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아이유의 ‘삐삐’가 주는 교훈

‘건강한 거리감’이 주는 관용

[주간미시간 김택용 발행인] =  우리는 너무 가까워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 가까운 것이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가까워지려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결국엔 서로 같지 않은 것에 대해 힘들어 하고, 다른 것을 틀린것으로 혼동하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면 배척하기도 하고…

뭉치고 합치고 통일하면서 느끼는 일체감과 동질감이 소중하다면 동시에 함께 할 수 없는 그리고 영원히 이질적일 수 밖에 없는 대상들에 대한 관용은 어디에서 와야 하는 것일까?

지난 22일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으로 가는 여객기 안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창가에 앉은 한 백인 남성이 한 좌석 떨어진 자리에 앉은 80세에 가까운 흑인 노인에게 “함께 앉을 수 없다”며 자리를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승무원이 막무가내인 남성의 기세에 못 이겨 흑인 여성에게 다른 자리로 옮기겠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싫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남성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그는 노인을 향해 ”못난 흑인 개XX”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또 어제 27일 피츠버그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유대교 회당에서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 로버트 바우어스(46)는 예배시간을 기다렸다가 오전 10시경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소리 치며 총을 발사했고 평소 온라인에서도 반유대주의 내용을 수차례 게재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사람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지는 것일까?  가쿠타 미쓰요의 <죽이러 갑니다>에 나오는 7명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는 각기 미운 사람이 하나씩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대상은 가장 가까워야 할 딸, 남편, 어머니 등. 기대가 배반되는 곳, 그곳에서 미움은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일곱 명 주인공의 미움의 대상은 모두 너무도 가까워야 할 대상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피츠버그의 그 백인에게 유대인들은 가깝지도 않은 막연한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증오범죄, 또는 혐오범죄는 가해자가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 특정 집단에 증오심을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 행위를 말한다.

반대로 관용(寬容) 또는 톨레랑스(프랑스어: Tolérance)는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다른 것에 대한 증오를 관용으로 소화할 수 있는 지혜를 25살의 아이유가 최근 발표한 ‘삐삐’라는 신곡에서 찾아 본다.

아이유가 데뷰 10주년을 맞아 팬들에게 선사한 메시지는 ‘거리두기의 미덕을 모르는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의미를 확대해보면 세상 어느곳에나 있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교훈이 담겨있다.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 Stop it, 거리 유지해 cause we don’t know know know know
We don’t owe owe owe owe anything…

“우리는 서로를 아직도 잘 모르고
서로 여전히 빚진게 없는…
그래서 좋은 관계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이유의 말이다.

딸뻘의 아이유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곱씹을 만하다. 너무 가까워지려고 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상대의 마음을 가지려 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또 서로를 다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지나친 기대와 상실감이 크고 작은 폭력을 낳는것은 아닐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또 가깝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편견이 그들을 죽이고 싶을만큼의 증오를 키우고 있다면 ‘건강한 거리두기’를 생각할 절호의 타이밍일지 모른다.

내 자신도 10년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법인데 나와 같은 사람을 찾으려는 건 무모할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계절인 가을 밤이 아무리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가까운 사람들과 상처없이 오래 지내고 싶다면 ‘건강한 거리두기’가 필요해 보이는 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잃기 싫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래서 그럴 것이다. 소중하면 소중할 수록 두어야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역설이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배우자도 자녀도 친구도 연인도 그리고 부모까지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어야 하는가 보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도 내 맘대로 판단하고 정죄해서 죽여도 되는 괴물로 만드는 디모나이징(demonizing)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그제서야 찾아오는 내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그동안 남이 아닌 내가 나로부터 뺏앗은 것은 아닌지….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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