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 그리고 정진경 목사님
두 노인 목사님들께 받았던 격려는 젊은 목회자에게 참으로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습니다.
1999년 겨울 몇 분의 목사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우거하셨던, 추양(秋陽) 한경직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그 이듬해 2000년 4월 남한산성에 개나리 꽃이 필 무렵, 한 목사님은 겨울 옷가지, 휠체어와 지팡이 등 몇몇 생필품을 남기시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빨강 벽돌, 기와 지붕의 아담한 주택 출입구에는 한 목사님께서 직접 써서 붙이신 <한경직 우거처>라는 나무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당신의 거처를 내 집이라는 개념의 ‘주거처’가 아닌, 남의 집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뜻으로 <우거처>로 여기셨습니다. 한 목사님의 우거처에 들어서면 왼쪽에 응접실이 있습니다. 그 자리, 그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겸손, 격려, 소박함, 관대함, 그리고 부족한 젊은 종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연로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늙고 싶었습니다.
벌써 십 년이 되었습니다. 2003년 저는 한 목사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영락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첫날 선포했던 말씀이 데살로니가 전서 5장으로 한목사님 평생의 생활 신조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3년 전,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정진경 목사님을 뵌 것이 이 땅에서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지난 7일 정목사님은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회장을 통해 모든 교회, 교단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겸손, 격려, 소박함, 관대함, 그리고 부족한 종에 대한 믿음… 한 목사님과 정 목사님은 형제 같았고, 가장 많이 닮으셨습니다. 지난 9월 3일 백주념기념교회에 마지막 편지를 보내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제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인자하게 사랑해주시고 기도해 주신 목사님 이십니다. 저희 부부와 가족을 늘 축복해 주셨고, 참으로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목사님도 그랬거니와 정 목사님도 아버지 보다는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부족한 저의 인생과 목회에는 이렇게 두 분의 큰 어르신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분인데도 마치 한 분을 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 날,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이재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백주년기념교회 성도들이 정진경 목사님의 천국환송예배에 드린 편지의 제목입니다.
“목사님, 저희 교회를 세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을 잘 관리하라는 사명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 사명이 버거움에도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신 것 감사합니다. 때때로 지치고 힘들 때, ‘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씀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험한 질고를 함께 져 주신 것,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어수선하고 향방 없는 타인들의 의혹에 늘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육신의 호흡이 다하시기까지 저희를 부르시고 약속하신 것에 대한 책임을 다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4년 여, 이 울타리가 있었기에 처음주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참 많이 의지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가신 목사님을 말 할 수 없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저희 성도 모두는 목사님과의 처음 약속을 끝 날까지 완성시키겠습니다. 목사님을 반겨 맞아주셨을 우리 주님과 함께 저희의 걸음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지켜 도와주시고 고비고비 응원하여 주십시오.“목사님, 온유한 미소의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십시오” (2009년 9월 6일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성도 일동 올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