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물 아메리카] 인종 평등의 시대를 꿈꾼 지도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수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미국의 인종 평등에 큰 진전을 가져다준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였다.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애틀랜타에 있는 무어하우스 대학(Morehouse College)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크로저 신학대학(Croz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때 그는 인도의 무저항주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의 철학에 매료됐다. 킹 목사가 비폭력 투쟁을 원칙으로 한 건 간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이어 보스턴대학(Boston University)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자가 되는 것이 사명이라 여겼던 마틴 루터는 1954년부터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침례교 목회를 시작했다.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도화선이 된 시내버스 좌석 사건이 벌어진 건 바로 그 다음 해였다. 당시 몽고메리의 버스 제도는 백인이 앞에 앉고 흑인은 뒤에 앉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중간에 흑백 공용석이 있었지만, 앞의 백인 자리가 모자라면 그것도 백인한테 내줘야 했다.

1955년 12월 1일, 재봉사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가던 로사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중간석에 앉았다. 그러다 백인 승객이 올라타자 운전사가 팍스 여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가라고 명령했다. 팍스 여인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노 (No)”라고 하며 버티고 앉아 있었다.

팍스 여인은 규정을 어긴 죄로 체포됐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앨라배마에 쏠렸다. 평소 흑인 차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킹 목사는 지역 흑인 지도자들은 규합해 몽고메리 시내버스 거부 운동을 벌였다.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한 킹 목사는 살해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고,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백인들은 버스 안타기 운동이 곧 시들해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장장 382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1956년 11월, 미국 대법원은 몽고메리 시내버스 시스템의 인종 분리 제도는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킹 목사와 그의 동료들의 투쟁이 승리한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킹 목사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유명인사가 됐다. 미국 남부 여러 곳에서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평화적인 시위가 줄을 이었다. 민권운동은 급속도로 번져 ‘남크리스천 지도자 대회’라는 조직이 탄생했고, 그 회장에 킹 목사가 선임됐다.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는 식당이나 학교의 흑백 차별 금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이 벌어졌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고 개를 풀어 위협하며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다. 이 충돌에서 킹 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체포됐다. 민권운동 단체들은 버밍햄 시내의 상점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뉴스가 된 가운데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백인들은 결국 민권운동가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버밍햄 승리는 민권운동의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인종 평등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전국적인 시위를 추진했다. 그중 하나가 이곳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대행진이었다. 1963년 8월 벌어진 이 행진에는 약 25만 명이나 되는 군중이 참여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워싱턴에서는 여러 가지 행진이 벌어졌지만, 이처럼 대규모 행진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킹 목사는 바로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한 것이다.

1964년, 드디어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분리나, 피부색, 종교, 성, 또는 민족을 이유로 고용에서 차별을 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어서 투표권법, 평등 주택법 등이 연속 제정되면서 선거, 거주, 주택 구매 등에서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킹 목사는 민권법이 제정되던 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킹 목사는 수상 연설에서 ‘나에게 이 상이 주어진 것은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정치적 도덕적 질문에 비폭력 운동이 해답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킹 목사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1968년 4월 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 그러나 그가 뿌려놓은 밑 거름에 힘입어 2009년에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등장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값지게 사느냐라고 역설했던 마틴 루터 킹, 그는 억압받고 차별당하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었다.

 

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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