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난코 보니(歎貧, 1975 년 지음)

안빈낙도(安貧樂道)하리라 마음먹지만,
정작 가난코 보니 맘 편치 않네.
마누라 한숨 소리에 문장(文章)도 꺾여지고,
아이놈도 굶주렸으니 교육(敎育)도 엄하게 못하겠어라.
꽃과 나무들 모두 썰렁해 보이고
시(詩)도 책(冊)도 요즘은 시들키만 해라.
부잣집 담 밑에 보리가 쌓였다지만
들사람들 보기에만 좋을 뿐이라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께서 1795 년도에 지으신 시(詩)란다. 이 시를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할 능력(能力)이나 어쩔 아무것도 없고 그럴 것도 아니지만 전에 안빈낙도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아는척하던 생각을 하니 부끄러울 뿐이다.

근래에 본의 아니게 나그네 되어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 비슷한 것을 해 보니 빈자(貧者)의 서러움의 그림자가 어떤 것인지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말하기 좋으니 노숙자(老宿者)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참으로 노숙자가 돼 보라. 그래도 안빈낙도를 즐긴다? 할까?

그런 위인(偉人)이기에는 아직 멀고 먼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한 때는 마치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 20)하신 예수님이라도 된 듯이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쓰는 것조차도 부끄럽다. 정작 가난하고 보니 맘이 편치 않네. 맘이 편치 않아 보지 못한 사람이 세상을 어찌 알랴?

그러기에 이런 고통(苦痛) 저런 어려움을 다 겪어 본 사람을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해 본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산전은 커녕은 언덕백이에도 가 보지 못한 것이 산전수전 다 겪는 듯이 떠드는 것을 보면 마치 전에 내가 안비낙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도사(道士)인척 하던 모습을 보는듯하기도 하다.

아는 것과 아는 척을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天地差異)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表現)일까? 아는
척을 하는 것은 길에서 주워들은 것을 자기 것인 양 떠들어 대는 것과 같다고 할까? 진실(眞實)
되지 못한 것을 진실 된 사람은 곧 알게 되는 것이다. 다산 선생의 말씀과 같이 맘이 편치 않아야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가난이 편안(便安)하고 즐겁다고 말하는 것은 진언(眞言)이기
어렵다. 정말 그렇다면 그는 성인(聖人)일 것이다.

그런데 어자피 가난 하다면(부자가 되기 어렵다면) 그 가난을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수련
(修練)을 함이 더 좋은 지름길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도 그리 쉽거나
단시일(短時日)에는 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도달(到達)하기에 불가능(不可能)한 것은 아닐 것이니 태산(泰山)이 높다하고
제 아니 오르려는 것과 같이 포기(抛棄)나 낙심(落心)을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시쳇말(時體)로
이런 것을 ‘뜨거운 감자’ 라고 할 것 같은데 뜨거운 감자라고 해서 먹지 않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
어려워도 극빈낙도를 할 줄 알도록 인고단련(忍苦鍛鍊)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상(頂上)에 올라가 보면 세상만사(世上萬事) 맘먹기에 달린 대로 즉 종심소욕(從心
所欲)이라도 불유구(不喩矩)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심촌(http://cafe.daum.net/hsdorf) 김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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