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우리는 요셉을 <초월자> 라 불렀습니다. 오늘은 그를 <연결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역사의 고리를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깨어진 그릇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녹여 벌어진 틈에 스며들어가는 접착제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의 연합관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도 개인들의 무한경쟁이나 중앙정부의 독재가 아닌, 열두 지파가 각각 주어진 영토와 저마다의 독특성을 지키면서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을 전제로 되어 있습니다. 최상의 환경에서도 열두 지파의 연합체란 것이 얼마나 불안스러울 지는, 우리 자신과 주위에 보이는 형제들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갑니다. 한 아버지 한 어머니에서 난 삼형제 사형제 간에도 살다보면 속상할 일, 서로를 멀리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기는데, 열한 번째 베이비 브러더를 열명의 형들이 작정하고 죽이려 했던 콩가루 집안, 네 여인 간에 태어난 열두 아들과 그 후손들을 가지고 영속적인 연합체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솔직히 황당하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영토분배 같은 극도로 센서티브한 일을 하다보면 정말로 칼들고 서로 쳐 죽일만한 형편인데, 열두 지파가 나라를 이루어 가나안 입성과 왕정을 이루어낸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그것은 인류구원의 역사진행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연합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녹아져 균열과 간극을 메꾸는 접착제의 역할을 한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그 역할을 한 것은 요셉과 유다였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열 명의 형들을 위해 용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 동생을 죽이려 계획했었고, 천만리 먼땅 이집트에 팔아넘겼고, 교활한 꾀로 아버지를 속여 요셉을 죽은 것으로 치부하게 한 악한 형들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요셉은 잊혀졌고, 삶의 바퀴는 굴러갔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요셉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 모진 목숨 살아남아 믿기지 않는 출세를 이루었습니다. 야곱 일가가 사는 땅에 가뭄과 기근이 닥쳤고,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이미 바로왕의 재상으로 전격 발탁되어 있던 요셉 앞에 서게 됩니다. 자, 보통 드라마라면 이제 기대되는 장면은 복수극일 것입니다. 요셉이 저같은 사람이었더라면, 봐라 드디어 때가 왔다 으흐흐 하며 손이 근질거렸을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번을 울었습니다. 서러움도 씻고 억울함도 녹이고 복수심을 자비심으로 변환시키는 기적을 일으키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리를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습니다,” “제가 형님들과 조카들을 돌볼테니 안심하십시오!” (창 45장) 요셉은 용서의 눈물로 열두 지파를 묶어버렸습니다. 리드가 불가능했을 이들을 이끌어가는, 눈물의 리더쉽이었습니다.
유다도 형제들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사람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감춘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만 곡식을 더 주겠다고 한 탓에 야곱과 아들들 사이에 갈등이 일었습니다. 목숨을 유지하려면 곡식을 더 얻어와야 하는데, 야곱이 베냐민만큼은 보낼수 없다고 결사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미온적인 르우벤도, 거친 시므온, 레위도 어쩌지 못할 때 네째 아들인 유다가 나섰습니다 (창 43장). 자기 목숨, 자기 아들들이라도 담보로 해서라도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다녀오겠다고 강권해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유다의 결단이 없었으면, 우리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의 왕국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요셉과 유다는 자신들의 낮은 서열에도 불구하고 지파들 가운데 존귀한 위치를 받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입양”해서 한 대를 격상시켰고, 족장의 권한으로 후손들을 축복할 때 요셉 지파의 번성을 선포했습니다. 유다 지파에게는 왕홀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과연 유다자손을 통해 메시야 예수께서 오셨고,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으뜸가는 지파의 위치를 누렸던 것을 역사는 증언합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고 썩어야 많은 열매가 맺힌다는 평범한 상식이 우리의 삶에 적용될 때 얼마나 충격적인 진리가 됩니까. 언제나처럼 우리 시대 우리 사회도 희생하는 사랑, 눈물의 리더쉽을 필요로 합니다.
유선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