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아시안 증오, 팬데믹 이전보다 3배”

AAPI 성인 절반 “인종·민족 이유로 증오 행위 경험”…한인사회도 신고·교육·연대 체계 강화 시급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했던 반아시안 증오범죄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서 한인사회를 비롯한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팬데믹 초기처럼 거리에서 노골적인 폭행이나 언어폭력이 집중 조명을 받던 시기는 지났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아시아계·태평양계 (AAPI)를 향한 차별과 위협, 괴롭힘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 브리핑 에 따르면, ‘코로나19 증오범죄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AAPI를 겨냥한 증오범죄는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약 3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반아시안 정서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 특정 인종과 국가를 연결하는 표현이 반복되면서 확산된 편견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때마다 다시 증오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조사 결과 AAPI 성인의 약 절반이 인종이나 민족을 이유로 한 증오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신체적 폭행뿐 아니라 모욕적 발언, 위협, 온라인 혐오, 직장·학교·공공장소에서의 차별적 대우 등이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증오범죄를 단순히 ‘폭행 사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거리에서 들은 한마디의 욕설, 상점이나 대중교통에서 겪는 위협적 시선, 학교에서 반복되는 조롱도 일상생활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계 이민자와 2세, 유학생, 시니어, 소상공인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영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피해를 당해도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신분 문제나 언어 장벽이 있는 이민자는 경찰 신고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또 한인 소상공인들은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업종이 많아 언어폭력이나 위협적 행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반이민 정서와 정치권의 배타적 발언이 증오 분위기를 부추기는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선거철이나 경제 불안이 커지는 시기에는 이민자와 소수계를 ‘문제의 원인’처럼 몰아가는 발언이 늘어나고, 이런 분위기가 실제 거리와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계는 오랫동안 ‘조용한 소수계’ 또는 ‘모범 소수민족’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놓여 있어, 피해를 당해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실제 피해 규모가 공식 통계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브리핑에서 언급된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가운데 신고한 비율은 약 2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피해를 경험한 5명 중 4명 가까이는 경찰, 정부기관, 시민단체 등 공식 창구에 알리지 않은 셈이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신고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불신, 보복에 대한 두려움, 언어 장벽, 이민 신분에 대한 걱정, 증거 부족,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이 꼽혔다.

이 같은 낮은 신고율은 증오범죄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피해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으면 정부와 수사기관은 문제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예산과 인력 배정도 충분히 이루어지기 힘들다. 커뮤니티 차원의 교육과 예방 프로그램 역시 실제 필요에 비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신고는 개인 사건을 해결하는 절차일 뿐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의 안전을 위한 데이터 축적”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다만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신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인사회에서는 한국어로 접근 가능한 신고 안내, 피해자 지원 핫라인, 법률 상담, 정신건강 상담, 경찰과 커뮤니티 단체 간 협력 체계가 더 촘촘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 또한 피해자가 경찰 신고를 원하지 않더라도 시민단체나 커뮤니티 기관을 통해 사건을 기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안적 창구도 중요하다.

교육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증오범죄와 일반 범죄, 차별, 괴롭힘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건 발생 시 어떤 정보를 기록해야 하는지 알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해자의 인상착의, 시간과 장소, 발언 내용, 목격자 여부, 사진이나 영상 자료 등은 이후 신고나 법적 대응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학교와 교회, 노인회, 상공회의소, 한인단체 등이 함께 정기적인 안전 교육과 권리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증오범죄는 단순한 개별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 당사자는 외출을 꺼리게 되고, 대중교통 이용이나 쇼핑, 학교생활, 직장생활에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시니어들은 산책이나 장보기 같은 일상 활동을 줄이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할 수 있다. 소상공인들은 영업장 안전에 더 많은 비용과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증오범죄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의 사회 참여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한인사회가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팬데믹 이후 반아시안 증오범죄는 특정 도시나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대도시뿐 아니라 교외 지역에서도 발생해 왔다. 한인 밀집 지역이라고 해서 안전지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어와 문화적 장벽이 큰 커뮤니티일수록 피해가 드러나지 않고 묻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인사회에는 세 가지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째, 피해를 숨기지 않고 기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둘째, 경찰과 정부기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한인단체, 법률단체, 시민권 단체, 학교, 종교기관이 연결된 지원망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다음 세대에게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권리, 차별 대응 방법을 교육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증오범죄법 시행 5년이 지났지만, 법 하나만으로 사회의 편견과 혐오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법적 장치가 실제 보호로 이어지려면 피해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신고 체계, 커뮤니티의 신뢰, 공공기관의 적극적 대응,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반아시안 증오범죄 문제는 이제 팬데믹 시기의 일시적 후유증이 아니라, 미국 사회가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인종 정의와 시민권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한인사회를 포함한 AAPI 커뮤니티가 더 이상 침묵 속에 피해를 감내하지 않도록, 지역 차원의 연대와 제도적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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