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분갈이

몇년 전에 벤자민 묘목을 하나 샀다. 인터넷에서 실내 산소 방출량도 따져보고 수목원에서 가장 튼실한 놈으로 골랐다. 화분도 가장 멋져 보이는 자기로된 화분을 장만해 묘목을 옮겨 심었다.

그런데 몇 해는 잘 자라던 나무가 어쩐 일인지 작년부터 비실비실 힘을 못쓴다. 잎사귀도 잘 나오지 않고 색깔도 누릿 누릿 영 볼품이 없다. 급기야는 몇개 남지 않은 잎사귀 마져도 생기를 잃어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때 맞춰 물도 주고 햇빛도 쬐어주고 정성을 다한다고 했지만 전혀 회생의 기색이 없었다.

볼상 사나운 묘목을 버리려다 문뜩 화분에 금이 간 것을 발견했다. 금이 간 틈 사이로 뿌리 몇 가닥이 삐져 나오고 있었다. 혹시 화분이 너무 작았나 싶어 분갈이를 하기로 했다. 분갈이를 하기 위해 화분을 깼다. 화분속에는 묘목의 뿌리가 가득 차 있었다. 더 이상 뻗어 나갈 곳이 없어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분갈이를 하고 새로운 흙을 사다가 채워 넣은지 이 주일이 지났다. 손가락으로 셀 만큼의 잎사귀만 남았던 묘목이 이제는 새파랏게 무성해 졌다. 매일 아침 새로운 잎파리가 돋아 나온다. 잎사귀의 크기도 커지고 윤기까지 자르르 흐른다.

분갈이를 하고 나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묘목을 보면서 우리 한인회를 생각해 봤다. 한인회도 분갈이가 필요한 건 아닌지 자문해 봤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해 있는 한인회를 비롯한 기타 단체들을 회생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깨뜨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구태의연한 통념이나 내 자리를 지켜내고자 하는 기득권이 성장이라는 이름의 뿌리가 뻗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넓게 보지 못하는 리더가 성장을 막는 제한 요소(limiting factor)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화분처럼 깨지는 것이 두려워 뿌리가 뻗어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아닐까? 혹시 그들은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잎이 무성해 지기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시들시들 하더라도 자신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정도로 남아있기를 내심 바라는 걸까?

능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높으면 어느 단체든 성장이 멈춰진다. 내가 쳐 놓은 바운더리, 나에게 익숙한 방법들만 고집하다보면 능력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거나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훌륭한 리더는 후배들이 선배들을 앞질러 주기를 원하고 때에 맞게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한인회는 내 것이니까 끝까지 내가 지킨다는 생각은 나무가 죽던 말던 터져나오는 뿌리를 감추려했던 금이 간 화분과 같은 것이다.

지난 일요일 광복절 체육대회 계주 경기에서 신나게 달리는 우리 꿈나무들을 기분좋게 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계주를 할 때 앞 선수에게 바톤을 넘겨주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내가 앞에 있는 선수보다 설령 더 잘 달린다고 해도 바톤은 넘겨 주어야 한다. 100미터를 이미 달려온 내다리는 이미 피곤해 졌기 때문이다. 바톤을 넘겨 주고 나면 그 선수가 잘 달리도록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만 남았다. 거기까지만해도 박수를 받을만 하다. 바톤을 넘겨주고 나서 이렀쿵 저렀쿵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도 문제다. 또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니면 끝까지 내가 대표가 되겠다는 욕심에 바톤을 웅켜쥐고 400미터를 혼자 뛰려는 계주 선수가 있다면 박수가 아니라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바톤을 후배들에게 잘 넘겨준 단체로 재미자동차산업인협회(KPAI)를 꼽을 수 있다. 3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KPAI 에는 파워 이양이 철저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능력있는 선배들이 즐비하지만 후배 회장단에게 시어머니 노릇은 하지 않는다. 아들뻘 같은 후배 회장이 불안해 보일만도 한데 잔소리보다는 말없는 후원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자신있게 일할 수 있다. 선배들이 잔소리를 안한다고 잊혀지거나 무시 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후배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다. 후배들도 그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선배 모시기에 극진하다.

KPAI만 이렇게 모범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인회도 할 수있다. KPAI에서만 예의가 지켜지고 한인회에서는 무례가 만성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KPAI는 배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까 그렇고 한인회는 아무나 모인 곳이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논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인회가 한인사회를 대표하려면 이런 수준으로 회복되어야한다. 한인회 이사회는 이름부터 오해의 소지가 많다. 한인회의 이사회는 사립학교의 사주들이 모인 이사회와 성격이 다르다. 한인회가 이사회의 소유물이 아니다. 회장단이 위험한 방향으로 나갈때 감독해야하는 기능이 물론 있지만 회장단이 내 쪽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서는 안된다. 이사회라기 보다는 후원회의 기능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이사회가 감독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적용하는 잣대는 항상 동일해야 한다. 회장단이 내 편이면 우호적으로 적용하고 반대편이면 회칙을 변칙적으로 해석해서라도 까다롭게 들이댄다면 이사회는 이사회로서의 자격을 이미 잃은 것이다.

한인회를 내 것으로 사유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한 한인회라는 나무는 병들어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투쟁해서 이겨내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싸워서 이겨봐야 얻을 것이 대단치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방관하고 무관심한 가운데 한인 사회를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한인회는 병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이곳에서 훗날 한인회가 어떤 기능을 할지 모르지만 한인들의 이민생활을 방해하는 역작용만은 하지 못하도록 동포사회 전체가 감독 관리할 책임이 있다. 한인회내 이사진과 회장 임원단 간에 불필요한 불협화음이 한인회의 대표성을 가치없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매정하긴 하지만 큰기업들에는 명퇴제도가 있다. 아무리 회사에 공적이 많아도 때가되면 명예롭게 물러나야 한다. 자리를 비켜주는 때를 놓치면 불명예스럽게 된다. 그래서 기업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다.

명퇴는 다른 말로 하면 Evolution(진화)다. 한인회도 또 다른 단체들도 진화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물러날 때를 알면 다 아는 것이라 했던가… 가다피가 불명예스러운 건 그 때를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김택용
주간미시간 / 마이코리안 발행인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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