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사를 건 교회 개혁 1 – 일사각오 교회 개혁

김동호 목사

1부 일사각오 교회개혁
1장 서론적인 제안

내가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91년 12월 1일이었다. 동안교회는 당시에도 교회가 속해 있는 노회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 따라서 교인들, 특히 당회원들 사이에는 나름대로 강한 자부심이 있어 젊은 목사가 목회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전통적인 장로교회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동안교회는 그와 같은 점을 미리 인식하고 참으로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것은 장로님들이 담임목사 청빙을 결정한 후 최소한 3년 동안은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담임목사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을 하고 도장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와 같은 협조로 나는 획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들도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었다. 몇 가지 일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모아놓았던 6억 원의 헌금을 일산에 개척교회를 건축하는 데 먼저 쓰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파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일을 당회원들은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의해주었다.

그것은 당회원들이 모두 당회장과 공감해서만은 아니었다. 당회원들 중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아마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당회장이 기도하고 하는 일을 믿고 밀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기쁨 마음으로 동의해주었다. 당회원들이 그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당회장의 목회를 협력해주는 교회는, 당시는 물론이지만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결과 비교적 평탄하게 목회에 전심할 수 있었고 교회는 짧은 시간 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나름대로 전통적인 교회에 새로운 리더십이 성공적으로 이식되는 드문 예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점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배려를 해준 동안 교회 당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동안교회의 부흥과 발전, 그리고 성장의 상당 부분이 당회원들의 그와 같은 이해와 협조에 힘입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가 꼭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7년 동안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큰 충돌이 있었고, 그와 같은 충돌은 인한 갈등은 해가 갈수록 깊어져서 ‘97년에는 더 이상 목회를 계속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물론 목회자인 나의 신앙인격의 미숙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들도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의식과 신성불가침으로까지 여겨지는 제도나 교회 구조 때문에 오는 충돌이 예상 밖으로 컸다. 동안교회는 교인들, 특히 당회원들이 이례적이라고 할 만한 의식을 가지고 당회장의 목회를 후원하고 지원하려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식만으로 무의식에 눌러붙은 의식과 제도들을 단번에 다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평소 “우리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먼저 개척교회를 건축하자.”고 주장해왔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잇었다. ‘교회 안에 자리잡은 잘못된 의식과 제도의 개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당회원들이 여기까지도 이해해주고 협조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나는 의식과 제도 개혁이 당회원들의 역할과 자리를 개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회원들이 내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수용은커녕 오해를 사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당회원들의 오해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거기다 자신들은 당회장의 목회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데 당회장은 오히려 당회원들의 역할과 자리를 축소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회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자리와 역할을 방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목회는 점점 어려워졌다.

목사와 장로의 역할 과 지위 혼동
나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건강하고 단아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리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느 동안 자기도 모르게 굳어진 의식과 낡은 제도들이 교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하나는 목사와 장로의 역할 구분이엇고, 다른 하나는 교회 행정의 민주화였다.

한국교회는 최근 들어서 목사와 장로의 역할을 혼동하여 쓸데없는 갈등을 유발하고 잇다. 그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바른 성장과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가운 현실이다. 초기에 교회가 작고 힘이 없었을 때 어쩔 수 없이 당회와 당회원들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다 맡아 처리하던 것이 전례가 되어, 이제는 교회가 충분히 성장하여 모든 일들을 나누어서 민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일을 당회가 독단적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이로써 교회가 비민주적이 되고 비효율적이 되어 바른 성장과 발전이 저해되고 잇으며, 당회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어 교회 안에 불필요한 권력구조가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일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 다툼조차 일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는 성장과 발전을 머추었고 정체를 거쳐 퇴보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한시바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리하여 개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소생이 불능한 상태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역할이 지위를 결정하는 잘못된 문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목사와 장로의 역할 구분이 정확하지 않아 충돌과 마찰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해야 할 일과 장로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는 필연적으로 교회 안에서 충돌하며 갈등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문제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역할과 지위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역사성에서 일차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역할이 지위를 결정하는 문화, 즉 사농공상의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사농공상이란 분명히 역할릐 구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역할의 구별이 지위의 차별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를 바꾸려고 하면 당연히 역할을 바꾸어야만 했다. 역할을 바꾸지 않으면 지위를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문화가 역할과 지위를 혼동하게 하는 사고 방식을 양산했다.

교회에도 각기 감당해야 할 역할들이 있다. 목사의 역할이 있으면 장로의 역할이 따로 있다. 그 역할은 서로 다르고, 역할이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역할이 지위를 결정한다는 선입견이 잇어, 어떤 역할은 어떤 역할보다 우월하며 어떤역할은 어떤 역할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한동안 교회 안에서 목사는 특별히 ‘주의 종’ 이라고 해서 일반 교인들과 달리 인식되고 떠받들어졌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목사만의 특별한 역할이 인정되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교회에도 민주적 절차와 사고방식이 생겨나면서 목사도 교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져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생각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목사와 교인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목사만의 특벼란 역할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더 나아가서는 목사와 교인이 평등하기 때문에 목사와 교인들이 똑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기형적 사고방식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역할과 지위가 같은 것으로 오해되어왔기 때문에 지위가 같아지면 역할도 같아져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혼선으로 인해 목사의 역할과 교인들의 역할이 구별되지 못하는 혼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목사와 교인의 지위는 주님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와 교인의 역할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차별은 없지만 구별은 있다. 한국교회는 한시바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와 교인들의 역할, 구중에서도 특별히 장로들의 역할을 정확하게 구별해주고, 목사와 장로 사이에서 목회자의 역할을 놓고 벌이는 쓸데없는 주도권 다툼을 종식시켜야만 한다.
동안교회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엇다. 예배당을 짓기 전에 개척교회부터 건축하자는 계획을 결정하는 일보다 열배, 스무 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사와 장로의 역할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교회를 질서잇게 하고 능률적으로 세우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상당한 발전과 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동안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작업이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고 공을 들여야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동안교회만이 아니다. 동안교회가 그런 면에서 정리를 해나감으로써, 그것이 다른 교회에도 영향을 끼쳐서 우리나라 교회들이 질서를 바로잡아 가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요, 기도이다. 이 책을 쓰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와 노력을 받아주셔서 한국교회가 한시바삐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지나친 당회 중심의 교회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주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면에서 퇴보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 중의 하나가, 당회는 활발한데 제직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교회에서 제직회는 유명무실한 회로 전락하고 있다. 제직회가 유명무실해져서 단 몇 분 안에 회의를 해치우는 교회가 은혜스러운 교회인 양 여겨지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직회의 약화가 한국교회의 약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교회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은 당회가 감당해야만 한다. 제직회를 강화한다고 해서 당회의 일까지 제직회가 나서서 하려고 하면 비효율적인 행정이 될 것이고 장로교회의 장점을 감소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회가 모든 일에 감초처럼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당회는 당회의 일이 있고 제직회는 제직회의 일이 있어야 한다. 당회는 갈수록 강화되는데 제직회는 갈수록 악화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인들을 우민화(우민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 일에 관심도 없고 말도 할 줄 모르는 교인과 교회를 은혜스럽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가 있다. 여기에는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면 교회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한국교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가볍게 보거나 간과한다면 한국교회는 크게 퇴보할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목회를 하면서 내린 결론이 잇다. 목사와 장로의 의식, 그리고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갈등과 정체는 더 이상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마침 목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논문의 주제로 이 문제를 다룰 생각을 했었다. 나름대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가지는 큰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발표하는 일에는 걸림돌이 많을 것 같았다. 발표는 고사하고 그 문제를 다운다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것은 생명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비겁한 일이었지만 그 주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시지 않았다. 논문은 포기했지만 문제의식은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늘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개인적인 일로 인해 지난 ‘97년에 교회에 사표를 내게 되었다. 도저희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호한 마음으로 교회의 사택을 비우고 교회가 준 자동차와 전화기 등 교회에서 받은 모든 것을 다 반납했다. 좀 고생이 되겠지만 새로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나를 다시 동안교회로 돌아오게 하셨다. 동안교회로 다시 돌아오기는 했느나 이 사건을 통해 동안교회에 대한 인간적인 욕심은 거의 완전하게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돌아오는 김에 전에 포기했던 교회개혁의 문제를 다시 다루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를 떠날 마음을 굳히니 담대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전에 포기했던 교회개혁의 주제들을 설교 시간에 다루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당회에까지 내어놓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과 과정들이 필요햇지만 결국 생각하고 의도했던 모든 것들을 당회에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할렐루야! 생각하면 꿈만 같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요즘 그 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춤을 추고 싶다.

동안교회 당회에서 결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목사와 장로를 포함한 모든 직분의 임기(정년)를 현재 70세에서 65세로 낮추기로 총회에 건의한다.
둘째, 목사와 장로는 6년을 시무한 후 교인들에게 재신임을 물어 신임을 받을 경우 계속 시무하도록 한다.
셋째, 장로는 제직회의 부장직을 겸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직회 부장은 안수집사와 권사에게 일임하되 당회는 정책과 예산을 세우고 제직회의 집행을 감독하는 일을 하도록 한다.

이럿게 정리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것을 위해 생명을 건 투쟁(?)을 해야만 했다. 앞으로 이와 같은 결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이런 결정이 필요했고 그럿게 중요했는지, 그리고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 동안교회에서 어떠한 과정들을 밟았으며 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려고 한다.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만 한다. 내가 주장하는 대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으나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필요성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주장하는 개혁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이와 같은 것들을 주장하였고, 나름대로 그것을 위해 생명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들을 전제로 깔고 이 책을 보아준다면 어떤 면에서든지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과 책이 교회에 작은 유익을 끼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감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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