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포전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뒤적거리던 신문에 난 기사와 사진을 보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릴 만치 충격을 받았다. 그 기사는 미시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내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앤드류 허군을 지목하고 있었다. 설마? 아니 이럴 수가?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뇌리를 스쳐가며, 그가 자라는 동안 옆에서 지켜봐온 나로서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그 부모를 잘 알고 있는 몇몇 지인들과 서로 연락을 취해서 몇 번의 미팅을 갖고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이사건의 많은 부분이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건을 꿰맞추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인으로써 평범하고 열심히 살아온 그의 부모에게 비록 흡족한 학교 성적을 안겨주지 못했던 앤드류 이긴 했지만, 악인으로 지목 받기에는 너무 선했던 그에게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 부턴가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에서 과연 그 사건의 진실이 사건의 표면적 결과와 일치하는가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며 표면적 결과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은 이민 초기에 내가 몸담아 일했던 직장에서 수많은 타인종들과 섞여 일하면서,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 습관이다. 하루를 셋으로 나누어 24시간 풀가동을 하는 힘든 공장 일을 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가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얻게 된 이 습관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며, 어떤 조직의 책임을 맡은 사람 역시 아주 쉽게 내가 져야할 책임, 그 십자가를 남의 등에 올려 지운다는 사실이다.
수백 명의 타인종들 틈에서 어수룩한 동양인으로 보였던 나는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었고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고, 전혀 다른 시간대에 일하던 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후쯤엔 나의 잘못으로 지목되곤 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 억울함에 뜬 눈으로 밤을 설치던 와중에 나는 왜?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는 습관이 생겨 버렸고 사려 깊지 못한 다수의 대중이 소위 대세몰이를 통해 소수 사람들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목격했다. 나는 수많은 동료들 중 그래도 진실과 정의를 찾으며 내 편에 서주었던 극소수의 동료들에 의해 그 어려웠던 직장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이 천 년 전 그 어느 날에 그리스도를 향하여 외쳐대던 그 함성도, 바로 그 며칠 전 종려가지를 흔들어대며 구세주라 환영하던 그 군중들의 것으로써, 하느님을 철석같이 믿으며 경구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던 유대인들의 그 함성이요, 이 시간에 시류에 비켜있는 주위의 어떤 인물을 손가락질하며 희생양으로 만들어 가며 외치는 그 함성 또한 크리스천들의 함성이니, “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으나 뽑힌 자는 드물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새삼 나의 가슴을 치며, 나 자신은 누군가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며 외쳐대고 있지는 않는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저녁을 함께하고 헤어져 걸어가는 앤드류 부모의 쳐진 두 어깨를 바라보며, 저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의 무게를 짐작해 보지만, 어찌 십 분이나 이해할 수 있으랴…. 그들의 가슴속에 이사야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들려 주셨던 그 위로의 말씀을 새겨주고 싶다. “여인이 어찌 젖먹이를 잊으랴! 여인은 혹시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으리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하신 그 말씀을….
아직 이 사건의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부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우리 핏줄의 피지도 못한 어린 한 청년에게 부활의 하얀빛이 비춰지기를 여러 한인들과 함께 빌어보고 싶다.
조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