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민자 교회와 교인의 5계명

– 우리의 터전인 디트로이트와 미시간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I. 마음을 열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헬라어로서 원래 ‘흩어짐’(dispersion)이란 뜻입니다. 신명기 28:25(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의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역」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설명할 때 적에게 패해 흩어지게 되는 상태를 ‘디아스포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바벨론 포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한국 밖에 있는 전 세계 이민자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한 두 축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지금 이 시간처럼 ‘에클레시아’(교회, ‘모임’이라는 뜻)로 모입니다. 그러고 나서 가정과 직장과 세상 속으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며 제자의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의 사이클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잘 모여야 됩니다. 그리고 잘 흩어져야 됩니다.
이 디아스포라가 시작 된 것이 바로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고 왕족과 귀족, 제사장들, 그리고 다수의 민중이 강제 이주된 ‘바벨론 포로’ 사건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편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디아스포라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II. 말씀 듣기 (예레미야 29:1-14)

이들의 현황은 한 마디로 말해서 파산의 폐허였습니다. 주전 587년 마지막 보루였던 성전이 불타버리고 시드기야 왕은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매여 끌려가고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귀족과 리더십에 속한 사람들이 다 포로로 잡혀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파산 상태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 현실은 ‘막막하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으니 어찌될지 몰라 불안하고 외롭고 처량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비록 범죄하여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 생활을 시작해야 되지만 벌을 주고 나서 자녀들이 애처로워 사랑의 위로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다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 그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같이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이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 이민의 시작이었습니다. 강제된 이주였지만 사실은 이민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보다 더 크고 물질적 문명이 다양하게 풍요로운 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미국과 같은 힘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이 막막한 현실에서 항상 싫은 소리를 하던 예레미야를 통해 이번에는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4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민자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민자입니다. 미국은 소위 신대륙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나라였습니다. 계기는 다양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새 대륙에서 돈 벌어 잘 살려고. 노예로 끌려와서.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실려 와서. 결혼을 해서, 그리고 이제 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등등. 오늘의 말씀은 정확하게 그렇게 이민 와서 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인 우리를 위한 계명입니다. 요즘 기독교의 시대를 바벨론 포로기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단 상황도 그렇습니다. 막막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십니다. 귀담아 듣도록 하십시다. 뭐라고 하시나요?

(1) 정착하라(5절)
우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 –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무슨 뜻입니까? 비록 포로로 잡혀가는 곳이지만 불안해하면서 유리방황하지 말고 그곳에서 정착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착하라. 마음을 붙이라는 뜻입니다. 한 달을 있어도 항상 마음을 붙이라는 명령입니다. 마음이 떠있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이런 사람을 ‘뜨내기’라고 합니다. 비록 남의 땅에서 살지만 뜨내기가 되지 말라 하십니다. 이민자 계명 1 – 마음을 붙여라!
비록 이방인의 땅에 왔지만 그 이방인의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생각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집 짓고 텃밭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곡식과 과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기업(분깃)에서 하는 일입니다. 제국 바벨론, 자신을 강제로 이끌고 와서 이민자가 되게 한 곳을 기업 삼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위한 애가를 부를 때 깨달았습니다. 원래 기업은 땅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땅이 기업이 아니라 여호와가 기업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기업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애 3:20-24.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하나님이 기업이십니다. 땅이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이신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니까 그것이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같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이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 기업을 바탕으로 정착합니다. 집을 짓습니다. 텃밭을 가꿉니다. 거기서 나온 산물을 취하여 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두신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시편 16:5-6.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2) 행복하게 잘 살아라(6절)
네 정착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할 일을 또 명령하십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고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십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런 계명을 주십니다. 이민자 계명 두 번째 것입니다. 29: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인생 끝난 것 아니다. 결혼하라. 자식을 낳아라. 그 자식들이 배우자를 얻어서 또 다시 자녀들을 생산토록 하라. 번영하라. 쪼그라들지 말라.
이것이 어떤 명령입니까? 창 1:28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창조 후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입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의 그 복을 받아 넉넉하고 풍성하게 살면서 삶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짓는 것입니다. 건설하는 것입니다. 창조와 번영의 명령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을 멸하고 나서 구원한 노아와 그 후손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심판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하는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포로로 잡혀온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이 명령을 주십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비록 잡혀온 곳에서의 삶이지만 기죽지 말고 생산을 하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지경을 넓히라 하십니다. 열심히 일해서 자기의 영역을 넓히십시오. 부지런히 개척하여 번성하면서 영토를 확장하십시오.
돈 많이 벌어 재산을 늘리세요. 사업을 확장하십시오. 견고하게 만드십시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괴적 탐욕의 문어발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확장, 최선을 다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라라는 하나님 강복의 지경 넓히기를 하라는 명령입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위축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기죽을 것 없다는 것입니다. 잘 살아라. 복을 주겠으니 행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민자는 잘 살아야 합니다. 기복주의에 입각한 ‘번영신학’을 많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복과 확장을 하나님의 은혜와 동일시하는 번영신학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예에게 자유를 주시기 원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붙잡아 일으키시기 원하십니다. 억압받는 자들에게는 해방을 주시기 원합니다. 마이너러티 이민자에게는 잘 살라고 격려하십니다. 잘 사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민자 계명 2: 행복하게 잘 살아라.

(3) 기여하라(7절)
그러나 나만 생각하여 이기적이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이 그들을 강제로 이주하여 여러 마을에 흩어놓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해서 무시하고 미워하고 적대시해야 되나요?
아닙니다.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이민자 계명 제 3입니다. 7절.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들어가서 살게 되는 그 이웃에 기여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민자가 어렵지만 이제 정착의 주인의식을 갖고 이웃을 사랑해야 됩니다.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려 하면서 그 사회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로 인해 이곳이 편안하게 됩니다. 우리는 평화 만드는 자입니다. 평안을 전하는 자입니다. minority로 살다보면 주류사회에 열등감을 갖고 그러다 보면 괜히 미워하고 무시하고 욕하고 반항적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이웃의 평안을 위해 기여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한인들은 이 미국 사회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지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라를 위해 간구합니다. 디아스포라의 기도입니다. 세금 잘 내고 어려운 사람 돕고 지역을 위해 공헌하고 기여하셔야 됩니다. 자기네끼리 뭉쳐서 주류사회가 볼 때 경원시 하게 되고 싫어하는 게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주는 자가 되십시다. 이민자 계명 3: 기여하라.

(4) 조심하여 속지 말라(8-9절)
그러나 한편, 이웃에 섞여 살면서 그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힘쓰지만 그들의 죄악 된 문화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네 번째 이민자 계명이 있습니다. 8-9절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이민자들의 막막함과 허함 때문에 엉뚱한 것들 좇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런 이상한 짓 하는 사람들에게 빠지지 마십시오. 거짓 선지자들의 이상한 가르침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말씀에 신실한가 보세요. 욕심으로 사람을 이용하는지 살펴보세요.
종교다원주의, 무신론적 진화론, 파괴적 이데올로기, 각종 그릇된 신학, 이상한 음모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관들… 이런 것들에 빠지지 말라 하십니다.
절대적으로 신앙의 견고한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합니다. 다소 밋밋한 것 같아도 정통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안전한 울타리입니다. 건강한 목사님들에게 순종하십시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붙드시는 교회의 지도를 잘 따르십시오. 그러지 않고 부평초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헤매다가는 필히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큰 일 납니다. 이민자 계명 4: 조심하라. 속지 말라.

(5) 희망을 갖고 기도하라(10-14절)
하나님께서 이 모든 디아스포라 계명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을 즐기는 새디스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입니다. 11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가 할 일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이민자 계명입니다. 12-13절, “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마 7:7-11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민자가 이 모든 것을 이루는 통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민자의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이민자 5계명: 기도하라.

III. 말씀을 맺으면서

‘디아스포라’(diaspora)의 또 다른 의미는 ‘씨를 뿌리다’입니다. 씨를 흩뿌리기 때문에 이 단어가 씨를 심는 일을 가리킬 때 사용이 된 것이지요. 이민은 씨를 뿌려 옮겨 심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이민자입니다. 이민자는 선교사입니다. 이민자는 개척자입니다. 이민자는 씨를 심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서, 절대로 뜨내기로 살지 마십시오. 나그네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곳이든 그곳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분깃을 감사히 받아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착하십시오. 행복하게 잘 사십시오. 기여하십시오. 그러나 주변의 문화와 가치를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며 희망하십시오. 승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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