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발행인칼럼] 김 사장, 배 많이 나왔네~

– The Price of Incivility (무례함의 대가)                                                              – 한국은 동방무례지국?

미시간에서 잘 나가는 미국 친구가 한 번은 ‘Korea needs to be more civilized’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이 비문명적이라니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civilized 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두개의 뜻 즉, 1.문명화된 2. 예의 바른, 중에 두 번째를 뜻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이 예의가 없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영어에는 없는 존댓말이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굽실거려야 하는 age-oriented society인 대한민국이 무례하다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예의 바른가? 한국은 정말 동방예의지국인가?

골프를 치러 골프장에 나가거나 예배를 보러 교회에 가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김 사장, 배 많이 나왔어’라며 말은 건네 온다. 간혹 배를 만지려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25년째 살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미국 사람들은 ‘배가 나왔다느니, 주름살이 늘었다느니,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이 생겼냐느니’하는 등의 개인적인 질문이나 코멘트는 절대하지 않는다. 남이 잘못해도 절대 지적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미국인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기겁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다르다.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배려하지 않는 표현들이 한인들끼리는 너무 비일비재하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을 기분 나쁘게 하는 문화는 지켜야 할 문화인가 버려야 할 문화인가? 이런 표현들이 한인들 간에는 정말 괜찮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미국화 되어서인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오랜만에 만나 처음 한다는 말이 그것 밖에 없을까? 내뱉는 말이 긍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지 상대방을 움찔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독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2013년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The Price of Incivility (무례함의 대가). 14,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단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예의’를 중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회원들 전체가 납득하는 예의의 정도를 정하고 모두가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긍정적인 태도는 보상하고 무례한 행동은 처벌해야한다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모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늘 sarcastic(빈정거리는)하거나 annoying(성가신) 사람이 있는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농담도 모임의 분위기를 해친다. 농도가 너무 짙거나 횟수가 많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모임의 리더는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문화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는데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 기업은 인재의 유실, 거래의 단절 등 막대한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기업의 경영진들은 기업내 예의를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심하거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하는 사람은 자신의 표현이 상대방의 기분을 망칠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표현에 상대의 기분이 어떨지 먼저 파악한다. 듣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말을 마구 뱉어내면 씻을 수 없는 실수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을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에 좋은 기억이 남는지 나쁜 기억이 남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시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든 표현들 때문인 경우가 많다. 미국인들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시한다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상대의 기분을 아랑곳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인들은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듣나보다. 한국이나 한인들이 동방무례지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평등의식을 가져야 한다.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저 사람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하다는 정신을 토대로한 수평적인 관계를 인정하고 예의바른 표현을 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보다 좋은 것은 ‘느끼는 인간의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 사람을 만나면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인정받는 느낌을 받지만 한국 사람을 만나면 그렇지 못하다. 기분 나쁜 표현들을 너무 많이 듣다보니 마음의 문을 닫고 대해야 한다. 미국에 이민 와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조심하지 않는 걸까? 한인들이 만나는 모임에는 서로 동등하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너보다 낫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 먼저 나이를 따지고 학벌을 따지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우의를 점하려고 한다. 초고속 경제성장에 따른 지나친 경쟁 체제가 가져온 부작용일 것이다.

한글은 너무나 우수한 언어지만 존댓말이 있다는 점은 정말로 마음에 안 든다. 영어처럼 한글에 존댓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소통을 더 잘 했을 것이다. 선배들에 대한 예의만큼이나 후배들에 대한 예의도 중시되어야 하는데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기대감이 소통을 막는다. 선후배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예를 중시한 것이 한국의 유교적인 전통이라면 이것 또한 나이가 주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배들의 갑질(?)일 것이다.

나이가 적으면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한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한인 1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단체에 후세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나 우리의 후세들에게 선배들은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상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만나는 여러 모임이 시들해지는 것도 우리가 공적인 모임에서 지켜야 할 쌍방향의 예의를 무시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선배들의 아량과 소통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후배들에게 받으려는 예의보다 베풀려는 예의가 배가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인사를 안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절대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얼마나 유지할지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할 수 있으면 근사할 것 같다. 한국에서 28년을 살다 와서 뼛속까지 한국인이지만 이런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후배들이 가지고 있는 나보다 나은 재능과 능력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고 상대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은 너무나 비겁한 일이다. 후배들에게 상소리로 욕하지 않고 때론 존댓말을 하는 것은 그들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건 선후배 사이건 예의바른 표현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개인적인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단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며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회를 수준 높게 만든다. 상처보다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사람들이 있을 때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택용 발행인 / 주간미시간, 마이코리안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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