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쁨은 2층집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따르면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면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면 “마귀는 단 하나의 즐거움을 만들지 못했다”고 스크루테이프가 말합니다. 죄가 주는 즐거움이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는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참된 쾌락도, 즐거움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마귀의 핵심적 전략공식은 “쾌락을 감소시키고 그것에 대한 갈증을 계속 증가시키는 것”(스크루테이프 인용)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 안에서의 기쁨을 잔이 넘치는 충만함으로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8년 새해를 맞이해서 저는 여러분이 올 한해 동안 기뻐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누릴 줄 알고, 기쁨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쁨의 부재를 느끼는 이유는 기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특징은 감사와 같이 환경이나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쁨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기쁨을 회복하려면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전을 보면 기쁨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기쁨 = “마음에 벅찬 느낌이 있어서 즐거운 기색이 얼굴로 나타나는 것”

기쁨의 사전적 정의를 잘 보십시오. 기쁘려면 먼저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벅찬 느낌>, 즉 기쁨의 기초는 마음의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 하면 기쁨을 누리려면 먼저 감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미움은 무관심보다 사랑에 가깝습니다. 사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 받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미움이 반쯤 간 사랑이듯이 슬픔도 반쯤 간 기쁨입니다. 애통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기쁨에 가까이 간 사람입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으며 회복될 수 있습니다. 슬프다는 것은 감각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말 문제는 무감각입니다. 기쁨이 회복되려면 가장 먼저 무감각을 치유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각이 살아날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쁨은 2층집입니다. 기쁨의 1층집은 감각이 회복되는 곳입니다. 이렇게 기쁨의 감각이라는 1층집이 회복되어야 기쁨이라는 2층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먼저 <마음에 벅찬 느낌이 회복되고>, 다음에 <그 기색이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쁨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언제나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 하려면 좋은 느낌과 감각을 표현해야 합니다. “아, 지금 참 행복하다!” 라고 말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기쁨을 표현할 때 완성되고, 그 기쁨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기쁨은 감각의 회복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며,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우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2008년의 첫 주일을 맞이하며, 여러분의 2008년을 축복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고, 그 기쁨의 충만한 것을 넘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양실에서 손경구 목사 드림>

Leave a Reply

Discover more from Michigan Korean Weekly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