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태극마을 30주년 잔치열렸네~

김흥기 장로 현판 제막식 개최, 당시 한인 사회가 한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

 

[웨인=주간미시간] 김택용 기자 = 30주년을 맞이하는 태극마을이 28일 기념식을 개최하고 태극마을 건립을 주도했던 고 김흥기 1대 회장의 현판식을 거행했다.

태극마을 30주년을 맞아 고 김흥기 회장의 현판식이 거행되었다.

태극마을 건립을 위한 준비위 형식으로 조성된 미시간 한인 주택공사는 1984년 2월 정식 내규를 정하고 분과별 위원회를 조직했다. 이사장겸 회장에 김흥기 장로, 부회장에 이선익, 유효명, 총무에 박광진, 재무에 신현찬, 건축분과위원장에 김문겸, 운영분과위원장에 김영경, 재정분과위원장에 이문근, 홍보분과위원장에 조규홍을 임명했으며 정화, 김진상, 김석희, 임준효, 방화경, 윤인광, 정병헌, 변성균, 소용수, 홍순영씨들이 이사로 추대되었다.

태극마을의 탄생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버뮤다 국제방사선과 학회에 참석한 김흥기 장로는 시카고 한인 사회에서 정부보조금으로 연장자 아파트를 건립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미시간에도 연장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당시 미약했던 미시간 한인사회를 위해 거액의 보조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김흥기 회장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고 김흥기 회장의 아내인 김소영씨가 답사를 전하고 있다.

현판식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온 고 김흥기 주택공사 회장의 아내 김소영 여사는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미시간 주지사, 연방 상하원의원, 시장 등 정치인들을 만나 설득했다. 마침내 1984년 9월 25일, 칼 레빈 연방상원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350만 달러의 보조금이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껑충껑충뛰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동양계로는 처음으로 인가를 받은 것이었다. 디트로이트 뉴스, 프리프레스 등에서도 특종으로 보도했다.

완공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흥기 회장을 비롯한 준비위원들은 낙심하지 않았으며 결국 1989년 1월에 완공의 감격을 맞이한다. 김소영 여사는 “저희 가족은 남편의 많은 과업중에서도 태극마을 건립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쉽게도 김흥기 회장은 12년전 67세의 나이도 소천했다. 태극마을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했던 그는 병원에서 퇴근하는 길에 태극마을에 들러 주위를 돌아보고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김소영 여사는 남편 김흥기 장로를 애국자였다고 자랑한다. “어른들을 공경했고 가족과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으며 충실한 삶을 살다가 간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평가했다. “그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가장 값지고 귀한 선물이었다”고 고백한 김소영 여사는 “남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제가 가장 존경한 분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미시간 한인사회의 소중한 유산인 태극마을이 차세대에도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봉사기관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고 말하고 “특히 태극마을이 훌륭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수고해 주시는 김진상 주택공사 현 회장님, 정병헌 이사장님과 모든 이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30주년 기념식에는 웨인시 소방대원들과 낸시 나엘 노인복지 책임자등이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태극마일 관리 회사에 근무하는 엘리자베쓰 레인이 태극기 문양을 넣어서 30주년 케이크와 컵케이크를 근사하게 만들었다. 30년간 입주한 4명(배판순 1989년 2월 24일 입주, 김선예 1989년 3월 1일 입주, 이효칠 1989년 3월 6일 입주, 곽의필 1989년 4월 1일 입주)의 주민에게 난초 화분을 선사했다. 성김대건성당 유쓰 오케스트라중 3명(김수환:바이올린, 윤여은:플룻, 서상민:첼로)이 참가해 축하연주를 해주었다.

김진상 현 회장은 “고 김흥기 회장과 당시 임원단들의 노고로 건립된 태극마을이 무사고, 무사건 아파트로써 지역 사회 연장자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립 초기부터 참여했던 김 회장은 “초기에는 부모님을 태극마을에 입주시키면 불효한다는 생각에 한인들이 꺼려하는 곳이었으나 3년정도 지난 다음부터 연장자들끼리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장자들께서 공동 생활을 하는데 많은 의식의 변화가 되어 지금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 그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자주 방문해 주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라고 전했다. 어르신들은 외로운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데 감사하게도 디트로이트 연합장로교회에서 매달 방문하여 ‘천국 잔치’라는 행사를 열어주고 있고 성김대건 성당, 예수재림교회, 한미여성회에서 1년에 한 번씩 방문해 주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정병헌 이사장이 김소영 여사를 소개하자 참가자들이 박수로 답하고 있다.

정병헌 이사장은 30년전부터 태극마을 건립을 위해 수고한 이사진들을 소개했고 주민들은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30년전 태극마을 건립을 위해 미시간 한인사회 모든 직능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당시 이사회는 기금 모금 파티를 열고 2만 달러를 조성했으며 15명의 이사들이 천달러씩 기부하여 초기 자금을 마련했다.

정병헌 이사장은 “당시 한인사회가 숫자는 적었지만 지금보다 결집력이 있었다”고 회상하고 “한인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 협조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흥기 회장님이 사명으로 알고 전력을 다했으며 나머지 이사들과 한인사회도 큰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태극마을은 미시간 한인사회의 선배들이 공익적인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협동의 산물이다. 그 혜택은 한인 연장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미국인들에게도 오픈되어 있다. 연장자들끼리 벗삼아 살아갈 수 있는 태극마을은 미국에서도 한인 사회가 주도적으로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는 혜택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샘플로 남아있다. 30년전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주택공사를 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

김소영 여사와 주택공사 이사들이 30주년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미시간 주택공사 이사진들이 태극마을 3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태극마을 연혁

1984. 2 미시간 한인 주택공사 설립
1984. 4. 29 태극 마을 설립 신청서 미정부에 제출
1984. 9. 25 HUD 1차 승인 – 350만 달러 (38개 후보자 중 4개만 승인)
1987. 11 HUD 최종 승인
1988. 4. 20 정식 기공식
1989. 1. 19 태극마을 건축 완료 인가 획득(57,747sqft)
1989. 1. 30 첫 입주
1989. 1. 31 입주 예배(김득렬 목사)
1989. 4. 29 태극마을 개관식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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