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서와 야곱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 후20년 동안이나 아이가 없어 애가 탔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여 임신이 되니 뛸듯이 기뻐했지만, 이삭부부에겐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쌍둥이가 뱃속에서부터 마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는 “애가 좀 별나군, 얼마나 수선스러운 놈이 나올려 그러나?” 할 텐데, 싸움박질이 엄마가 아플만치 심해서 그랬는지, 워낙에 됨됨이가 그랬는지 이삭이 또 하나님께 가서 여쭈어 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이들어 초산인 리브가이니, 유산인가 난산인가 하며 걱정이 많았겠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리브가의 건강은 지장없다… 한달만 지나면 얌전해 질거다 … 그런 대답이 아니고! 이 아이들이 두 민족의 시조가 될 터인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라는 선언을 하셨었습니다. 조금 동문서답 느낌이 납니다만 사실은 우문현답이지요.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투쟁하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야곱은 자신이 둘째라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나 봅니다. 형 뒤를 따르고 형 밑에서 위를 바라보는 삶을 거부하는 인생을, 뱃속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과연 아이들을 낳아보니 둘째가 먼저 세상으로 나가는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있습니다. 앞서지 못할 바에는 태클이라도 건다는 인생관을 지닌 이 아이, 이삭이 이름하기를 야아콥 이라 했습니다. 발꿈치라는 히브리 단어가 아켑이니 소리가 비슷합니다 (창 25:21-26). 이름이란 보통 깊은 뜻을 담아 멋지게 짓는 법인데, 아, 요놈, 제 형 발목 잡는 놈! 하고 지을만치 하는 짓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반면에 먼저 나온 아이는 살이 붉고 털이 많다 해서 에서라 지었습니다. 털보…정도 되는 뜻입니다. 우리도 갓태어난 애기가 머리털이 또렷하면 이쁘다고 칭찬해 주지만, 살은 붉고 온몸에 털복숭이라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에서 역시 범상치 않은 아이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쟁은 형제간의, 두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훗날 에서의 후손들과 야곱의 후손들은 결국 서로 다른 민족과 나라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자손들은 에돔으로, 신구약 중간시대를 거쳐 예수님 당시에는 이두매 인으로 계보를 잇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위기감을 느껴 베들레헴 일대에 영아 살해령을 내렸던 헤롯대왕이 바로 이두매 사람이니, 적법한 메시야의 족보를 예비하는 족장 자리에 야곱이 오르게 되고, 그 자리를 자신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을 죽이려 했던 것은 먼 훗날 있게될 사건의 예고편의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연상속권자인 에서 대신 야곱을 택하셨는지, 야곱이 결국 그 위치에 오를 사람이라면 어째서 하나님은 그가 꼼수를 두고 자신과 남들을 어려움에 몰아넣도록 허용하셨는지는 쉽사리 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창세기의 가르침을 보면, 야곱의 선택이 “예정”되었다 해서 장자권을 가로채는 야곱의 행동을 정당하다 말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입지 않았다 해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망령된 자 정신없는 사람이라고 꾸짖으십니다. 그런 점에서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장래의 족장으로 믿고 족장답게 키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말년에 눈이 어두워진 이삭이 에서에게 말할 때 보면, 가서 네 특기인 사냥을 하려무나…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오면 내가 먹고 마음껏 너를 축복하리라… 했습니다. 족장으로서 자식들을 축복하는 것은 오늘날 유언에 해당합니다. 당연히 둘째 야곱도 함께 불러 나란히 앉히고 축복해 줘야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편애의 수준을 넘어 차별에 해당하는 행동입니다. 반대로 엄마 리브가는 야곱만 맹목적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아버지 눈을 속이고 매끈한 야곱의 팔뚝에 염소가죽을 씌우고는 에서 노릇을 하라고 권하는데, 야곱이 보기에도 이것은 자살행동입니다. 그런데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는거 아닙니까? 할 만치 무모했던 이 작전에, 이삭이 속았습니다. 어쩌면 알고도 속아주었는지 모릅니다. 아, 그렇구나. 이 냄새 이 목소리 틀림없이 야곱인데, 지 형 발목 잡았던 녀석 야곱이 결국 이 축복의 자리를 새치기하고 앉아있구나. 두려워 바들거리면서도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안달인 이 아이… 여호와께서 얘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큰애가 작은애를 섬기리라 하셨었지 …. 그 기억을 되살려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 준것이 아닐까 … 행간을 보며 상상해 봅니다. (계속)

유선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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