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눈이 사르르 다 녹아버렸다. 하지만 이제 봄이 오려나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시간의 겨울이 그렇게 호락호락 할리가 없다. 꽃샘추위도 남았고 몇 번 더 눈이 내릴 것이다.
어릴적 눈이 오는 것을 보면 마냥 즐거웠다. 집에서 기르던 바둑이와 동네방네를 뛰어 다녔었다. 그때는 비보다 눈이 더 좋았었다. 눈이오면 눈 씨움,눈사람 만들기, 고드름 따먹기 등 놀이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눈은 골치거리가 되었다. 눈이 덮힌 도로에서 운전을 해야하고 또 집주위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몇 주전 미시간에 몰아닥친 눈이 무릎 위로 쌓이면서 저걸 다 어떻게 치우나 고민이 생겼다. 남에게 돈을 주고 맡기면 편하지만 눈치우는데 돈을 쓴다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몇년 전 제설기 하나를 장만했다. 운동삼아 슬슬 치우면 되지만 눈이 너무 많이 오다보니 제설기도 속수무책, 꾀가 나서 나중으로 미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나가보니 내 집앞에 쌓여던 눈이 말씀이 치워져었다. 나는 누구의 소행(?)인지 금방 알았다.
사실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언젠가 부터 눈만오면 옆집과 상호 영토를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져 왔다. 옆집 남편이 출장이 잦아 아내만있는 경우가 많다. 그 부인이 여자의 몸으로 눈을 치우는 것이 안스러워 제설기를 돌리는 김에 옆집의 눈을 치워 준적이 있었다. 그것이 고마웠던지 다음 눈이 왔을때 옆집은 우리집 앞에 있는 눈까지 치워 놓았다. 이러기를 여러차레, 이제는 제설기를 먼저 잡은 사람이 치우는 김에 옆집 눈까지 치워주기 위해 서슴치않고 경계선을 넘는다.
한국사람들만 잔정이있는 줄 알았더니 미국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마음을 뭉클하게 하면 사랑으로 되갚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 우리 옆집에 사는 미국인은 내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도 아마 한국사람도 사귀어 볼만하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라간에 커다란 협약을 맺으며 우호를 증진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좋은 한국인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것일 것이다.
무묵뚝하고 퉁명스럽고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어글리 코리안’ 의 이미지를 버리고 사귀고싶은 ‘차밍 코리안’으로 남는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좀더 유리한 유산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한국의 대통령도,주미한국 대사도 못하는 일이다. 반드시 우리가해야 할 일인 것이다.
눈을 서로 치워주며 정을 쌓을 수 있는 곳,그래서 나는 미시간이 좋다. 그리고 나는 미시간에 눈이 몇번 더왔으면하고 기다린다. 이번에는 내가 옆집의 눈을 치워줄차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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