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배자들을 부르시는 하나님

성경학자들은 창세기 1-11장을 원역사 pre-history 라고들 부릅니다. 그 말은 창세기 12장에 비로소 “역사” 라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이해를 담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창 12장이 역사의 시작이 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도 아니고, 아브라함이 무슨 프로메테우스 같은 문명의 시조인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출신지 메소포타미아에도, 그리고 아브라함이 훗날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내려갔던 이집트에도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며 시작된 역사란 일반적인 인류역사로부터 구별되는, 특별한 역사여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11장은 바벨탑사건으로 인류가 세계에 흩어진 것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사명을 거부하고 한 곳에서 편안한 성을 쌓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케 하시자 비로소 흩어져 온 세상에 퍼졌다는 이야기인데, 그 맨 끄트머리에 데라의 족보가 붙어 있습니다. 아들셋 중 막내를 잃는 슬픔을 당했는데 그때까지도 맏며느리 사래는 아이가 안들어섭니다. 무슨 생각에서였든지 데라는 아브람과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이민길을 떠나는데, 역시 알수 없는 이유로 중도에 멈추어 하란에 정착해 살다가 죽고 맙니다. 데라의 죽음과 더불어 “원역사”는 이렇게 별다른 팡파레가 없이 마쳐집니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구속사redemptive history 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을 통해 시작됩니다. 평범한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 한 사람의 곡절많은 인생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루시고, 다시 그들이 한 민족이 되게 하시고, 그 민족의 혈통에서 태어난 한 사람을 통해 온 인류를 당신께 불러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있는 이들은 크든 작든 모두가 이 역사의 물결에 합류해 들어온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 부르심에 순종해 “본토 친척 아비 집” 을 떠나 어딘지도 모르는, 하나님께서 훗날 지시하실 땅으로 따라 갔다는 이야기는 믿음의 파라다임으로 언제나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아브람과 구체적인 후손의 언약을 맺으시고 (창15장), 그 후손을 통해 뭇 나라를 이루신다는 약속의 표지로 새 이름 아브라함을 주시고 언약에 대한 믿음의 표지로 할례를 요구하십니다 (창 17장). 이렇게 해서 한 개인 아브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언약백성으로 확대되어 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브람이 실제로 한 일들을 살펴보면 의아스런 점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적이 없는 처녀지에 들어가 땅을 일궈낸 개척자가 아닙니다. 가나안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 거부가 된 사람도 아닙니다. 눈치없이 어물거리다 큰 싸움에 말려든 조카 롯을 구출해 온 것으로 미루어 얼핏 용감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14장),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아내 사래를 누이라 속였던 체면 구기는 일화를 보면 그것도 의심스럽습니다 (12장). 멋모르고 사래를 탐냈던 바로와 그 집에 재난이 닥치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바로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습니다. 자기 거짓말로 인해 야기된 이집트인들의 재난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보상을 해주지도 않습니다. 사래의 법적 보호자 자격으로 바로에게 받았던 재산도 그냥 들고 나옵니다. 사실 그돈은 신부의 몸값으로 치른 것이니 아브람이 불공정 거래, 사기를 친 것인데도 용케 천하의 바로를 피해 빠져나옵니다. 흠투성이인 사람 아브람에게서 하나님은 무엇을 보신 걸까요?

이 세월동안 아브라람이 일관되게 한 일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그는 짦게라도 정착한 곳에서 늘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세겜에서 (12:7), 세겜을 떠난 뒤 벧엘과 아이 사이 모처에서 (12:8; 13:3), 그리고 롯을 구출한 뒤 신비한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난 사웨 골짜기에서 (14:17-20)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헌물을 드렸으며 예배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브라함되게 한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배하는 사람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소명이란 결국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분을 예배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훌륭해서 쓰임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 예배자로 나아오다 보니 쓸만한 사람으로 빚어져 간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자녀된 우리도 그 어느 일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 되는 것이 해롭기야 하겠습니까만, 하나님께서는 눈여겨 찾고계신 사람은, 마음에서 원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 참된 예배자들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선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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