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독교 무신론자였던 철학자/수학자 버틀란트 럿셀은 예수를 성질 나쁜 과격분자로 단정했다. 그 근거로 드는 것 중의 하나가, 아직 제 철이 되지 않아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배가 고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럭 화를 내 저주하여 말라죽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막 11:12-14, 20-24). 우리 성경도 분명하게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11:13b)고 밝히고 있다. 참 이상도 하시다. 왜 철도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확 죽여 버렸는가 말이다. 그러나 성질이 나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실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식하게 사람을 단죄하는 럿셀인 것 같다. 정상적인 무화과나무는 유월절(부활절)이 다 되어갈 무렵 오늘날 ‘타크시’라 불리는 초기 상태의 열매를 달고 있다. 우리가 fatsia 나무의 새순을 ‘두릅’이라 명하여 따먹듯이 유대인들은 9-10월의 숙성한 무화과처럼 단맛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이 애기 무화과를 따먹어 허기를 면하고는 했다. 예수께서 본 이 무화과나무는 잎사귀는 있었지만 그 ‘타크시’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쯤에 ‘타크시’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가을이 되었다 한들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은 너무 뻔한 일이었다.
이 비운의 나무는 정상적인 무화과나무가 아니었다. 잎만 무성하여 현혹하는 ‘위선적인’ 무화과나무였다. 그래서 땅만 버리고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결실불가의 나무를 말라죽게 하신 예수님의 기적은 일종의 퍼포먼스, 즉 행위 비유였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짐을 당할 것이다(마 7:19, 눅 3:9). 이 나무는 잎만 무성하다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고 주후 70년 로마와의 전쟁에서 폐허가 되는 예루살렘의 신세를 전조(前兆)하고 있었다. 지금도 열매 없이 헷갈리게 잎만 무성하여 희망이 없는 위선적인 신자들에게 주는 준엄한 각성의 말씀이기도 하다.
유승원 목사의 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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