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중요한 이름입니다. 믿음의 원조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첫머리에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호칭도 “아브라함의 자손” 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본명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노인이 되어서야 새로 얻은 이름입니다. “고상한 인물”이란 뜻의 아브-람이 “뭇나라의 조상” 아브-라함이 된 그 사연이 다름아닌 구원역사의 중심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러 아브라함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를 통해 이루실 나라가 영적인 나라 믿음으로 사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은 그를 훈련해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셨는데, 자기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명령을 따르라는 것이 그 커리큘럼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자기 것을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이 한 문장은 하나님의 소명과 인간의 응답의 위대한 그림이며, 믿음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해답입니다. 히브리서 11:8 은 그것을 좀더 풀어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것을 받으러 따라 나서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부족사회에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삶의 근거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죄짓고 쫓겨나거나 흉년으로 굶어죽게 되지 않는 한 제발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문명의 요람 역사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를 고향삼았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이란 분의 음성을 듣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이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나선 아브라함은 거듭해서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리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창 11:31을 행 7:1-4과 비교해 보면,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란에 머물기 이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 지시하셨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부르심을 듣고 길을 나선 주체가 아브라함이었다면, 하란에서 시간을 끈 이유는 아버지 데라의 노쇠함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란에서 데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곧바로 이동을 시작해 가나안으로 옮겨갔으니까요. 그가 고향땅을 떠날 때는 아버지 데라가 의지할 존재였었지만, 믿음의 노정이 지체되다가 하란에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했을 때, 그에게는 더이상 의지할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아버지를 잃는 것을 하늘이 무너진다고 표현했는데, 육신의 아버지를 잃고 하늘아버지를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노정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하란을 떠날 때 그에게 소중한 존재는 조카 롯이였습니다. 롯은 사실상 아브라함의 양아들, 상속자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살림이 커지자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이른바 숟가락이 섞이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피차의 양을 치며 목초를 놓고 종들간에 경쟁과 시비가 생기자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서로 떨어져 지내자라고 제의합니다. 네가 어디를 고르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가마 해서 조카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한번쯤 사양할 만도 한데,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은” 옥토를 택해습니다. 아버지로 여기던 아브라함에게 죄송해한 눈치도 절 한번 드린 흔적도 없이 최고의 요지를 찍고, 두말없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 소돔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민족을 이룰 밑천인 하나밖에 없는 조카 롯을 떼내시면 어찌합니까? 이 땅을 대대로 주리라 하시고는, 롯이 좋은 땅을 차지하도록 두시면 도대체 … ? 그렇게 아브라함이 쓸쓸한 마음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는 말씀을 보십시오. “동서남북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네가 발을 딛는 대로 네게 주마 … 네 자손을 땅의 티끌만큼 많게 하마”! 소돔을 양보하니 온 땅을 주시고, 피붙이에 대한 애착을 놓으니 후손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믿음의 조상! 오리지날 믿음!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처음부터 풀 패키지로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은 삶의 고비마다 믿음의 훈련을 통과하며 아브라함으로 빚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 죄의 댓가를 치르시고 “거저” 주신 구원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용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전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유격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당신은 자기 것을 버리는 훈련을 받고 계십니까?
유선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