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 대법원 ‘오바마케어’ 유지 판결

일명 ‘오바마케어(Obamacare)’라고 하는 ‘적정부담 건강보험법(ACA: Affordable Care Act)’을 유지하는 결정이 17일, 연방 대법원에서 나왔다. 텍사스 등 공화당이 주도하는 18개 주 정부와 전임 행정부가 낸 소송과 관련, 제소 당사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대법관 아홉 명 가운데 7대 2로 이런 결정이 나왔다. 수년 동안 쟁점이었던 ‘적정부담 건강보험법’이 살아남았다고 주요 매체들이 전하는 중이다.

지난 2010년, 바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입법한 제도로써 그전까지는 주민 각자가 알아서 보험에 가입하던 것을, 정부 주도로 의무화했다. 정부가 일종의 ‘보험 장터’를 만들어서, 가입자와 보험사를 연결하는 체제도 만들었다.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대표적 보건 정책이기 때문에, ‘오바마케어’라는 별칭으로 많이 부른다.

이런 제도를 만든 이유는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국가 주도 건강보험 체계가 없었다. 직장인이나 공무원들의 경우, 고용주가 제공하는 보험을 들지만, 자영업자나 특별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보험 없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병원에 가거나 의료 처치가 필요할 때 막대한 비용 부담을 지는 일이 생겼다. 모든 주민이 빠짐없이 건강보험에 들도록 의무 조항(individual mandate)을 ’오바마케어’에 넣었다. 보험 미가입자는 이듬해 소득세 정산 과정에서 벌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수년 동안 쟁점이 된 이유는 공화당과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연방 대법원에 관련 소송이 올라간 게 이번이 세 번째인데 지난 2012년과 2015년에 합헌 결정으로 제도를 유지했다. 이번 각하 결정으로, 다시 제도를 이어가게 됐는데  이런 소송과 별도로,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정책 폐지 노력을 꾸준히 진행했다.

공화당과 보수 진영에서 이 제도를 반대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자유 시장 경쟁 원칙에 위배된다는 시각이다. 보험 시장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 경쟁 질서를 훼손할 뿐 아니라, 업계를 위축시켜서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공화당은 주장해왔다. 또한 보험 상품들이 저렴한 쪽으로 집중되면, 보건 혜택이 오히려 줄어드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두번째는 의무 가입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보험에 가입할지 스스로 결정하고, 가입한다면 정부가 제공하는 상품 범위 밖에서 폭넓게 선택할 권리를 이 제도가 침해한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의회 입법으로 ’오바마케어’의 벌금 규정을 없앴다. 의무 가입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다.

이번에 연방 대법원에서 각하된 소송은  2017년 벌금 부과 조항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시작된 법정 공방이다. 과거 대법원이 합헌 결정을 내릴 때, 이 벌금이 처벌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조세 성격에 해당한다는 점을 주요 사유로 들었다. 그 근거가 사라졌으니 관련 제도 전체가 이제 위헌이라고 공화당 측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주 정부들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대법관 일곱 명이 다수 의견을 낸 것이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과 닐 고서치 대법관, 이렇게 두 명은 소수 의견을 냈다.

이번 대법원 결정에 대해 보수 진영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 쪽에 기대가 높았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보수 6대 진보 3’으로, 보수 쪽에 크게 기운 뒤 처음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진보 성향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이 모두 각하 의견을 낸 데,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합류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 세 명 중에 에이미 코니 배럿, 브렛 캐버노 대법관 두 명이 소송을 각하하는 다수 의견에 합류해 주목받고 있다.

언론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코로나 사태의 시의적 특수성이 ‘오바마케어’ 유지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소송이 “안좋은 시기(inopportune time)에 진행됐다”고 지적했는데  “100년 만에 한 번 있을 만한 공중 보건 위기 상황”에서 만약 제도가 폐지됐다면 “2천만 명 넘는 미국인이 보건 혜택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같은 취지로 보도했다.

정치권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날(17일) 대법원 결정 소식을 트위터에 전하면서 “미국인들의 큰 승리”라고 적었다. 수많은 사람이 의지하는 ‘적정부담 건강보험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오바마케어’를 강하게 공격했던 인물들이 코로나 사태 와중에 반대 입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설명했다.

이로써 ‘오바마케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보건 체계를 만들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오바마케어’에 공공 선택 방안을 추가하는 ‘바이든케어(Bidencare)’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말, 이와 관련한 1단계 조치를 단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적정부담 건강보험법 적용 강화’ 행정명령을 내렸었다. 가입자 수를 늘리는 조치인데 연방 정부가 제공하는 보험 장터를 통한 ‘특별 신규 가입 기간’을 설정하도록 보건후생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아울러, 보건후생부와 노동부 등 관계 당국의 정책 사항에서, 저소득층 주민들의 건강보험 접근에 걸림돌이 되는 항목들을 검토해 개선해 나가도록 했다.

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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