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닭갈비

양념 맛 이라지만 먹 잘 것 없는 닭 갈비로 이렇게 맛있는 요리는 국제적 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먹고 남은 양념으로 주모가 비벼주는 비빔밥 그 맛은 춘천을 결코 못 잊습니다.
삼국지의 조조(曺操)도 진즉 이 맛을 보았다면 아래와 같은 고사(固辭)는 생기지 못 했을 것이다.
지난주 소설 삼국지(三國志)에서 1800년 전 난세의 영웅 조조(155~220)의 실제 무덤이 중국 허난성(河南省)에서 발견되어 고고학상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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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연신 한숨을 토해내던 그는 “아~. 나에게도 제갈량 과 같은 그만한 인재가 있었다면 … 조조는 이렇게 한탄을 하며 군막 앞을 서성 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비(劉備)와 의 수개월에 이르는 싸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뽀족한 수 는 떠오르지 않고 한숨 만 거듭 나왔다.
익주 라는 땅을 손에 넣은 유비(劉備)는 한중을 평정 했지만, 조조는 그 한중을 손에 넣기 위해 대 공세를 취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전세는 불리 해지기만 했다.
유비의 병참은 후방 근거지에 확보 했는데 제갈량이 책임지고 있어서 든든했다. 조조는 모든 것이 제갈량 때문이라고 생각 했다. 그에 반해 자기의 병참은 혼란에 빠져 민심은 흉흉 한데다 도망병은 속출하고 군사들의 사기는 날로 저하 되기만 했다.
이 상태로 계속 싸운다면 아군의 피해는 너무 클 것이다, 그렇다고 한중을 포기 하기는 너무 아깝고……
조조는 장고에 장고를 거듭 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취사병이 야참으로 계탕을 가지고 와 조조는 계탕에 들어 있는 닭의 갈비를 유심이 바라 보았다.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웠다>. 그러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지금 유비와 쟁탈전을 벌이는 한중 땅이 꼭 닭의 갈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부하 장수가 들어와 야간 암호하달(暗號下達)을 요청 하자 조조는 짧게 외쳤습니다.
“계륵(鷄肋)”! 닭갈비!
그러나 암호(暗號)를 하달 받은 부하들은 무슨 소리인 줄 몰라 어리둥절 했습니다. 그런데 한 부하 만은 귀환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옆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 부하의 대답 은, “닭의 갈빗대는 먹을만한 데가 없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다” 한중 땅을 여기에 비유 했으므로 왕께서는 귀환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과연 조조는 그 부하의 말처럼 군사를 한중에서 철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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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계륵(鷄肋)이라는 고사성어(固辭成語)가 생겨나게 한 이야기 입니다.
이 고사(固辭)가 주고자 하는 뜻은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라는 것으로 버리기는 아깝고 갖기는 그렇고 한 것 때문에 머뭇거리다 보면 정작 큰 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 들도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은 “소탐대실(小貪大失)”한 경험이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갖기는 그런 것은 버리는 쪽으로 선택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조조가 만약 “한중”이란 땅을 끝까지 고집 했다면 그는 유비(劉備), 손권(孫權)과 함께 삼국지(三國志)에 그의 이름을 올린 영웅이 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버려 할 때 버릴 줄 알았던 그의 지혜가 사후(死後)1800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웅이 되게 한 것입니다.
“모든 일엔 예방이 최선의 방책 이다 없엘 것은 작을 때 미리 없애고 버릴 물건은 무거워지기 전에 빨리 버려라” – 노 자 –
연초에 한번쯤 점검하는 얘기 가 되었으면 합니다. – Nam 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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