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기본 문법

한국 사회는 요즈음 “갑과 을의 관계”가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2013년 6월 12일) 한국 사회를 “모든 사람이 갑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갑과 을의 나라”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한국인 다수에게 갑을 관계는 이익 차원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을 위에 군림하는 맛이라고 하는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삶의 기본 문법”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갑과 을의 관계는 권력관계입니다. 권력관계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라는 서술적 의미보다는 갑이 갖고 있는 권력을 사용해서 을을 지배함으로 갑이 원하는 대로 을을 구속하고 억압한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가 자녀들이 부모가 원하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하려고 한다든지, 부모가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도 오로지 공부만 하지 않고, 여자 친구를 사귄다든지 하면 처음에는 말로 구슬리고, 이런 저런 충고도 하다가 자녀들이 끝까지 부모 말을 듣지 않으면 아파트 렌트비를 주지 않는다든지, 생활비를 삭감한다든지 해서 자녀에게 정신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줌으로 자녀가 알아서 부모 말을 듣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갑을 관계, 즉 권력관계는 결국 권력을 갖고 있는 갑이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으로 을을 억압하고 조종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갑을 관계는 개인적인 관계에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갑과 을의 나라,“갑과 을의 사회”는 권력이라는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폭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갑이 독점하려고 하는 것이며, 그 이익을 기반으로 해서 갑의 지위는 세습이 되고, 갑은 을을 자신과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거부하고, 을과는 다른 수준의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며, 을에게 계속해서 확인시킴으로 “갑과 을의 관계”를 고착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갑과 을의 관계가 한국 사람들의 삶의 기본 문법”이라면 우리 모두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갑과 을의 관계”의 수혜자요 동시에 피해자들입니다. 자신이 갑을 관계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을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할 수 없을 것이며, 무의식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가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아픔으로 인해서 마음은 황폐해지고, 뒤틀려져서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 수 없을 뿐더러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도 보란듯이 갑의 위치에서 을과 병들을 지배함으로 자신이 받은 고통과 아픔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갑을 관계”의 끈질긴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갑과 을의 관계”는 우리를 영속적으로 구속하고 억압하는 불변의 악의 구조가 될 것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는 한 마디로 인간의 내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죄악된 본성인 “자기 중심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자기의 것을 나누고, 포기하고,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아는 힘이 없는 즉 어린 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개인이요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갑과 을의 관계”를 청산해야만 합니다. 우리 안에, 우리 사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는 오래된 성향과 습성이기에 “갑을 관계”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자신의 모든 관계 속에서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갑은 을의 입장에서, 을은 갑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조금 덜 가지려는 노력, 상대에게 조금 더 주려는 넉넉함,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모든 관계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사물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람을 중시하는 인간관계입니다. 인간(人間)이란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요,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그와 같은 인간중심의 사회를 사물 중심과 이익중심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만들어 서로를 차별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악(惡)인 것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의 이슈가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만을 보아도 그와 같은 관계가 우리 모두를 파괴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갑과 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성숙하게 만들어가는 유익한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외면하고 자기만의 유익을 독점할 때 을과 병들의 가슴에 분노와 억울함이 쌓이게 되고, 갑은 갑대로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문을 걸어잠그고, 자신의 힘과 권력을 사용해서 을과 병을 점점 억압한다면 갈등은 점점 증폭되어 참을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폭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이요, 서로에게 회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악된 본성인 자기 중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세상에서 “갑과 을의 관계”를 청산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요, 오랜 역사 속에서 내재해온 성향이기에 완전히 청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 그 권력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 그 이익이 자신의 안전과 가족들의 미래까지 보장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갑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요, 을을 대등한 관계로, 삶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갑과 을의 관계”를 완전하게 청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의 교회는 갑과 을의 끈질긴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기본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성경은 인간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새번역 성경 마태복음 20:25절-27절).

그리스도인이란 인간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도리를 따라서 살 것을 요청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자 되어서 섬기는 대상을 세우고, 살리고, 유익함을 주어서 삶을 함께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2:15절)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성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람을 살리고, 돕고, 세우는데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을과 병을 살리는 것이요, 을과 병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갑의 유익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영성인 것입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요, 상생, 공존하는 관계를 목표로 사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 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새번역 사도행전2:44절-47절)

성경의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상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이상적”이라는 말에는 좋은 이야기이긴 한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하늘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실재로 존재하였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강림하셔서 이루어진 교회의 모습 가운데 그와 같은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다른 것으로 확인할 것이 아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보여주었던 아름답고 성숙한 모습으로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라면 그 교회 안에서와 교회가 행하는 일 가운데 이런 모습들이 특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목사와 부목사와의 관계에서, 목사와 장로들을 비롯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선교사와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시골에 있는 교회와 그 교회를 돕는 큰 교회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는 사업체에서, 가정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갑과 을의 관계””명령을 하고 듣어야만 하는 관계””갑의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관계”가 아니라 섬김의 관계, 공생의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있음으로 해서 섬김과 공생의 관계, 권력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가 정착이 된다면 “갑과 을의 관계”로 인해서 고통받고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위로를 얻을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한 구석에서라도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게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결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목적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죽도록 충성을 다하는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간관계를 권력관계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의 파트너라는 인식을 갖고 “갑과 을의 관계”에서 나오는 부조리들을 하나씩 해결하려고 고민하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지금보다는 한 걸음 더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은 갑과 을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아니 갑과 을의 관계가 사라지고 서로의 유익과 세움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동역자, 고달픈 인생 길을 함께 가는 좋은 길벗이 될 수 있는 다른 삶의 기본문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인 제일 장로교회 최승윤 목사(734-358-5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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