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승원 목사의 재미있는 성경상식 (25) : 예수님의 과장법과 오리겐의 거세

성경은 반드시 문자적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비유로 풀어야 하는 것일까? 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기록할 때 의도한 것이 비유라면 비유로 풀어 읽어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반면 기록할 때 의도한 것이 직설적이라면 문자적 의미로 해석해야 바로 읽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이단(異端)들은 청개구리처럼, 비유를 의도한 것은 문자적으로 읽고 직설적으로 기록한 것은 소위 영해(靈解)나 풍유(諷諭)로 풀어나가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다들 알고 있지만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 산상수훈의 강성(强性) 명령들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인데 그렇게 오른 눈이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만들면 과감하게 빼버리라. 눈 하나 없이 천국에 가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다((마 5:28-29). 마찬가지로 오른 손이 잘못했으면 찍어버리라고도 하셨다(5:30). 만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따른다면 우리 같이 연약한 인간들 중 어디 성한 몸 갖고 천국 갈 사람들이 있겠는가.

이것은 화법(話法)이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 넘쳤던 우리 예수님께서 종종 사용하신 ‘과장법’(hyperbole)이다. 현실 또는 사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과장된 표현을 통해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진짜 눈을 빼고 손을 자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하겠는가? 그런 단절의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죄악으로 이끄는 집착이나 중독이나 환경은 과감하게 단절 하라는 강력한 요청이다. 후에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절)는 은유법으로 그 표현을 완화했고 죽여야 할 지체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절대로 손발을 자르거나 눈과 이를 뽑아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오리겐(185-254)은 성경을 풍유로 해석했던 초대 교부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문자적으로 따랐던 모양이다. 자신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 생식기를 제거했다는 기록이 후대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스개 일화로 언급되는 일이지만 ‘성결’을 위해서 죄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그의 경건 의지는 웃고 넘길 성격의 것이 아니다.

유승원 목사의 목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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