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한인사회

편파적인 막장 기사, 한인사회 혼탁하게 만들었다

– 확인 절차 무시한 소설급 기사에 역겹다는 반응 뜨거워
– 어른들의 잘못 덮기 위해 피해자 청년을 패륜아로 호도

[앤아버=주간미시간] 김택용 기자 = 지난주는 참으로 우울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기자로서 너무나 창피했다. 한 흥분한 독자가 미시간 오늘에 실린 기사를 들고 본사를 찾아 왔다. 기본과 원칙을 송두리째 무시한 작자 미상의 기사였다. 아니 그건 기사가 아니고 소설이었다. 앤아버에서 있었던 한 가정의 가정 폭력 사건을 놓고 쓴 3류 급 소설이었다.

본 소설을 기사라고 할 수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당사자들과의 확인 절차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한 쪽 주장만 듣고 쓴 편파적인 보도였다. 특히 법정 기사를 쓰는데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모두 무시되었다. 법정에서 다뤄진 내용은 public information이기 때문에 기사화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나 변호사의 발언을 인용할 수는 있어도 기자의 사견을 달 수는 없다. 또 법정에서 내려진 결과를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재구성해서 전달해서도 안 된다. 법정 기사를 쓸데 지켜야할 규칙을 어기면 이것 또한 커다란 소송감이다.

주간미시간 16일자에 실린 본 사건 법정 기사는 전문 변호사의 자문을 받으며 쓴 것이다. 법정 기사 한번 잘못 쓰면 신문사가 물어야 할 대가가 크기 때문에 법정 기사는 그만큼 까다롭고 조심스럽다.

먼저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판사와의 대화 속에서 채택이 된 부분만이 공식 기록이다. 이번 예심의 본질은 피의자가 5월 30일 밤 현장에서 저지른 범행 사실여부를 심사하는 것이었다. 피의자 측 변호사가 J씨와 S씨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지만 연관성이 없다고 해서 판사가 기각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확대 생산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 아들이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베게로 아버지의 얼굴을 두 번 가격했다는 내용은 법정에서 나온 얘기이기 때문에 기사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 내용들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매체에 실어 특정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여기서 해당인들과 인터뷰를 했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해서 양쪽의 입장을 공평하게 기재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름을 감춘 미시간 오늘의 해당 기자는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자신의 확신을 담아 써내려갔다.

물론 언론이라면 기사를 통해 누군가를 공격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피해자나 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언론사 불문율 중에 하나는 특히 이민 사회에서 앞길이 창창한 우리의 청소년들에 대한 가십성 기사는 삼가야 한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한인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앤드류 허 군의 케이스와 같이 한인과 미국인이 연루된 사건의 경우 한인의 편에 서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피의자와 피해자가 모두 한인이었다. 이런 경우 지각이 있는 기자라면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반대편을 공격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는 가정 폭력에 관한 일이다. 남의 가정사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따라서 법정에서 채택이 된 내용만 보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 아직 예심이고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사건을 속단해서 기사화하는 것은 법정 모독에 해당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해당 기자가 패륜아로 몰아간 18세 청년은 본 사건에서 피해자다. 기사를 보면 완력을 가할 무시무시한 괴물이 연상되지만 그는 덩치도 조그마하고 갓 소년의 티를 벗어난 애띤 청년이다. 욕설과 무서운 분위기에 눌려 사는 어머니를 보호하는 것은 아들로서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자가 피의자와 그 주변의 얘기만 듣고 편파적으로 쓴 기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역겨움’ 마져 들게 만들었다는 게 동포사회의 반응이다. 한 원로는 “우리 미시간 사회가 이렇게 저질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우리의 자식들을 패륜아로 모는 일이 자행될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설사 그 청년이 아버지를 구타하는 패륜아였다고 해도 그의 앞날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어른들은 이런 글을 써서 뿌려대지 않는다. 그 청년 또는 어머니와 한마디의 인터뷰도 없이 일방적으로 한 청년을 매도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범죄 행위다.

이 소설 같은 기사에는 마치 그 청년의 잘못이 드러나 법정에 세워질 것처럼, 피해자가 J씨가 거짓말을 하느라 횡설수설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법정 현장에 없었더라면 이런 허위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본 기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떤 색안경을 썻길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설이 써질 수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자의 영어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당일 현장의 상황과 전혀 다르게 조작되었다.

불론 법정에서는 피의자였지만 우리는 G씨에 대한 측은지심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저지른 잘못이지만 우리는 그의 인격이나 인간 됨됨이를 논할 자격은 갖지 못한다. 단지 5월 30일 밤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잘잘못만 다루는 것이다. 피의자라고 해서 무조건 악마 취급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그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알아야 성숙된 사회인 것이다.

왜 한국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더 잔인한 것일까? 세월호 때도 그랬다. 광주 사태 때도 그랬다.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벌을 받는 다는 사상에 젖어 있어서인지 우리는 피해자들과 아픔을 나누고 그들을 위로하는데 너무나 인색하다. ‘잔인한 자에게 동정을 베푸는 자는 정작 동정을 받을 자에겐 더욱 잔인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사태를 반영하는 적적한 말이다.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사람이 없나, 소설과 같은 기사를 써서 남의 귀한 아들을 패륜아로 만드는 사람이 없나, 우리는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 그것도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미명아래 뽑힌 한인 회장과 이민 사회에서 공익을 대변하겠다고 자청한 기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해 버리면 약자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기운이 다 빠진다. 너무나 허탈하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한 청년을 패륜아로 만들고 이민국을 운운하며 협박을 가하는 자들에게 가장 심한 상소리로 욕을 해주고 싶지만 같은 수준이 될 수 없으니 격을 지켜 말하고 싶다. “너희들은 어른도 아니다. 너희들은 아버지도 아니다. 너희들은 사람도 아니다.” 이건 단순히 무지해서 저지른 잘못이 아니다. 이것은 악의를 갖고 고의로 저지른 악행이다.

본 기사를 읽고 기가 막힌다는 당사자들은 전문 변호사와 법적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도 사실(fact)을 근거해야 하며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인 냥 보도하는 것은 소송감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기사는 Libel(명예훼손)에 해당된다. 민사사건에 해당되며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에 대해 금전적으로 배상해야 한다. 알량한 한인회의 권력과 결탁하여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언론사가 미시간 동포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칼을 겨누는 것은 참으로 비겁한 일이다.

자식을 키우는 아비로서 앞으로 평생을 살면서 자식들에게 비겁한 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자성해야 한다.

해당 기자가 미시간 한인 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본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격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도 나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쓴 소설이었다. 디트로이트 한인회장이 해당 기자와 밀월관계를 즐기며 본보에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아도 참아 왔다. 한인회장이 해당 신문을 배달해 주며 끈끈한 관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도 참을 만 했다. 일일이 상대할 가치도 없었고 한인회와 신문사가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는 밀착 관계가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다. 한인회와 언론사의 권력이 결탁하여 한 가정을 짓밟는 것은 참을 수 가 없다. 신문사간의 패권다툼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호소문이다.

한인회와 언론사가 짜고 다 해먹어도 좋다. 하지만 힘없는 약자들 앞에서 횡포는 부리지 말아야 한다.

유태인들을 학살한 나치 때문에 아직도 독일인들은 사과를 한다. 그들은 다수였던 일반 국민들이 소수였던 나치당을 저지하지 못하고 방관했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를 지키지 못하는 방관자들은 공범자와 다를 것이 없다는 철저한 참회인 것이다.

미시간 한인사회에도 많은 방관자들이 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나와 한인회장을 하고 단체를 이끌었다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회장감이 없다고 아무나 회장을 시켜 놓으면 이런 사고가 터진다. 배우지 않고 상상력만 가지고 기자 노릇을 하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인회가 동포들을 위해 커다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사와 결탁하여 한인 동포들을 해코지하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시간을 저질로 만드는 단체들은 각성해야 한다. 다시 태어날 수 없다면 소멸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인회 없어서 못 사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 한인회는 쓸데없다.

한인회는 대표성을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한인회의 잘못을 언론사가 비호하는 잘못된 연결고리는 끊어야 한다. 진정한 언론사라면 한인회 울타리 밖에서 견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비호하면서 생기는 떡고물의 달콤함에 빠지면 눈만 뜨면 국가 주석을 찬양하는데 혈안인 북한의 ‘로동신문’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인회와 신문사가 힘이 있다고 약자를 무시하면 더 큰 강자에게 거꾸로 무시를 당할 날이 분명히 온다.

미시간에 더 많은 언론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대로 교육받고 제대로 기사 쓸 줄 아는 진정한 기자들이 있는 신문사 말이다. 기자(記者)의 자자가 놈자 짜라고 해서 상놈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진정한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기자다운 기자 말이다.

미주 타지에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마구 써대는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독자들의 혀를 차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이제 보니 비전문적인 기자들 때문에 사회가 혼탁해지는 경우가 남의 동네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쓰레기 같은 기자’라는 뜻의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기자답지 못한 기자들을 독자들이 비꼬며 만든 말이다. 얼마나 많은 기자들의 작태를 보았으면 ‘쓰레기 같은 기자’라는 말이 나왔을까?

신문사의 수준이 그 지역 사회의 수준을 대변한다고들 하는데 미시간 한인 사회가 이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통탄할 일이다!

우리는 글을 갈겨대는 놈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있어 커뮤니티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구성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또 다른 면에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 면허가 없는 의사에게 환자를 맡기면 사람을 죽인다. 뒤틀린 마음을 가진 자에게 펜을 맡기면 사회가 뒤틀린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떳떳지 못한 모습과 행동들을 가리려고 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 보이는데도 자신은 다 숨기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침묵으로 안타까워하는 대중들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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