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인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2)

– 기자는 아무나 하나?

기자(記者)란 무엇인가?

그들은 스스로 자기들을 글 쓰는 ‘놈’ 이라고 부른다. 다른 좋은 직업들은 의사(醫師), 변호사(辯護士), 검사(檢事)라고 모두가 ‘사’ 자가 붙지만 그들은 기자(記者)라고 기록하는 ‘놈(者)’자라고 한문을 풀어 쓰며 스스로 겸손이 낮춘다. 그리고 자기 직업을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업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자는 가까이 해도 손해 멀리 해도 손해 라는 말도 있다.

어려운 기자 고시를 통과한 기자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들이며 특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명예욕이 있을 뿐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새 역사를 남긴다는 뚜렷한 사명이 있기에 호칭에 상관 하지 않는다.

지역신문은 그 지역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한인사회의 활동을 기록 보관하여 후대에 남긴다는 의식으로 신문을 만든다. 우보호시(牛步虎視), 걸음은 황소처럼, 눈은 호랑이처럼!!

신문 일면을 보면 종종 서두에 굵고 진한 활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일명 특종 기사다. 이런 특종을 잡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신문기자들은 밤늦게 까지 발로 뛴다. 모든 기자들에게는 “특종”은 기자의 존재이며 숙명이며 기자는 오직 “특종”으로만 말한다.

때로는 회의실 차디찬 쇠창문에 귀를 대고 몇 시간이고 엿듣기도하고 화장실 쓰레기 통을 뒤지기도 하며 귀한 물증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이유나 변명은 제대로 된 기자들에게는 그들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특히 어떤 “방해나 훼방 때문에” 기사를 못썼다는 말은 아예 생길 수 도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스스로 남부끄러워서 기자 전체 의 명예에도 침 뱉는 일이기에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되 선후배간에 선을 분명히 하며 군대 서열 만큼이나 위아래를 중요히 여긴다. 간발의 차이로 자기 기사가 수없이 낙종이 되어 버려도 깨끗이 승복하고 무교동, 청진동 뒷골목에서 낙지를 곱씹으며 또 술 잔을 기울이며 언론 선배들을 닮기 위해 고심했던 그 옛날 젊은 기자들이 보고 싶다.

내일의 특종을 위해 또 다시 일어나 뚜벅 뿌벅 그들은 걸어 갈 뿐이다. 그들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매일 매일 특종과 낙종 사이에서 그들은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는 인생이다. 나는 그런 기자들을 마음속에 늘 그리워 한다.

내가 만나본 진짜 기자들

윤병해(전 조선일보도 독일특파원, 현 뉴욕거주)씨는 참으로 청렴결백했던 기자로 60~70년대 조선일보 특종기자 1위, 사회부 기자로 디트로이트에서 6년 거주하다 뉴욕으로 이주 했다.

육길언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시카고편집국장, 중앙일보 편집국장 역임, 현 자유집필인)씨는 70년대 좋은글 기자1위로 이곳에서 거주하다가 오래 전 시카고로 이주했다.

송윤근(한국일보기자, 서울경제, 매일경제 논설위원, 디트로이트대학 경제학 교수)씨는 현재 미시간 거주하고 있으며 경제전문 기자로 60~70년대 기획특집기사로 명성을 날렸다. 송 선생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그는 서울에서 고향에 갈려면 전북 정읍역 에서 내려야 했다. 정읍역은 특급열차, 완행열차든 모두가 정차하는 역이었다. 정읍역에서 한 정거장을 내려가면 전남 장성역이다. 당시 장성역은 완행열차만 정차하고 특급열차는 정차 할 수 없는 간이역이였다.

송기자는 고향이 장성이다. 그러나 그가 고향에 내려 갈 때는 예외로 장성 간이역에 특급 열차가 잠깐 정차하여 송기자를 하차 시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기자를 우대하고 대접했던 낭만의 시절이 있었다. 위 세분의 기자는 미시간에 거주 했거나 현재 거주하는 전직 기자로 필자와 친분 있었던 당시 특종 제조기로 불리던 대 기자(大記者)들 이었다.

김대중 (조선일보 특별논설위원, 편집국장 역임, 정치부 대기자)기자도 설명이 필요 없는 현역 특별칼럼위원이다. 청와대 성명서보다, 어느 야당 대표 기자회견 보다 이분의 칼럼이 영향력이 있다. 권위의 한국최고 정치분야 논객이다. 이런 대기자에게도 초년 견습시절이 있었다.

정당 출입기자로 안국동 신민당 출입 정치부 기자시절 나는 그를 여러번 만난 기억이 있다. 어느날 우연히 나는 낡고 닳아 헤어진 그의 구두 밑창을 보았다. 당시 느린 전차나 콩나물 시루속 같은 버스를 타거나 발로 뛰어 다니며 열정적으로 기사를 썼던 그의 젊은 기자시절 나는 진즉 예감 했다,<저 양반 꼭 성공 할 것 이라고>.

나는 그 기자를 80년대 초 디트로이트에서 다시 만났다. 윤병해 기자가 그의 선배였기에 미국에 오는 경우엔 꼭 선배를 만나 보려고 여기 디트로이트 까지 찾아 왔다. 세월이 흘러 그는 나를 기억 할 수 없을 지라도 나는 그를 좋아 한다. 왜? 그에게 정치권에서 수 많은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런 유혹 다 뿌리치고 지금까지 현역으로 허름한 책상에서 기자의 명함으로 자리를 지키고 글을 쓰고 있다.

이선주 기자도 있다. 그는 코리언 헤럴드 기자, LA 한국일보 편집국장, 중앙일보편집국장 역임, 크리스쳔 싸이언스 주필이다. 저서로 <고난과 영광의 100년><미주한인 공동체 이야기><북미주한인교회 발자취><흥사단100년사>있는 그는 양심적인 인권 운동가이자 사랑의 글과 감동의 기도문을 보급하고 집필하는 목사님이다. LA에 갈 기회엔 꼭 찾아 뵙는다.

상기 위 두 어른은 이민 후 여기서 재회한 분들이다.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는 이유는 다른 오해가 없으시기 바라며, 훌륭한 기자를 많이 보고, 느끼고 늘 관심이 있었기에 기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좀 안다는 말씀을 드릴 뿐이다.

내가 만난 대기자 들은 어느 직업인 보다 지성미가 넘쳤으며 그들은 많은 독서를 했고 역사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했으며 국가관과 역사의식이 누구보다도 확고하다. 기자가 좋은 글을 쓰려면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체험을 하면서 사람이 사는 이야기와 땀 냄새가 풍기는 글을 많이 써야 한다. 잘 못쓰면 속비어서 소리만 요란한 깡통같은 자기 속만 보일 뿐이다.

취재기자란 아주 치열한 사회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식의 핑계와 모함 그리고 졸렬함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다. 오랫 동안 각 신문사 미시간 지국 기자들과도 교분을 가지고 있지만 미시간에서 신문지(news paper)도 없는 자칭 기자처럼 앞뒤가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 기자라고 모두가 다 기자는 아니다. 미시간이 그리 호락 호락 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자기 자랑에 도취되어 있으며 자기가 편리한데로 직함의 변심과 장난이 너무 심하면 요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글을 보니 소양이 한참 함량 미달이어서, 신사임당 님이 하신 “까마귀 노는데 백노(白鷺) 야 가지 마라” 는 말씀이 생각난다.

기자 행세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주에 구정물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지각있는 미시간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자중하기 바란다! 진정한 기자라면 자신을 변호하려고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40년 한인회 역사를 실추시키는 장본인들은 자중하라!

자기의 책임하에서 자주적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데, 못났으면서 잘 난체하고, 실력이 적으면서도 많은 체하는 교만(驕慢)은 자기 분(分)을 알지 못하는 정신악(精神惡)이다.

무식(無識)하면 만용(蠻勇) 하다고 했던가, 마이동풍(馬耳東風)이고 소 귀에 경 읽기 일 뿐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생각과 말이 통하지 오만불손(傲慢不遜)에 사로잡힌 교만한 인간처럼 세상에 보기 흉한 것은 없다.

외국인들에게 옷깃만 스쳐도 정중히 “익스큐즈미” 하는 미국사회에서 특히 외교관에게 시정 잡배나하는 상소리를 지껄이고, 공적인 장소에서 난동과 추태를 부리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사람이 디트로이트 한인 대표라고 버티고 있으니 이들을 누가 인정 하겠는가? 모든 사건들을 변명으로 감춰버리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이런 인간들을 구토(嘔吐),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타기(唾器), 지나가면 가래침을 뱉는 그릇으로 치부 했었다. 해가 바퀴었다. 조속히 예의에 합당한 사과를 하고, 더 추한 꼴 당하지 말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고 참회하기 바란다.

디트로이트 한인회는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위상과 품격을 상징한다. 선임자들이 오랜 세월 형설의 노력으로 어렵게 쌓아온 한인회의 좋은 이미지를 이렇게 망쳐 놓다니, 추락시킨 한인사회의 위상을 어찌 할 셈인가? 이 상실감과 허탈을 어찌 할 것인가? 추태와 죄상은 미시간 역사 내내 기록되고 상기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후세들이 경계로 삼을 것이다.

디트로이트 한인 동포 여러분!

경인년(庚寅年) 새해부터는 몸과 마음이, 정신(精神)과 양심(良心)이, 뜻과 행동(行動)이 더 한층 성장(成長)하고 호랑이의 기백으로 전진(前進) 하시기를 굳게 기약(期約)하면서 새 출발 합시다. 감사합니다.

전 디트로이트 회장: 황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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