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입양 부모나 입양기관의 행정 절차 누락으로 미국 내 공식 입양기록을 제대로 갖지 못했던 국제입양인들에게 새로운 구제의 길이 열렸다.
캘리포니아주 상원 37지구의 최석호(Steven Choi) 의원이 발의한 SB 927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서명을 받아 법률로 확정됐다. 뉴섬 주지사는 지난 8월 24일 SB 927을 포함한 여러 법안에 서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법안은 특히 과거 해외에서 입양 절차가 완료됐지만 캘리포니아에서 필요한 후속 재입양(re-adoption)이나 기록 등록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국제입양인들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
과거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어린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가정에 도착한 뒤 입양 부모나 관련 기관이 추가적인 법적·행정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입양이 활발했던 1960~1990년대에는 현재보다 국제입양 관련 절차가 체계화되지 않았고, 일부 사례에서는 필요한 서류가 누락되거나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당시 어린아이였던 입양인이 수십 년이 지난 뒤 성인이 되어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다.
입양 부모가 이미 사망했거나 고령이 됐고,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입양기관이 문을 닫았거나 관련 기록이 사라진 경우에는 자신의 입양 사실을 공식적으로 증명할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SB 927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인이 된 국제입양인 본인이 직접 캘리포니아 법원에 자신의 입양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청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과거처럼 입양 부모나 입양기관이 반드시 절차의 중심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양 당사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법원에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다.
법원이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외 입양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실을 인정하면 입양인은 캘리포니아주 등록관(State Registrar)을 통해 지연 출생등록(delayed registration of birth) 등 필요한 공식 기록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수십 년 전의 입양이라는 현실을 법이 고려한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입양 당시의 원본 서류를 모두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법원은 반드시 완벽한 원본 문서만을 요구하기보다 입양인이 제출하는 진술이나 진술서, 과거 법원 기록, 입양기관 자료, 가족이 보관해온 편지와 서신 등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입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특히 한국계 입양인들에게 의미가 크다.
한국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제입양 아동을 해외로 보낸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수만 명의 한국 어린이가 미국으로 입양됐고, 그 가운데 일부는 입양 절차나 시민권 관련 행정처리가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아 성인이 된 뒤 신분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공식적인 입양기록이나 출생 관련 기록의 부재는 단순히 서류 한 장의 문제가 아니다.
여권이나 신분증 발급, 사회보장 관련 업무, 상속, 가족관계 증명 등 다양한 행정·법률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법적 신분과 가족관계 자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최석호 의원은 이번 법안이 입양인의 잘못이 아닌 수십 년 전의 행정적 누락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입양 부모나 기관이 과거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성인이 된 입양인이 평생 중요한 공식 기록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SB 927의 의미는 단순히 새로운 입양 절차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가족을 이루고 미국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국제입양인이 행정상의 실수나 기록 누락 때문에 자신의 법적 신분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는 데 있다.
특히 과거 입양 절차를 진행했던 부모나 기관을 다시 찾아야만 했던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이제는 입양인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양인의 권리를 크게 강화한 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의 입양 인정이 모든 이민이나 시민권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 시민권 여부는 연방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개인의 입양 시기, 미국 입국 당시의 비자 종류, 부모의 시민권 여부 등에 따라 별도의 확인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SB 927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잘못이 아닌 행정적 공백을 안고 살아온 국제입양인들에게 중요한 법적 수단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많은 한인 입양인이 거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러한 제도가 처음 마련됨에 따라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입양기록 구제 제도가 논의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수십 년 전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인들이 이제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입양아’가 아니라 자신의 법적 기록과 권리를 직접 바로잡을 수 있는 당사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SB 927은 미국 한인 입양사의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