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머리가 좋아지는 팁(31)

– 부제: 미술 속의 수학

필자는 머리가 좋아지는 팁(29)에서 ‘음악 속의 수학”에 대해 기술하였는데 이번 호에서는 ‘미술 속의 수학’에 대해 글을 쓰려한다.

중세는 종교적인 것이 모든 분야에서 최 우선권을 갖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더라도 신은 항상 중심에 크게 자리했다. 그에 비해 인간은 신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림의 가장자리에 그려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중심의 휴머니즘이 만연했기에 인간의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사실화가 유행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의 시선에 포착되는 바에 따라 사물을 그리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이라고 하는데,이 원근법에서는 멀고 가까움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이라는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그린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마에 소실점이 오도록 하고 원근법을 적용시킨 작품이다.

프랑스의 ‘집요한’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20번에 걸친 개작을 통해 지난 1991년 발표한 <개미>라는 소설은, 전형적인 2차원 동물인 개미의 세계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가 현미경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낱낱이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소설에는 ‘차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과 개미의 대립을 통해 아주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개미들은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자신들의 세계에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5개의 분홍빛 공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자신의 동료가 그 공에 의해 죽기도 하는 현실을 보면서 절대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분홍빛 공의 정체를 아는 독자들은 개미들의 혼란을 그저 재미있게만 바라본다.

▲ 하늘로 뻗은 기하학

어이없게도 이 5개의 분홍빛 공은 어린아이의 손가락 끝이었다. 그러나 독자에겐 어이없게만 여겨지는 이 손가락 끝이 개미들에게는 그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개미와 인간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개미는 평면을 기어 다니는 ‘2차원’ 동물인데 반해 인간은 그 평면을 위에서 내려다 볼 줄 아는 ‘3차원’ 동물인 것이다. 개미는 평면의 너비와 폭, 가로와 세로만 알 뿐 ‘높이’라는 것을 모른다. 따라서 개미의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존재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점은 0차원이며, 선은 1차원이다. 그리고 선들이 만나서 형성되는 ‘면’은 2차원이다. 그리고 이 평면에서 허공으로 선이 뻗어나가 일정한 ‘높이’를 가지면 비로소 3차원이 된다. 결국 지상의 모든 건축물은 3차원의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건물의 모습이 그려진 설계도면은 2차원의 평면에 표현되어 있으니 좀 이상하지 않는가. 분명 건축물은 ‘3차원’인데, 그 3차원을 표현하는 기법은 2차원이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 위에서 바라다 본 평면도
필자는 중학교 3학년 수학시간에 ‘기하학’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 기하학이라는 명칭 자체에서 묘한 신비감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럼 기하학이 무엇이며, 이게 건축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일까?
▲ 뒤 쪽에서 본 배면도

‘사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과 ‘화법 기하학'(descriptive geometry)이란 말이 있다. 근대 설계 기법은 이 두 종류의 기하학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하학은 도형의 성질에 관한 학문인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원론>이라는 책을 통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도형의 성질을 일차 정의한 바가 있다. 재미있게도 이 기하학은 본래 이집트에서 토지 측량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사영 기하학은 데카르트와 파스칼이 원근(遠近) 관계를 배려한 회화의 원근법, 즉 투시화법의 사고방식을 발전 시켜서 창시한 것이다. 종래의 기하학과는 이질적인 내용이 많아 빛을 보지 못하다가 150년이 흐른 다음에야 근대 사영 기하학으로 발전하게 됐다.

화법기하학은 다른 말로 ‘입체도학’ ‘도법 기하학’이라고도 하는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군인이었던 G. 몽주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3차원 입체물인 건축물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 몽주의 ‘화법 기하학’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몽주가 이 화법 기하학을 창안한 이유는 군사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그는 프랑스 육군 공병학교 시절, 어떤 요새에 배치되어 있는 포의 위치를 정확히 표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고민하다가 결국 몽주는 포대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도면을 완성했는데, 이때 사용된 기법이 바로 화법 기하학이었다.

요즘에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으며,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특히 입면도라는 개념은 대단한 발견이라고 한다. 이 화법 기하학은 오랫동안 군사 기밀로 지켜지다가, 1794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공개 강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 정면에서 본 입면도
화법 기하학이란 3차원 공간의 입체를 엄밀하고도 정확하게 2차원 공간인 평면에 표현하는 것이다. 책을 90도 각도로 펼쳐서 그 각도 안에 모형 집을 하나 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손전등으로 그 모형 집을 위에서 비추면 수평면 상에 그 집의 그림자가 나타날 것인데, 이를 평면도라고 한다. 또 그 모형 집을 정면에서 비추면 수직면 상에 그 집의 그림자가 나오는데 이를 입면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책의 90도 된 면을 뒤로 평평하게 눕히면 종이 한 면에 평면도와 입면도가 동시에 표현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화법 기하학이다.
▲ 건물의 전체 모습

다시 말하자면, 여러분이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거인이라고 치자.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지붕 위에서 전등을 가지고 비춘다고 하자. 그러면 그림자가 지표면에 나타난다. 그 그림자가 평면도이다. 그리고 이제 그 집을 바닥에 놓고 옆에서 전등을 비추면 벽에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것이 입면도이다. 이제 그 집의 지붕을 없애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태에서 위에서 들여다 보자. 위에서 들여다 보니까 각방의 위치와 가구 배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게 바로 단면도이다.

건축물의 설계도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면은 바로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이며 이 3종류의 도면만 완성되어도 건축물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 도면들을 기초로 하여 더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것이 바로 투시도라고 할 수 있다.

▲ 건물의 전체 모습
네덜란드의 미술가 에셔(Escher)는 수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에셔는 수준 높은 수학을 배울 기회를 갖지는 못했지만, 기하학적으로 특이한 모양과 공간 착시 현상,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에셔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라는 것을 미술의 한 장르로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는데, 테셀레이션이란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틈이나 겹침이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완전하게 메꾸는 것을 말한다. 테셀레이션의 예를 보면 바닥에 깔려 있는 타일이나 벽에 붙여진 모자이크 등을 볼 수 있다. 순 우리말로는 ‘쪽매 맞춤’이라고 한다. 테셀레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곳을 들라면 단연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꼽을 수 있는데, 이 궁전의 벽과 천장의 모자이크는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보물 창고이다. 에셔 역시 알함브라 궁전이 그에게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알브라 궁전의 모자이크>

우리도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 데칼코마니라는 기법을 이용하여 양면이 똑같게 나오는 그림을 보고 탄성을 지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흥분은 나이가 들어도 절대 잊혀지지가 않는 커다란 감명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미술도 수학 못지 않게 우리들의 순수한 감성과 머리를 좋게 만드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참조 문헌:
수학 비타민, 박경미 교수 지음
영화처럼 재미있는 건축이야기, 김대갑 지음

글쓴이 : 김준섭 박사/SKY M.I.T.C.
248-224-3818/mitcs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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