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현찬 장로가 소장한 ‘교황 성가대’ 음반, 무엇이 특별한가?

(다음은 신현찬 장로가 1997년 3월 24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이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는 성경말씀을 잘못 해석한 중세 교회는 음악사의 한부분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중세 암흑시대의 기독교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 사회, 예술의 모든 분야를 지배했고 종교의 부패와 잘못된 성경해석은 많은 비정서적인 사례를 남겼다.
그중의 하나가 여자들이 교회에서 큰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금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회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밖에서도 여자들은 제한을 받았다. 16세기에 로마의 시스틴채플에서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거세가수. 주로 소프라노)들이 활약했다는 기록이 있고, 카스트라토의 전성기 때인 18세기에는 이탈리아에만도 1년에 4천여 어린 소년들이 거세되었다.
당시 정상급 카스트라토의 인기와 영화는 요즘 영화배우나 가수들을 능가할 정도였다. 카스트라토는 젊은 사람들의 우상이 됐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목소리는마치 외계에서 온듯한 신비감을 주었다.
음성이 좋은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부모는 아들을 카스스라토를 만들어 부귀를 누리려 했다. 작곡가 조셉 하이든도 음성이 좋아 카스트라토가 될뻔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거세를 면했다. 헨델은 그가 작곡한 46개 중에서 적어도 16개를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었다.
모차르트도 카스트라토에게 성악이론을 배웠고 또한「이도메네오」등 여러 오페라에 카스트라토역을 작곡했다.
많은 카스트라토의 이름들이 역사에 남아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가수가 몇년 전 우리나라에 수입된 영화 「파리넬리」의 주인공 「칼로 브로스키」(1705∼1782·예명 파리넬리)다. 원래 작곡가였던 헨델이 오페라를 그만두고 오라토리오작곡을 주로 하게된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파리넬리 때문이었다. 헨델이 고용한 카스트라토 「세네시노」가 라이벌 회사의 파리넬리 인기를 따르지 못하는등으로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로마의 공식적인 입장은 소년들의 거세를 금했지만 시스틴채플에 카스트라토를 고용했다.
18세기 시스틴채플의 성가대 구성은 28명의 남자성가대원으로 4부가 각각 7명으로 되어있어 7명의 소프라노가 필요했다. 1810년대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카스트라토를 엄하게 단속하고 교회도 카스트라토의 고용을 제한해서 19세기말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1902년4월, 그라모몬의 「가이스버그」가 로마교황을 찾아갔다. 교황 리오 8세의 허락을 받아 시스틴채플의 성가대를 녹음했다. 속셈은 성가대 지휘자이며 소프라노 솔로이스트인 카스트라토 모레스키(1858∼1922)의 음성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을뻔했던 카스트라토의 음성이 음반으로 보존된 것이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음대에서 「구노」의 「아베 마리아」등 17곡의 모레스키 음성이 담긴 CD를 시판했다.
신현찬 장로가 <오디오>잡지에 기고한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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