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둘째가 어렸을때 일입니다. 설날 떡국을 두 그릇을 달라는 겁니다. 평소에 영 안먹어 걱정이던 녀석이 어쩐 일이냐 물었다가 아이의 대답에 배꼽을 잡았습니다. “떡국 많이 먹어야 내가 언니 되잖아 …” 떡국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들은게 있으니 나름 생각해서 언니 추월작전을 세운 것이지요. 진지하게 한그릇을 더 달라는 딸에게, 이 세상엔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슬픈 진실을 과연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었습니다.
에서가 배고픈 김에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 하니 “장자권이랑 바꿉시다!” 했습니다. 그 말 들은 에서는 “맘대로 해!” 했습니다. 야곱이 언제부터 형의 장자권을 탐냈는지 참 궁금합니다. 장자권이란 나면서 결정된 것이고, 둘째가 더 유능하다 해서 넘겨주는 그런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족장이 생사여탈권을 갖는 근동사회에서 맏형이 사냥갔다 돌아와 배고프다면 동생이 알아서 먹을 걸 바칠 형편이지, 장자권 주면~ 하고 토를 답니까? “그 팥죽 그냥 줄래, 맞고 줄래?” 그러지 않겠습니까? 사실 에서가 정말 장자권이 팥죽 가치밖에 안된다고 생각해서 real deal 을 한것도 아니지요. 그랬으면 나중에 야곱이 자기 몫이었던 축복을 받은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 앞에서 애처롭게 울부짖을 이유도, 야곱을 죽이겠다고 이를 갈 이유도 전혀 없었겠지요.
그런데 팥죽과 장자권을 맞바꾸는 이 우스꽝스런 거래가 그들뿐 아니라 후손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실마리가 될 줄이야 .. 이삭이 정말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어 준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이삭의 본뜻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이삭이 장남 에서를 편애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앞을 잘 못보는 이삭이 아들의 신분을 확인하려 할 때, 야곱은 테스트마다 다 사기쳐서 통과했습니다. 촉각 테스트는 털가죽으로, 미각 테스트는 엄마의 요리로, 후각 테스트 역시 영악하게도 어머니가 가져온 형 에서의 옷을 입고 속였습니다. 옷은 신분의 상징입니다. 형 옷을 입은것은 완전 사기입니다. 귀는 밝았던지 이삭이 목소리는 야곱인데… 미심쩍어 묻습니다. 네가 내 아들 에서 맞냐? 그래도 겁없이 “예”라고 대답하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게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ID theft, 신분위장 사기이니, 계약 자체가 원천무효 되어야 맞는데, 이삭은 진짜 에서가 나타나 울부짖어도 야곱에게 내린 축복을 거두지 않습니다. 노망이 들어서일까요? 성경은 이삭이 야곱과 에서의 미래를 놓고 축복한 것은 믿음으로 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히 11:20 ). 야곱을 장자로 축복하라는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자기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 뜻이니까 믿고 따른 것입니다. 같은 히브리서는“ 음행하는 자와 혹 한그릇 음식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하라”고 엄하게 경계하십니다 (12:6)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신다면, 성경이 장자권에 부여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이삭의 뒤를 잇는 장자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인류구원계획의 중심에 서서 자기 시대의 몫을 담당하는 거룩한 의무입니다. 그러니 에서가 농담으로라도 장자권을 내버린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택을 거부한 것입니다. 에서도 선택을 했고, 하나님도 선택을 하셨습니다. 날때부터 “운명지워진” 차남의 자리를 거부하고 장자권을 원한 야곱의 마음에는 분명히 시기와 욕심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장자권을 향한 거룩한 야망이 있었습니다. 장자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야곱의 선택은 그로 이삭의 뒤를 잇게 하신 하나님의 선택과 맞물려 있습니다. 흔히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표현되는 이 둘의 상관성은 우리 지성으로 이해하고 풀기 어려운, 철학적으로 규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을 그대로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과 우리 앞에 놓인 선택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시고 부르시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겠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선택의 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그렇게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너희 앞에 생명길과 사망길이 놓여 있으니 네가 선택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길과 에서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둘다 죄인이고 둘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둘다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택했고 에서는 팥죽을 택했습니다. 그결과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고 에서는 에서로 남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유선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