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발행인 칼럼] 50대 중반에 죽음을 생각해 보다

오늘도 어디에선간 이 세상으로 사람이 도착하고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 죽음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첫 날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일 매일은 너무나도 특별한 하루 하루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진보 정치의 깃발을 들고 한 평생을 살아온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이루려던 깨끗한 정치를 바로 자신이 배신했다는 자괴감이 그를 자살이라는 끔찍한 결정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더 나쁜 놈들도 꾸역꾸역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가 떠난 후 그가 더 돋보이는 것은 왜일까? 평생을 통해 힘없고 빽없는 약자들을 대변해온 그를 찾는 조문객이 매일 수천명에 달하는 것은 그도 너무나 약할 수 밖에 없었던 미흡한 사람에 불과했음을 공감하기 때문일까?

기자가 살고 있는 미시간에도 요즘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다. 몇십년동안 알고 지내던 분들이라 그들과의 이별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1세들이 떠난 허전한 뒷자리에는 그들이 남긴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있다.

몇 주전 세상을 달리한 고 김욱 박사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휴학을 하기 일쑤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못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없었던 그는 일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고 남은 돈을 모아 다음 학기에 등록을 하고 또 돈이 떨어지면 휴학을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난주 앤아버에서 소천하신 고 김진순 권사도 마찬가지다.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8명의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열이 펄펄나는 아픈 동생을 업어 달래느라 학교를 빠진적도 있었다. 운동회에 신고갈 흰운동화가 없어 검은 운동화를 표백제에 담구웠던 철없는 동생, 너무 오래 놔두어 다 녹아버린 신발을 보고 망연자실해 하는 동생에게 꼬깃꼬깃 쌈짓돈을 꺼내 주던 누나…

이런 모습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을 보낸 그들이지만 부족함이 반드시 불행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희생 그리고 베품을 먹고 자란 자녀들과 동생들 또 이웃들이 그들을 그리워 하고 있다.

장례식은 참 묘하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망자인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1인칭적인 시점에서 장례식을 맞이한다. 정말 잠시 후면 나도 저자리에 눕기마련이라는 자연의 섭리때문일까. 조문객들중에 죽음을 남의 일로만 치부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숙연해지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또 마지막이라는 의미에 매몰되어있는 장례식은 이별의 장소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 사람이 떠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만남은 장례식을 찾은 조문객들끼리의 만남도 있지만 그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과거와의 만남, 또 앞으로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색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은 ‘다 떠날텐데 뭐하러 그렇게 아둥바둥 사느냐’, ‘남은 시간동안 좋은 일 많이하면서 즐기면서 살자’ 등등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이 세상이라면 지금의 고통도, 미움도 그리고 어깨를 짖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도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아 보인다.

장례식에 오면 무작정스러운 믿음에서 오는 신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바램이 있다. 정말 죽음뒤에 천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그것이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믿는다고 부르짖는 그 사후세계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때문이다.

그래서 받기만 한 인생의 후배들이 베풀다가 떠난 선배들을 다시 한 번 부등켜 안고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어리석어서 살아있을때는 그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한 후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반드시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올 가을에는 신문을 휴간하고라도 한국에 살아계신 늙으신 엄마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김택용 발행인 |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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