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attend, 미국은 accompany
앤아버 지역 병원에서 일 잘하고 있던 딸아이가 격무 탓인지 직종을 바꾸겠단다. 몇달전부터 항공사에 근무하겠다며 신청서를 내더니 지난 주 달라스로 날아가 어메리칸 에어라인에 승무원이 되었다. 아빠의 심정으로 젊은 나이에 하루 종일 병원에만 있는 것 보다는 세계를 내 집삼아 날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쾌히 승락했다.
어메리칸 에어라인보다는 한국 항공사가 어떠냐고 물었으나 한국 항공사는 문화가 안맞아 싫다는 것이다. 다 큰 아이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다. 사주의 딸인 조현아 부사장이 메뉴얼을 따라 땅콩을 대접한 승무원들을 욕설과 함께 꾸짖고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쫒아내기위해 회항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한국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 사건을 놓고 미국인들은 몇가지 의문점을 갖는다. 첫째는 물론 비행기 내에서 회사의 부사장이 메뉴얼을 모르고 부하 직원들을 부당하게 질책한 점이다. 둘째는 아무리 부사장이라고 해도 또 사주의 딸이라고 해도 항공법을 어기면서까지 회항을 결정했던 조종사들의 줏대없는 태도였다. 셋째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할 때 ‘저의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특히 세번째의 경우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많았는데 미국이었다면 18세가 넘은 자식이었기에 여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저희 직원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을 것이다. 이런데는 성인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독립체로 분류한다는 점과 의도적으로 자식으로 인식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은 아직도 가족관계를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낸다.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이냐가 능력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미국의 기업들은 자식관계보다는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식이라도 회사나 주주들의 이익에 반대된다면 절대 고용할 수 없다. 조양호 회장이 14일 “경영진은 물론 오너에게까지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맞는 말이다. 룰을 만들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성숙도가 있어야 선진국이다. 아무도 법위에 군림하는 자가 없어야 선진국이다.
가끔 한국 국적 항공기를 타면서 불편했던 점들이 있다. 승무원들의 ‘과잉 친절’이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 한국인들은 ‘과잉’으로 받아 드리지 않겠지만 미국에서 25년 산 나로서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떤 때는 승무원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불편하신 점이 없냐?’는 등의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물어봐 주는 건 고마운데 무릎을 꿇는 것은 내가 편치한다. 고객과 눈높히를 맞춘다는 뜻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들었지만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다. 미국인들에게는 눈높히를 맞춘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서비스 정신은 크게 다르다. 직업적으로 남을 돕는 장면을 설명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다. ‘attend’와 ‘accompany’가 있다. attend는 to take care of as a servant 하는 의미로 상하적인 관계라면 accompany는 to go with, to travel with(동행하다) 라는 뜻으로 고객과 동등한 입장이 강조된 단어다. 한국의 문화가 attend라면 미국의 문화는 accompany이다. 미국에서는 어떤 경우도 attend 라는 개념을 허용치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항공사 승무원들이 불친절해 보일진 몰라도 그들의 머리속에는 고객을 복종적으로 서브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승무원이나 고객이나 입장이 다를 뿐이지 동등하다는 철저한 equality 정신이 미국의 core vaule 이기 때문이다.
문화를 결정하는 이런 종류의 핵심가치(Core Value)가 한국인들에게도 있었다면 이번 ‘땅콩 회항’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하직원들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부사장이었다면 그렇게 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당한 명령을 들은 기장도 ‘절대 회항을 안된다’고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는 철학적 가치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선진국을 여행하면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지 모른다. 한국도 이제는 경제대국 신드롬에서 벗어날때가 되었다. 돈보다는 국민들이 어떤 가치를 설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정립하지 않으면 ‘말도 안되는 일’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땅콩 회항’을 미국 언론기사로 접한 딸이 “아빠, 봤지 이래서 한국 항공사가 싫은 거야”라고 했을 때 뜨끔했다. 내 자식이 직장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는 당혹감도 있었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 자녀들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부모의 나라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한국’에서 우리 자녀들도 살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도 변모하길 바란다.
연예인들을 통한 한류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은 기본이 충실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세계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상한 원더 랜드, 코리아’가 아닌 전세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이 통하는 나라가 되길 기원해 본다.
김택용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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