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으로 숨진 미군 병사는 지금까지 6,000여 명을 헤아린다. 앞으로 사상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 뻔해 군에 대한 불신, 불만이 팽배해져 있을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갤럽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는 그러나 상반된 결과를 내놨다. 대표적인 16개 직업군의 신뢰도 조사에서 군대가 1위를 차지한 것.
응답자의 76%가 군을 가장 믿음직한 조직으로 꼽았다. 2위인 중소기업 보다 무려 10% 포인트나 높았다. 더욱 놀란 것은 벌써 20년째 군이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톱 5 직업군엔 군대와 중소기업 외에도 경찰과 교회, 병원이 포함됐다. 지난해 51%였던 대통령직은 올해 무려 15%포인트나 급락해 충격을 줬다. 불신이 가장 높은 직종은 정치권. 대기업과 은행, 언론, 의료보험도 바닥을 쳤다.
군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해임된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의 전역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24일 치러진 행사에서 예포를 17발이나 발사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해준 것이다.
매크리스털은 대장진급 1년차. 군 인사법엔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역할 경우 중장으로 예편하게 하게 돼있으나 대통령 특명으로 대장 계급장을 달고 군을 떠날 수 있었다. 항명죄는 밉지만 그간 국가를 위한 그의 충성과 군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참작해 내린 정치적 결단이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군에 대한 인식은 세대에 따라 확연한 온도차이를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거나 지켜 본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에선 불신의 골이 깊은 반면 이들의 자녀 세대는 군대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군에 대한 시각을 영화에 빗댄 학자들도 있다. 베이비부머는 ‘지옥의 묵시록’ 세대, 젊은이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세대로 구분한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묵시록’은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고발한 기념비적인 반전영화로 꼽힌다. 60대에게 군대는 이처럼 폭력적이고 잔인한 조직으로 입력돼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은 전쟁의 또다른 면을 그렸다. 4형제 중 혼자 살아남은 막내를 구해내 고향의 엄마에게 데려다 준다는 휴먼 스토리다. 희생과 인간애를 담아내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불린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사는 어린 학생들의 군에 대한 생각을 엿보게 해줬다. ‘군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영웅’ ‘희생’ ‘자랑스런 미국인’ 심지어 ‘(조지) 부시’라는 말도 튀어나왔다. 죽음과 살인 등 부정적인 단어는 전혀 없었다.
하버드 대학 조사에서도 군은 기업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저비용 고효율’의 집단으로 생산성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군대는 사람 죽이는 것 배워오는 곳”이라고 교육방송에서 가르쳐 논란을 일으킨 한국의 30대 여교사와는 사뭇 다른 시각이다.
인터넷에서 ‘군살녀'(군대를 살해한 여자)라는 딱지가 붙은 이 교사는 “(군대에 가서) 그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스러워요”하며 군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동해에서 펼쳐진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한국에선 미국과는 반대로 젊은이들이 ‘묵시록’ 세대, 베이비부머들이 ‘라이언’ 세대에 속하는 모양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아무리 첨단무기로 무장돼 있다해도 결코 강군이 될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군살녀’가 한국사회에 울려준 경고가 아닌가 싶다.
박현일 기자, uk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