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숫자(Number)에 담긴 천재적인 발상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는 원래 이집트, 로마, 그리고 중국에서 시작되어 인도에서 발전되었다. 그것이 아라비아로 건너가서 수의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의 발명은 인쇄술, 종이, 화약, 그리고 나침반 세계 4대 발명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사건이며, 인간이 왜 영장류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 숫자는 중국의 상형문자(모양을 본 따 만든 문자)와 비슷한데, 1,000은 연꽃 모양을, 100,000은 올챙이 모양을 본 딴 것으로 그 당시엔 연꽃과 올챙이가 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1,000,000은 굉장히 큰 수이므로 웬만한 사람은 놀랄 정도의 수가 되므로 놀라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도 한다.
로마와 중국숫자는 이집트 숫자에서 조금 더 발전한 것인데, 점진적인 진화를 하다가 인도 사람들에 의해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된다. 현재의 표기 방법인 456에서 굳이 100이 4개라고 명시하지 않아도 100의 자리에 4가 있기 때문에 400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숫자가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자릿값을 갖는 ‘위치적 기수법’(Positional Notation)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이러한 숫자 표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릿값이 비어 있음을 나타내야 하는 새로운 숫자, 즉 0의 출현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만약 0이 없다면 123이라고 표기했을 때 이것이 1,203인지, 1,023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인류가 이 아이디어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학사(Math History)에서 인류가 0의 개념(Concept)을 생각한 것은 기원 전이지만, 0이라는 수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전후이므로 0은 상당히 늦게 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학은 그 당시의 시대 정신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음양(Yin-Yang) 사상(Thought)에 익숙한 중국에서는 서양보다 먼저 양수(positive number)와 음수(negative number)의 개념을 알았으며, 또 불교(Buddhism)를 태동(quickening)시킨 인도에서는 ‘공’(empty)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0이라는 수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영(zero)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수냐(Sunya)라고 하는데, ‘비어 있다’라는 뜻이다. 원래 영(zero)은 .으로 나타내다가 안이 비어 있는 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0으로 정해졌다. 물론 0은 인도 이전에 메소포타미아나 마야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100% 인도의 발명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인도 수학자들이 0을 기호가 아니라 숫자로 생각했다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겠다. 이것이 암기식 교육 결과가 아니라 창의적 교육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천재는 타고 나기도 하지만 교육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숫자와 관련된 ‘무’(nothing)의 개념은 동양적인 정서가 있는데, 일례로 동양화에서는 서양화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여백(margin)의 미(beauty)를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자판에서도 0은 9 다음에 오는데 나중에 발견되었다는 의미보다는 아마도 다른 숫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한다고 할 때, ‘월반’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 학생은 1년이란 시간을 벌었을 지 언정 그 시절의 1년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개개인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신만의 달란트(talent)를 갖고 있고, 특히 특수한 분야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고 하여도 그 외의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각각의 중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1년 빨리 친구보다 대학에 입학하면 무엇이 좋을까? 물론 친구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반대로 그 친구들과의 교류와 우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수학 외에 배우면 좋은 분야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희생해 가면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불편한 일만 있을 뿐이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한국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를 예로들면, 그 학교는 고등학교 1,2학년에게 응시자격을 주는데 많이 합격을 한다. 3학년에 입학을 하면 재수했다고 하는데, 그 조기 입학한 친구들의 단점은 교양, 특히 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사도세자(실제론 영조의 아들)가 누구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선조의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답하는 것을 보고 하도 어이가 없어 그럼 정조는 누구의 아들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영조가 아버지(실제는 할아버지)라고 말하길래 내가 ‘이 무식한 놈아’ 라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 예비 과학자였으나 내가 보기에는 절름발이 과학자가 되리라고 예상하였고 결국에는 앞으로 계속 뻗지 못하고 정체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천재성이 계속 뻗어나가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이와 대비되어 서울대학교는 종합대학교이며 고등학교 3년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대학교에 입학을 하였기에 교양이 쌓인 상태에서 계속 공부하여 좀 더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산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입학자 중 25%가 3년만에 졸업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실제로 3년 후 졸업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4년간 공부할 수 있는데 왜 3년만에 졸업하는가. 4년 동안 다양한 것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중에 세계적인 석학과 만들어진 천재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결론은 ‘교류’와‘나눔’ 속에 천재성이 발견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김준섭 박사/SKY M.I.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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