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자 칼럼] 나쁜 나라는 없다. 우리가 깨어 있는 한…

– 세월호 2주기 추모 행사를 마치며

헤아려보니 54명이었다. Bingham Farms로 차를 몰아 그 자리에 와 앉은 이유는 54명 각자가 다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곳에는 귀찮음의 유혹을 이겨내고, 비난의 눈길을 뚫고 그 자리에 와 있다는 동질감이 있었다. 그 동질감은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의 연대를 불러냈고 그 연대감은 오길 잘했다는 안도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추모 연단에서 참배를 마치고 <고향의 봄> <엄마야 누나야> <상록수>를 부르며 추모식은 시작됐다. <거위의 꿈>을 플룻으로 특별 연주해 준 한 고등학생에게서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졌던 건 나 혼자만의 일이었을까? 이미 촉촉해진 마음은 <나쁜 나라> 영화 시작과 함께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 속으로 젖어들어 갔다.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영하는 두 시간 내내 끊임없이 떠돈 말이 있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는가?

도대체 왜 선원들은 그들만 급히 빠져 나왔는가?

도대체 왜 해경들은 구조에 그리도 더디었는가?

도대체 왜 아무도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가?

도대체 왜 이러한 대참사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가?

도대체 왜 정부는 유가족의 슬픔을 외면하는가?

도대체 왜 언론들은 세월호를 빨리 잊으라 강요하는가?

도대체 왜 그들은 공감능력을 그 토록이나 빨리 상실했는가?

도대체 왜 우리는 “지겹다” 말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슬그머니 피하게 됐는가?

그리하여 도대체 왜 나는… <나쁜 나라> 영화 보러오세요~ 무료입니다~라는 말을 크게 소리쳐 불러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가?

아직도 이 모든 물음이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떠돌고 있다.

질문을 해야 할 사람도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도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던 19대 국회가 끝나간다. 416 추모제는 행사가 있기 하루 전 발표된 20대 총선 결과로 슬픔의 와중에도 웃으며 끝마쳤다. 영화 속에서 유가족보다 더 유가족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박주민 변호사가 2016년 5월 30일 부터 국회에 입성한다. 뿐만 아니라 당 차원의 추모 행사 참석은 없을 거라고 불참 의사를 밝힌 더민주의 김종인 대표도 개인 자격으로 나마 광화문에 나와 헌화를 했다. 마지못한 참석이라는 비난도 없지 않지만 이제 국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좋은 징조로의 해석도 가능하다. 누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준 선거였고 우리는 그 곳에서 희망을 본다.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영화가 끝나고 304명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애도를 해도 가셔지지 않는 미안함. 유가족들에게 잊지 않겠다고, 끝까지 곁에 있겠다고 편지를 써도 시원한 문상이 되지 못하는 답답함, 터져 나오는 욕을 삼키지 않고 뱉어 보아도 줄어들지 않는 분노. 이 모든 것을 간직한 채로 다음 모임을 기약해야 할 시간, 준비해간 음식을 서로 나누며 자유롭게 담소하던 중 나온 이야기 하나가 맘속에 남는다.

40대 한 추모객의 이야기다. 그녀가 어렸을 적, 동네에서 막내 동생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온 동네를 헤집듯이 막내딸을 찾아 다녔다. 그런 어머니가 어린 그녀의 눈에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딸을 찾지 못한 어머니가 마침내 길바닥에 쓰러져 통곡을 했다. 그제야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동네 사람들은 마음을 모아 잃어버린 아이를 같이 찾기 시작했다. 결국 막내 동생은 온 이웃들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었다.그 시절에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이웃이었다.

연대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혼자서는 할 수 없어도 함께 한다면 가능해 지는 힘. 내가, 힘없는 한 개인이 세월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성 직전의 한 어미를 위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같이 찾아 주는 일, 그게 어렵다면 그 옆에서 지친 어미를 부축하고 위로해 주는 일. 그것도 어렵다면 저거 미친 여자 아냐? 라는 손가락질을 거두는 일만이라도 함께 해주시라고…

*저희 미시간 세월호 모임은 짝수달 세번 째 토요일에 같이 만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습니다.길을 지나시다가 아이들 사진을 들고 있는 저희들을 보신다면 오셔서 아는체 해주시길 바래봅니다.

Soo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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