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자신만을 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산다.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얼마를 벌까, 무엇을 받을까를 생각한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예배를 받는 것으로 오해하며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철학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것은 절대로 자부심을 주지 못한다.
존경을 받으려면 이타적이 되어야 한다. 섬기는 자가 위대한 사람이다. 열심히 섬기라. 섬기는 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섬기는 것은 더 큰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붙들면 어떤 이익이 있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종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성도의 명예이다. 그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섬기셨다. 사람들을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절대로 섬길 수 없다.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이웃을 섬기라. 수십 년 동안 수녀원에 있으면서도 깊은 고뇌와 영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자매가 어느 날 깊은 시름 속에서 수녀원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는 복도에 걸린 성화가 들어왔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십자가는 그녀를 향한 예수님의 지극한 섬김이었다. 그녀는 그림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할 수 없는 영혼의 안식을 누리면서 빚진 자의 심정으로 자기 인생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인도의 캘커타를 향해 섬기고 또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떠났다. 그녀의 이름은 테레사였다.
이제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가치가 얻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음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웃을 섬기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이 시대에 괜찮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은 자는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 당신이 낮은 곳에 가보라. 그곳에 가면 정말 괜찮은 섬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위대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이란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위대한 동기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헌신할 때 그들의 삶에서 위대함이 나타난다. 당신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시간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가?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지는 않는가? 한 주간 동안, 몇 시간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이익과 상관 없는 봉사를 한 적은 있는가? 그게 언제인가? 당신의 이익에 관계 없이 봉사할 곳을 찾으라. 한 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봉사를 시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