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기림비 옆에 자성비도 세워야…

– 국경을 초월한 폭력을 지양하는 공통적 책임 의식 필요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져있는 위안부 소녀상을 미시간에도 세우려는 움직임이 소녀상 건립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수경 건립 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고 그 뒤를 차승순 씨가 맡은 후 이 문제에 대한 한인 사회 의견 수렴을 위한 첫 토론회가 19일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아직은 기림비를 세울 것이냐, 소녀상을 세울 것이냐, 아니면 둘 다 세울 것이냐도 미정이다. 싸우스필드 시 도서관에 설치하려고 했으나 도서관장 및 시의원회의 반대에 봉착해 무산되었다.

이미 6개월 동안 추진되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어 미시간 한인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본 사업의 취지 및 진행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고 일부에선 반대의 목소리도 높은 실정이어서 사업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수적으로 보인다.

본 사업에 대해 건립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한인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애국심을 바탕으로 벌이는 사업이지만 본 사업으로 인해 자칫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일본 자동차 기업 상대 한국 부품업체나 일본 기업인 대상 한인 비지니스들의 의견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세심한 배려가 가동되었다는 점은 다행한 일로 보인다.

일본을 상대로 한 민감한 문제라서 반대를 해도 반대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심정도 이해가 간다. 자칫하면 친일파니 매국노니 하면서 매도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립위의 세심한 배려가 중요해 보인다. 무명으로 설문조사를 받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 지지하는지 또 반대의 목소리와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해 보려는 시도는 소녀상 건립으로 인해 한인사회가 두동강이가 날 수 있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 또 민심 수렴을 통해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을 중요시하겠다는 성숙된 생각이 바탕이 되었다.

급진적인 사고 방식이나 강경한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 “건립위가 조직되었고 책임자들이 임명되었으면 그대로 진행하면 되지 왜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건립위내에 대다수가 찬성하면 밀어부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건립위는 주민들로 부터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데서 온전한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 이 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결정한 문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것은 당연해 보인다. 결정은 건립위가 내렸지만 그 여파가 건립위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사안을 공론화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소수가 모여 전체에게 피해가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견제와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또 이런 의견 수렴 과정을 위안부에 무관심하던 한인들을 교육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도 있다. 건립을 하는 것보다 사후 관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후세들도 이것이 중요한 사업이며 우리 한인 사회 전체의 사업이라는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 져야 한다. 만들어 놓고 애물단지가 된다면 오히려 위안부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욕을 보이기 때문이며 미국 사회에도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일본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건립위의 희망일뿐 미시간 일본 사회는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다.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일본 사회와 한인 사회는 경색국면에 들어갈 수도 있다. 디트로이트 일본 총영사관에서 소녀상 건립을 막기위해 싸우스필드 도서관 책임자와 접촉했다는 루머도 있어 긴장은 이미 고조되어 가고 있어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은 “소녀상을 건립하고 미국 사회에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더 나아가 여성 인권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인류 역사에 이 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바 있지만 정말 그런 후속 사업을 꾸준하게 추진해 나갈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본 사회의 반발이 자명하다면 한인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후원할 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순서다.

한인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생길 수도 있는 악영향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또 우리가 지속적으로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소녀상이던 기림비던 세워도 된다고 본다.

소녀상을 건립하기로 했다면 문화회관 건립때 처럼 흐지부지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말고 내 것처럼 아끼고 관리해야 한다. 불끈 달아올라 건립해 놓고 꾸준히 관리하지 못하고 금방 식어버린다면 처음부터 안하느니만 못하다. 건립이 끝이 아니고 수십년동안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럴 정성과 조직력이 있는지를 반드시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립뿐만 아니라 활용도 잘 할 수 있다면 건립을 찬성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단 우려가 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유태인의 홀로코스트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유태인들은 피해자로만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일본으로부터는 피해자지만 베트남에게는 가해자라는 점이다.

베트남 꽝응아이 성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만행을 기록한 비문이 여러 개 있다. 이 중 그들이 세운 ‘증오비’에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에 기억하리라’라고 시작하는 비문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일본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준 아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폭력이 준 아픔과 고통은 모두 같은 것이다.

또 우리 위안부들에 대한 아픔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한국군에서는 ‘특수위안대’를 운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채명신 장군은 그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1994)에서 “한국군도 60명을 1개 중대로 서너개의 위안부대를 운용했다”고 증언했다. 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180~240명의 위안부를 한국군도 운용했다는 것이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보다 많은 한국의 여성들이 한국군과 유엔군을 위한 위안부로 이용되었다. 위안부를 아무나 이용한 것은 아니고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장교나 병사들에게 우선 순위를 주었다. 일부 사창에게 종사하던 여인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북한 여군 포로들을 강간한 후 이용했다는 증언도 있다. 일반인들도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았다는 정황도 있다.

한국의 아킬레스 건은 또 있다. 평소에 10만 정도이던 일본 관광객이 1973년 50만으로 육박한다. 그중 여자는 3만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 정부가 섹스관광을 묵인 또는 조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여성들에게는 통행금지도 해제하는 혜택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관광안내서에는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나라”라는 문구와 함께 “하루에 30달러만 쓰면 최고의 써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아킬레스 건이다. 성경에서 강간한 여성에게 죄없는 자들만 돌을 던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우리가 피해자로만 흥분할 자격이 있느냐가 문제의 촛점이다. 일본의 행위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의 만행은 반드시 규탄되어야 하고 공식 사과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요구가 떳떳하고 우리의 주장이 더욱 강해지려면 우리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나라와 사람들에게 우리도 사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시간에 기림비나 소녀상을 세운다면 우리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는 ‘자성비’도 같이 세워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아픔을 줬던 피해자들에게 먼저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앞으로 몇년후 만약 미시간 베트남 사회가 한인 사회를 상대로 ‘증오비’를 세우고 똑같은 요구를 한다고 해도 할말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한 것만 가지고 목소리를 높히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베트남 사회가 요구하기 전에 미리 사과하고 일본 사회와도 충돌보다는 화해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한국 국민들에게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선진국에 사는 우리의 역할이다.

또 이런 우리의 자성하는 태도가 후세들에게도 ‘무조건 부인하는 일본’과 다르다는 자긍심을 줄 것이다. 우리가 후세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작정 남을 블레임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다. 또 세계인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버지니아 테크 총격사건이 있었을때 미국인들의 태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만약 미국인들이 그 책임을 한국과 한인 사회에 확대시켰다면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었을까? 당시 한국은 한국 영주권자인 용의자를 놓고 어렸을때부터 미국에서 살았으니 한국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과 다를바가 없었다.

현재의 디트로이트 한인 사회가 후손들에게 생각없는 선조들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역사의식과 행동 철학을 가지고 균형잡힌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남을 향한 손가락질 보다 더욱 교훈적인 것은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성찰의 노력이다. 돌아보면 떴떴할 것도 없는 우리가 남의 잘못만 지적하며 매달리기 보다는 화해자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중재자는 당해도 봤고 가해도 해본 우리가 맡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일본 사회 및 베트남 사화와 더욱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이벤트들을 만들어 낸다면 세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더욱 수준높은 시민 의식으로 받아드려 질것이다.

주간미시간 발행인 김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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