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석졸업자는 떨어졌는데 전교 50등 밖에 있는 학생이 같은 대학에 합격했다면 언뜻 뭔가 잘 못된 것이라고 수석졸업자는 반드시 해당 대학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일은 매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미국의 입학심사에는 합격을 보장하는 커트라인은 고사하고, 그 어떤 공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GPA(고교내신성적) 4.0 만점이어도, 또는 SAT 점수가 만점이어도 합격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입학사정제도 입니다.
‘김소영기자의 미국교육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많이 다른 미국대학의 입학사정제도에 대해 하나 둘 풀어나가 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대학준비과정에서 괜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경쟁률 6%를 자랑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내년도 신입생 선발시 다음 5명의 학생 중 단 한 명만 뽑아야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과연 이중 누가 합격의 기쁨을 안을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첫번째 후보는 요요마라는 이름의 학생입니다.(유명한 첼리스트 이름과 같죠?) GPA 4.3/ SAT 점수 2360(2400점 만점)점으로 대단히 공부 잘하는 학생입니다. 게다가 집안도 부유해서 대학이나 정부에서 그 어떤 학자금 지원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다. 첼로 실력이 월등해 전국규모의 각종 대회 상은 싹쓸이 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고교 수석 졸업자 입니다.
두번 째 후보는 퀸시 왓츠라는 학생입니다. GPA는 2.9. SAT점수는 1880점입니다. 이정도 점수면 상위권 사립대학을 욕심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이 학생을 받아들이는 대학은 학비전액을 지원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육상실력이 대단해서 고등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코치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잘 키우면 올림픽 스타가 될 재목입니다.
세번 째 학생의 이름은 조지 부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전 백악관에 사셨던 분과 같은 이름의 소유자입니다. 이 학생의 GPA는 2.8 입니다. 그런데 아마 고액 SAT 과외를 받았나 봅니다. SAT점수는 2010점 입니다. 물론 대학 학자금 지원은 전혀 필요 없을 정도의 재벌가 자제 입니다. 이렇다하게 내세울 점은 없는데 아버지가 워낙 갑부이다보니 대학에 합격함과 동시에 2백만달러를 대학에 기부할 뜻을 일치감치 내세웠습니다.
네번 째는 제니퍼 로페즈라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의 학업성적은 GPA 3.2, SAT 점수 1700정도로 그저 그렇습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워낙 노래며, 연기가 출중해 어린 나이에 그래미상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학생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대학은 전국적인 이목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지막 학생의 이름은 빌 클린턴입니다. 이 역시 얼마전까지 백악관 주인이었던 분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홀어머니에게서 자랐으면서도 GPA 4.1, SAT점수 2280점으로 매우 우수한 학업성적을 자랑합니다. 게다가 전국 디베이트 대회에서 두각을 발휘할 정도의 뛰어난 연설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그를 대학에 추천한 카운슬러의 추천서는 대학으로 하여금 이 학생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 이상 5명의 후보들이 단 1개의 합격생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과연 누가 선택될까요?
답을 드리기 전에 몇 년 전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한 때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하프를 잘 하는 학생에 가산점을 준다’는 소문으로 인해 고교 오케스트라에 하프연주자가 난데없이 넘쳐나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북가주에서 크게 학원을 경영하는 학원 원장이 직접 전해준 사실입니다.
소문의 진원을 파헤쳐보니 실제로 인근의 한 고교에서 뛰어난 하프연주자로 활동하던 학생이 스탠포드에 합격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학생의 성적이나 그 외 스펙은 같은 해 스탠포드에서 불합격한 많은 학생들 보다 오히려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이 사건만 놓고 보면 이 학생이 하프실력으로 인해 스탠포드에 합격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해에도 스탠포드는 또 다른 하프연주자를 뽑았을까요?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오케스트라에서 하프연주자는 단 한 명이면 족합니다. 아마 하프연주자가 선발된 그 해에 스탠포드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4학년 하프연주자가 졸업을 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버드 합격생을 발표해볼까요? 그렇습니다. 5명의 쟁쟁한 후보 중 누가 선택 받을 것인가는 그 해 하버드의 형편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일 그 해 육상부에 특별히 선수가 투입되야 한다면 퀸시 왓츠가 다른 4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택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베이트팀을 보강해야 한다면 당연히 클린턴이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겠지요. 이러한 각각의 이유로 제니퍼 로페즈나 조지 부시, 요요마도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매년 전국 대학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버드 뿐이 아니라 상위 100위권에 해당하는 대학들은 학생의 성적 외에 그가 갖고 있는 스펙에 주목합니다. 이 스펙은 과외활동이나 봉사경력, 각종 수상경력, 추천서, 에세이 등으로 갖춰집니다.
문제는 대학이 원하는 스펙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화려함과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김소영 기자, kim@schoolus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