 있지만, 청소년 의료진과 일부 건강단체는 취약한 아이들이 치료를 피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더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