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 평생을 살면서 여러번 철이들 기회를 갖나보다. 어머니의 손을 억지로 놓고 눈물 글썽이며 들어섰던 초등학교 1학년 1반 교실, 그리고 십여년 후 빡빡 깍은 머리로 두렵게 통과하던 춘천 102보 훈련소 위병소, 또 1990년 공부를 한답시고 떠나오던 김포공항의 플랫폼, 이 모두 차츰 차츰 철이드는 내 자신을 발견했던 장소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주 45살의 나이로 또 한 번 철이드는 경험을 체험했다.
8개월짜리 어린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온지 벌써 18년이 흘러 잘 자라준 딸아이가 대학에 간단다. 딸네미를 처음으로 멀리 떠나 보내려니 가슴속이 스물거려 며칠을 고생했다. 아이가 불안해 할까봐 내색도 못하고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살 수 있을까, 끼니는 안거르려나, 혼자 있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집에 오고 싶어 마음 병이나 생기지 않으려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문제 없어, 혼자 잘 할 수 있어’라며 씩씩한 모습을 보이지만 늘 부모 걱정을 먼저하는 맏딸이라 속내를 알 수 가 없다. 때론 조금은 불안해 하는 기색을 아이의 얼굴에서 읽어낸 나는 마음이 불안해 진다.
수요일 새벽 5시 짐을 한가득 싣고 새벽 길을 나섰다. 신문을 한답시고 이리핑계 저리핑계 가족과 휴가 한번 버젓이 가 본적 없는 못난 아빠가 당분간 만나지 못할 딸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94번 웨스트, 90번 놀쓰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우리 딸아이와 살아온 지난 18년의 세월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부족한 유학생 시절,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것 없는데도 혼자 잘 자라준 딸아이가 너무 고맙다. 누구나 그렇듯이 첫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가 자라면서 발생되는 모든 일들이 부모도 처음해보는 것이라 익숙치 않다보니 스트레스도 많았고 또 그때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모든 것이 부족했다. 서툴고 모순덩어리인 아빠를 그래도 잘 따라주고 참아준 아이가 또 한번 고맙다. 뒤돌아보니 딸아이에게 잘 한것보다는 못한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바깥일로 짜증난 얼굴로 들어오면 멀뚱멀뚱 커다란 눈으로 내 눈치만 보던 그 모습, 아내와 다투느라 목소리가 높아지면 자기 방에 들어 앉아 불안해 하던 그 모습, 모두 미안한 순간들이다. 못난 아빠가 자신의 감정을 무분별하게 쏟아내던 그 많은 시간들 동안 모든 상처를 다 끌어 안았어야 햇을 아이를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했다. 바깥으로 나도느라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한번 진솔되게 들어주지도 못한 못난 아빠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지난 18년이라는 세월동안 아이와 가진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뒤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미안하다, 용서해 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않아 말문을 열지 못했다.
7시간을 달려 도착한 학교 기숙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신입생들로 북적거렸다. 나름대로 바리바리 싸온 이사짐을 각자의 방에 옮기고 비좁은 기숙사를 어떻게 배열할까 고민이 한창, 2학년 선배들이 마중 나와 짐도 옮겨 주고 후배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방을 함께 쓸 룸메이트, 또 그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니 마치 한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둘다 처음으로 자식을 남겨두는 애뜻한 마음이 통해 눈 인사도 정겨웠다. 아이의 침대보를 덮어주고 러그를 깔아주고 창문을 열고 환기로 시키고 먼지도 털어내고… 기숙사가 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머물 공간이 조금은 초라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아이를 태우고 가까운 한국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였다. 내가 없을 때 아이가 자주 찾아 올 곳이니 만큼 주인 아주머니의 인심은 좋은지, 음식은 깨끗한지 꼼꼼히 살핀다. 위스칸신 대학 캠퍼스는 근사하고 경치도 일품이었고 사람들도 다 좋아보이고 아이도 겁없이 친구 사귀느라 분주하고 걱정할 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돌아갈 길이 멀어 아이와 작별을 하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랫만에 꼭 안아 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더 자주 안아줄 걸.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줄 걸, 후회가 막심이다. 아내가 아이를 꼭 안고 눈물을 글썽인다. 부러웠다.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여자라서 부러웠다. 아빠가 울면 큰일 이라도 난 줄 알까봐 겉으론 태연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축축히 젖어 있었다.
‘저게 언제나 철이 들까’ 걱정이었던 아이는 멀쩡한데 풋내기 엄마와 아빠는 마음이 안놓여 안절부절이다. 발길을 돌리며 뒤돌아보니 걱정 말라며 안심을 시키려는 아이의 미소가 수십년전 나를 떠나보내며 손을 흔들어 주던 어머니의 미소와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든다. 대학에 가는 딸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철이 드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떠나보내던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겠구나. 이제야 알것 같다. 내가 당해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같다. 철부지 같은 아빠가 오늘은 딸아이에게도 미안하고 어머니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미안하다.
밤새도록 달려와 무거운 몸과 마음을 침대에 던졌다. 피곤한데도 잠이 안 온다. 눈을 잠시 붙혔다가 다시 떠보니 새벽 5시다. 아이의 마지막 미소가 자꾸 떠올라 눈에 밟힌다. 못난 아빠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학비나 제대로 보내줄 수 있을까 걱정이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운 한인교회로 향했다. 내 교회는 아니지만 내 교회 네 교회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제 그 분께 매달리지 않고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신명기 31장 8절을 써서 액자속에 만들어 넣은 선물을 기숙사 책상맡에 걸어놓은 아내가 기특하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라는 말씀 처럼 아이가 있는 곳에 이미 가 계신 하나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까지 품속에 있던 자식을 처음으로 하나님에게 맡긴 것 같다. 이제 하나님에게 더 잘 보여야 겠다는 생각이 늦잠꾸러기인 나를 깨웠다. 매일 새벽을 깨워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은 금요일, 신문을 돌리다가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귀찮아 하지는 않으려나 조심스럽게 벨소리를 기다리는데 “아빠”하고 맑게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인다. “잘 잤니, 밥은 먹었고?” 주절 주절 평소에 안하던 관심을 보이니 아이가 이상한가 보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니 뜸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희수야, 생각해보니 지난 18년 동안 아빠가 너에게 잘못한 게 너무 많더구나. 미안하다, 용서해라” 어제 얼굴을 보고 못하던 사과를 전화를 통해 털어 놓았다. 갑자기 이상해진 목멘 아빠를 눈치 챌까봐 전화기를 멀리했다. “아니야 아빠, 나도 잘못 많이 했어. 그리고 나 아빠가 자랑스럽고 사랑해 너무 많이.” 아이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다. 이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모르겠다. 아이가 자신을 떠나보내고 외로워하는 아비를 달래고 있으니 말이다. “하루에 한번씩 전화해야돼?” 라며 떼 쓰는 나에게 그러겠다는 아이의 다짐을 받고 철없는 아빠가 겨우 전화를 끊는다. 정말 처음으로 아이와 깊은 사랑에 빠진것 같다. 아내와의 첫사랑 못지 않게 설레이는 하루였다. 가까운 대학을 마다하고 멀리 떠나는 아이가 못내 서운했는데 철없는 아빠를 길들이기 위한 속셈이 있었나 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대학에 자식을 떠나 보내는 부모들이 미시간에도 많이 보인다. ‘다 나 같은 마음이겠지’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 가 있던지 다들 건강하고 잘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내 아이가 소중한 걸 뼈절이게 느끼고 보니 남의 아이들도 소중해 보인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얼마 못 산다는데… 얼마 못 살더라도 후회는 없다. 아이를 사랑하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표현을 세상풍파로 차디차게 매말라버린 나의 마음속에서 찾아 냈으니 말이다. 이렇게 행복한 걸 왜 몰랐었는지 한심한 일이다.
문뜩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을 먼저 저 세상에 떠나 보낸 부모들이다. 자식들을 전쟁터에 보낸 부모들, 또 앤아버가 학생타운이다 보니 이곳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넋을 놓고 울부짖던 그 부모들의 얼굴들이 생각난다. 잠깐 아이를 떠나보내는 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그들은 어땟을 까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나는 사치스런 복을 누리고 있구나 죄송스럽기만 하다.
새학기 시작으로 먼길을 떠난 미시간 출신의 우리 자녀들, 자녀를 보내고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우리 엄마, 아빠들, 또 조기유학이나 대학진학으로 미시간에 들어와 있는 모든 학생들, 평소에 자녀에게 소홀했다가 뒤늦게 후회막급한 이 철없는 아빠까지 매일 매일 무사하고 건강하게 또 좋은 사람들과 만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도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 사랑에 푹빠지는 행복한 시간들 누리시기를 기원해 본다. 왜냐하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눌 사랑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못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