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기 보다는 견디며 살아갑니다. 오늘 아침에 먼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립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행복하시겠습니까?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은 어느 정도 돈이 생기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은 고통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만 제거되면 행복할 것입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만 없어지면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씀 드리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쁨의 비결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문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너무 힘든 생활 속에 있기 때문에 난 그저 다른 사람 정도만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하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민 국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정말로 기쁨에 찬 생활을 하려면 어떤 환경이나 경험 속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기쁨이 없어 지는 게 아닙니다. 기쁨은 항상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저는 먼저 행복이라는 단어와 기쁨이란 단어를 구분하고 싶습니다. 행복이란 단어는 happy입니다. 이 말은 ‘우연히 일어남’이란 뜻을 가진 happenstance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에서 circumstance, 환경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행복은 환경에 좌우됩니다. 일어나는 일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외적입니다. 내가 디즈니랜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디즈니랜드는 떠나면 행복이 사라집니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이렇게 행복이 외적이라면 기쁨은 내적입니다. 기쁨은 나의 내면에 항상 있습니다. 내가 디즈니랜드를 떠나도 내 마음에 기쁨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내 삶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지난 4년 동안 오늘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행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모함으로 가이사랴에 있는 감옥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후에 배를 타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조건 박해하는 네로 황제 앞에 서기 위하여 로마로 가는 배를 탓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고 배가 산산조각이 나고 겨우겨우 멜리네라는 섬에 표류하였습니다. 그 섬에서 추위를 이기고 옷을 말리기 위해 불을 피우다가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기서 겨울을 지내고 다시 로마로 향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재판을 받게 되고 사형이 되기까지 다시 2년을 더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는 2년 동안에 하루에 24시간 동안 자기를 지키는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매 네 시간마다 병정들이 바뀌었고 그는 아무런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뻐한다고 외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
여기 바울의 기쁨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바울은 이러한 고난 중에도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을까? 모든 상황에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도 여전히 기뻐하고 긍정적이며 행복을 지켜낼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가? 그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네 가지의 비결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4가지의 원리는 우리가 기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이 말씀에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올바른 관점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태어날 때 문제라는 짐을 지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문제를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문제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가 문제를 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그 관점에 따라서 큰 차이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점에서 탁월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2)
바울은 가장 최악의 경우에서 가장 최선을 보았습니다. 문제가 바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문제를 대하는 바울의 태도를 본 목격자들이고, 성도들은 바울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쁨으로 문제를 대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빌 1:13)
내가 당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 위하여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내 부모를, 내 형제, 아내, 남편을 구원시켜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날 내가 전도를 하면 기분 좋게 그 사람들이 교회에 올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뜻대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에게 어려움을 주십니다. 환경이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싸움이 일어납니다.
내가 전도하려고 하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다가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삶의 올바른 관점을 소유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들이 구원 받기를 원할 때 하나님은 나의 방법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라는 것이 그냥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해산하는 고통을 지난다고 말했습니다. 내 고난 속에서 나의 태도를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난 중에 태도가 시위대 안에 나타났습니다. 바울의 고난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결국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결국, 승리의 비결은, 결말이 아직 보이지 않아도 내가 삶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로마로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하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이 가족일 수 있습니다. 그것에 직장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하나님은 감옥에 있는 바울로 하여금 신약성경의 서간문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이 보고 있는 바울 서신들 입니다.
바울은 환대 속에 로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궁정의 경호병들에 의해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로마황제들의 정예부대에 의해 체포를 당했습니다. 바울의 감옥을 지키던 군인들 중에서 로마 황제의 경호원이 선발되었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병사들은 로마의 사상으로 훈련된 정예 군사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엘리트들 이었습니다. 그들이 감옥에서 12년을 복무한 후에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좋은 환경에서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감옥은 바울이 설교하기를 원하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 자리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에 있는 감옥에 바울을 놓으심으로 로마의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는 2년 동안 바울은 4,380번이나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기쁨과 감사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바울은 환경과 삶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보여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군인들은 네로 황제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고, 이로 인해서 네로 황제의 가족 친척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어려운 고난의 환경에서 가장 기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14절을 보십시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 1:14)
바울의 매임을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형통한 중에 말하던 것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우리가 고난 중에 취한 태도를 보고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삶 전체를 통하여 기쁨을 가지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말씀이 로마서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중요한 원리를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문제 하나 하나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어떤 태도로 문제를 지나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과 환경의 문제에 대한 올라는 관점을 소유할 때 우리는 요동치 않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모든 문제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삶의 우선권을 확립해야 합니다.
삶이 정말로 어려울 때 우리는 인생의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시시한 것들로부터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문제를 중심으로 살 수도 있고 우선권을 중심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중심으로 사는 인생과 문제를 중심으로 사는 인생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의 특징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신의 인생이 문제에서 문제로 옮겨 다닌 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 반복은 내가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인생에는 전진이 없습니다. 내가 삶의 중요한 우선순위를 결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합니다. 15-16을 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빌 1:15-16)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하면 나는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쁨을 빼앗지 못하게 했습니다.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
이것은 바울의 놀라운 고백입니다. 18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에 분명한 우선순위를 고백하는 말입니다. 바울의 우선순위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무슨 일이든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환경도, 비판도 바울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동기가 잘되었든 잘못되었든 복음은 증거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았습니다. 그는 크고 넓게 생각했습니다. 멀리 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얼마나 사소한 일로 기쁨을 잃고 전진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자신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기쁨을 잃을 만큼 가치 있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언어가 나의 기쁨을 빼앗아 가야 하겠습니까? 결혼 생활 가운데 실상은 중요하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 논쟁하고 기쁨을 잃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나의 기쁨을 상실하게 할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런 가치가 없습니다.
삶의 중요한 우선권이 있는 사람은 곁길로 새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우선권에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우선권입니까? 저는 만사형통의 비결을 말씀 드립니다. 찬송가의 가사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예수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찬송가 434장)
이 찬송은 잠언 3:6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고린도전서 10:31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지금 왜 기쁨을 잃고 있습니까? 고난와 어려운 환경을 보느라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삶의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기쁘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지탱해 나갈 힘이 필요합니다. 인생과 환경이 나를 피곤하게 하고 무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힘이 든 것은 계속 다가오는 위기 속에서 내가 지치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는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지치고 피곤하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망을 놓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어떻게 가집니까? 19-20을 보십시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니니” (빌 1:19-20)
이 말씀의 “기대”와 “소망”에 동그라미를 치십시오. 4년간의 옥중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계속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들 준 비결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른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바울이 기대와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이 무엇을 역사하십니까? 우리 마음에 기대와 소망을 주십니다. 인생의 능력은 기도와 소망에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환경 가운데 기도하십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소망을 품고 계십니까?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능력을 잃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코넬 대학에서 2차 세계대전 중에 포로가 되었던 사람 중에 생존자 2만 5천명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공통된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망을 어떻게 얻습니까? 기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소망의 출처가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능력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내가 성령 충만하면 환경에 상관없이 기뻐하고 감사하며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노년기에 감옥에서 4년을 지냈습니다. 그의 육신은 늙었고 피곤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세상을 살 동안 필요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친구를 빼앗기고, 사역의 자유와 개인의 비밀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모든 것을 다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은 인생 동안 그에게서 절대로 빼앗을 수 없었던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21을 보십시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이 말씀은 바울의 유명한 고백입니다. 그는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것은 감옥을 벗어나는 길이고,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있다면 사는 것도 좋다는 고백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하면, 삶도 죽음도 그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삶의 목적이 끝까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살아갑니까?
내가 사는 목적은 할 수 있는 한 물질을 더 소유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목적은 쾌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목적은 권력과 인기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목적은 자식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목적들이 나에게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던 없던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는 그것들을 상실할 확률이 100%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축복합니다. 정말 여러분이 기쁘고 즐기면서 감사하게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오늘 4가지 기쁨의 원리를 묵상하며 정말 기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영어로 JOY라고 합니다.
기쁨의 비결은
JESUS FIRST
OTHER SECOND
YOU THIRD 입니다.
기쁨의 비결은
예수님을 첫 번째 놓고
다른 사람을 두 번째 놓으며
당신을 세 번째 놓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