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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하나님의 형통이란 무엇일까?

노진준 목사, 앤아버 연합 사경회에서

 

[앤아버=주간미시간] 백원선 기자, 김택용 기자 = 앤아버 소재 한인교회들(앤아버 한인교회, 앤아버 장로교회, 앤아버 연합감리교회, 앤아버 성서교회, 앤아버 소망교회, 앤아버 반석교회) 이 18일부터 3일간 가을 사경회를 연합으로 개최했다.

앤아버 한인교회에서 열린 집회에는 연일 많은 앤아버 한인들이 참석해 노진준 전 엘에이 한길교회 담임목사의 설교를 경청했다.

‘나그네들’ 이란 제목의 첫날 설교에서 노진준 목사는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의 ‘행복은 부나 건강과 같은 객관적인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지 않고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의 상관 관계에 의해서 결정 된다’는 말을 인용하여 우리의 상식을 깨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하여 남편에게 매일 맞는 부인이 삼일에 한번 맞으면 행복한 것인가 또는 양 팔과 한 다리를 잃게 된 사람이 다리 하나가 남아서 감사하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믿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그는 여러가지 가슴에 와닿는 예들을 통해 “너무 큰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로마서 8장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너무나 잔인하기까지 하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본인이 장애인은 노진준 목사는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은 잃어버린 상실감에 비하면 너무 고통스런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그동안 장애로 인해 받은 고통을 솔직히 고백할 때 청중들을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갸우뚱하며 던지는 노진준 목사의 의문은 항상 후련함으로 마무리된다.

디도서 2:9-10 본문에 나오는 노예들의 삶, 아무리 일해도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맞을 때도 많고은 이들이 어쩌다 가끔 편하게 자거나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성경은 모든 인간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역설한다. 본문에 나오는 로마시대 억울한 삶을 사는 노예들이나 그들의 주인이나 다 똑같이 인간은 소망이 없고 다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면에서 불행한 것이다. 극단적인 비교이기는 하지만 향정신성 약품을 먹은 상태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느끼는 많은 행복은 비슷한 것이다. 자녀가 일류 대학을 가거나 큰 집을 사거나 좋은 차를 사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최면 현상에 가까운 행복감이라고 노목사는 구분하여 정의내렸다.

인간은 절망할 때 오히려 어떤 행복감에 안주하려 집착하며 게임에 집착하는 틴에이져 와 좋은 집에 집착하는 어른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반문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인간은 죄 곧 죽음의 굴레 속에서 불행할 수 밖에 없고 그 반대인 생명 곧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할 때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소망이 없어서이다. 인간은 소망이 없는데 생명인 아들을 주셨다. 우리는 헛되게 사라져버릴 행복감이라는 것에 목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이 어둡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서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지친 삶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우리 시야를 가리는 세상의 허상을 끌어내리고 그 너머의 그리스도를 보라고 외쳤다. 그래서 이민 목회는 ‘위로 목회’라는 말이 있는데 진정한 위로는 예수로부터만 온다고 강조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토요일 설교는 에베소서 1:3-14를 중심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세상의 일시적인 행복감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이라는 첫날의 메세지에 이어서 둘쨋날 저녁 메시지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말도 안되게 놀라운 것인지를 강조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우리의 이성적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이자 주권인 구원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위해 주인이 자신보다 귀한 아들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이 미친 짓에 가까운 것이며 그러한 말도 안 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반문했다.

그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자기를 살려준 약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자신이 약을 먹었다는 사실만 자랑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든 은혜를 잃어버리거나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하는 교만함이 있다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아무 육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하는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겸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일 오후 5시에 있었던 ‘꿈을 가진 사람들’이란 제목의 마지막 설교(본문:창세기 37:5-11)에서 노 목사는 “사람들은 ‘매일 큐티를 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 는 등의 공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고 믿는다고 절대로 다 이루어 지는 것도, 다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적으로는 더 잘 사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화이트칼라인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고 블루컬러의 사람들은 실패한 삶을 살고 있다는 식의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정말 기독교적이지 않다. 교회가 크고 부흥하면 그 목사는 축복받고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않은것이고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인생이 형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시며 사랑하시는 것이고 인생이 형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징계하시고 사랑하지 않으신다는게 맞는 이론인가? 사실 성경과 역사속의 믿음의 사람들은 편안하게 산 사람들 보다 온갖 고난을 당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더 많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가장 잘 될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성경 말씀의 주인공 요셉의 삶을 통해 위와같은 주장을 하지만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의 삶은 하나님께 택함 받았지만 참으로 험악하고 평탄하지 않았다. 그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형 에서는 더 부자이고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었으며 그 자손이 당대 최고의 가문을 이루었다.

요셉이 노예가 된 상황에서도 형통하셨다는 말은 주인의 눈에 들어서 조금 편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았다는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꿈은 요셉이 원하는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었다. 어떠한 고난이 있을 지라도 내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갈 때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부하고 투옥되었을 때 그와 함께 하사 형통하게 해셨다고 하셨다. 요섭에 총리가 되었을 때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형통의 의미는 출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쓰임을 받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형편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공의 잣대는 얼마나 잘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예수님 때문에 다 괜찮을 때가 성공인 것이다.

하나님은 분배라는 면에서는 전혀 공평하시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나를 받고 어떤 사람은 다섯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공평하신 것은 하나를 받은 사람에게 다섯을 받은 사람을 이기라고 하지 않으신 다는 것이다. 하나를 받은 사람은 두개를 만들면 된다. 받은 것으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만족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승리’라는 말은 누구에게는 잔인하게 들릴 수 있다. 장애인에세 ‘너도 헬렌 켈러 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은 격려가 아니라 상대를 낙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 말은 사실 ‘헬렌 켈러처럼 되어야 너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가질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배설물이라는 고백이 가능하다. 내가 무엇이 될까라는 야망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사는 삶을 살자.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 손에 내 인생이 달려 있음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고 역설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나의 인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진정을 ‘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3일동안 계속된 사경회에 참가한 앤아버 한인중에 K씨는 “노진준 목사님의 날카로운 문제 제시 능력과 명확한 논리 전개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파헤쳤으며 세상적인 논리에 물들어 있는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려 주었다”고 말하고 “연합 사경회에 별 기대없이 참여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돌아간다”고 만족해 했다.

또 한 성도는 “구약에 나오는 요셉에 대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풀어주셨다”고 말하고 “세상적인 형통과 하나님의 형통이 어떻게 다른지 명백해졌고 마음에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감사해했다.

변증학을 전공한 노진준 목사는 성경의 진리를 예사롭지 않은 방향에서 조명한다. 변증학을 쓸데 없는 학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변증학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변증학이 구원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원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구원을 받은 후에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변증학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통하여 받아들인 신앙이 얼마나 견고하고 확실한지를 이성적으로 맛볼 수 있게 함으로써 영적 성장을 도모할 수있게 해준다.

하나님은 무조건 또 맹목적으로 믿는 태도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히여 우리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우리의 의문과 고민에 답해주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우리를 로보트 처럼 프로그래밍 하지 않으시고 능동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으로 만드신 이유다. 하나님은 강제적이 아닌 자발적인 믿음을 갖는 대상을 원한는 것이라는 말이다.

앤아버 연합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고 있다

mkweek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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