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에 오르다

– 이르크츠트를 향해 70시간의 시베리아 대지 횡단

[블라디보스톡=마이코리안] 김택용 기자 = 이르츠크로 떠난다. 70시간을 달려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루크츠크까지의 기차여행은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쇠덩어리 기차에 올라서니 30도가 넘는 이상 기온으로 후끈 달아오른 객실이 숨을 막는다. 에어콘도 틀지 않아 객차안은 찜통이다. 겨울이 긴 러시아라 냉방시설이 미비하다. 이렇게 3일을 참아야 하다니. 좁디좁은 4인실 쿠페 객실을 보니 갑갑함이 목을 조른다. 네 명이 한 객실을 함께 써야하는데 짐가방을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다. 바곤이라고 부르는 열차 칸에는 이런 객실이 8개 정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기차가 천천히 구르기 시작하니 좀 살것 같다. 덜컹 덜컹 박자에 맞춰 대륙횡단 열차가 속도를 붙인다. 좌우로 펼쳐지는 초원을 설록이라 상상하며 더위를 잊어본다. 핸드폰도 라디오도 TV도 없이 세상과 단절된 시간,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인생 최장 시간의 사색에 잠겨 본다.

70시간의 기차 여행은 지금까지 살아온 50년의 시간을 모두 헤아려 볼만한 충분한 시간이다. 삶이라는 전투에서 쓰던 창과 방패 그리고 갑옷을 내려 놓고 나 자신만을 위한 평온한 시간을 갖는다. 평소 못읽은 책을 한묶음 싸오는 것도 좋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나혼자만의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르크츠크까지 한번에 가기에 지루해 11시간을 달린 후 하브로프스크에 도착했다. 아무르강에 나와 러시아인들과 함께 저녁 노을을 즐겼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니는 러시안인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굳어있다. 환하게 웃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웃을 거리가 없는 걸까 아니면 웃음이 인색한 걸까? 시장에 나가니 고려인의 후예들이 하는 점포가 보인다. 다음날 기차안에서 먹을 생각에 훈제 연어를 한마리 샀다.

하브로프스크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럴싸한 호텔인데도 인터넷 사정이 엉망이다. 이동중에도 휴간할 수 없어 신문을 마감했지만 인쇄소로 전송할 것이 걱정이다. 파일을 전송하는 도중 자꾸 끊어진다. 랩탑을 들고 이리저리 헤메다 다행이 호텔 로비에 있는 식당에서 겨우 와이파이가 터졌다. 빙고! 러시아에서 마감을 끝낸 신문이 이번주말이면 미시간에서 배포가 된다. 편안한 세상이다.

하브로프스크에서 다시 기차에 오른다. 어제 탔던 기차보다 급이 떨어진다. 아직도 더위가 남아있어 걱정이다. 불결해 보이는 화장실이 여성 여행자들의 고민이다. 달리는 열차에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철도 레일위로 그대로 떨어진다. 그래서 간이역에 도착하면 화장실 문을 닫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시베리아 열차 여행이 힘든 것은 샤워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세수와 양치만 간단히 할 수 있다.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내는 수 밖에 없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천 킬로인 이르크츠크가 목적지여서 다행이지 9288킬로 떨어진 모스크바까지 간다면 아찔하다.

앞으로 60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식당칸이 있지만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아 서울에서 준비해온 전투식량을 뜯었다. 뜨거운 물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다. 컵라면도 싸왔다.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면서 먹는 컵라면은 별미였다. 통조림 반찬과 햇반도 필수품이다. 기차안에서 이틀은 이렇게 때웠지만 삼일째는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오늘도 기차는 아무것도 없는 시베리아 벌판을 하염없이 달린다.

낮에는 후덥지근하지만 밤에는 쌀쌀하다. 더위가 싫다면 시베리아는 겨울에 달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시베리아는 설원이기 때문이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의 겨울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제 맛일 것 같다. 시베리아가 영하 40도가 되면 오히려 따뜻하단다. 해가 뜨고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추울때는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더 떨어진다. 영하 20도라도 바람이 없고 해만뜨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선탠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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