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미시간 한인사회에도 특별한 이유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시간 출신 22만여 명과 돌아오지 못한 1,492명의 이름을 기억하다

 

[주간미시간=김택용 기자] 메모리얼 데이의 뿌리는 남북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 곳곳에서는 전사자들의 묘지에 꽃을 놓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전통이 생겨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 즉 “묘지를 장식하는 날”로 불렸다.

1868년 남북전쟁 북군 참전용사 단체였던 Grand Army of the Republic의 존 A. 로건 장군이 공식 추모일을 선포하면서 이 행사는 전국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남북전쟁 전사자를 기리는 날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을 추모하는 날로 의미가 확대됐다. 이후 1971년부터는 연방 공휴일로 확정돼 매년 5월 마지막 월요일에 지켜지고 있다.

메모리얼 데이는 Veterans Day와도 다르다. Veterans Day가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모든 재향군인에게 감사하는 날이라면, Memorial Day는 전쟁과 군 복무 중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이날 미국 전역의 국립묘지와 지역 묘지에서는 헌화식, 퍼레이드, 묵념, 국기 게양식이 열린다. 전통적으로 전사자의 묘비에는 꽃이나 작은 성조기가 꽂힌다. 일부 지역에서는 오전에는 조기를 게양하고, 정오 이후에는 다시 정상 게양한다. 이는 희생을 애도하면서도 국가가 다시 일어서는 회복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메모리얼 데이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빨간 양귀비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전장과 전사자의 무덤을 떠올리게 하는 꽃으로, 희생과 기억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된다.

“원조는 우리다” — 20여 개 도시의 기원 논쟁

메모리얼 데이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어느 도시가 처음 시작했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뉴욕주 워털루는 1966년 연방정부로부터 “메모리얼 데이의 공식 발상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미시시피주 콜럼버스, 펜실베이니아주 볼스버그, 조지아주 콜럼버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턴 등 여러 지역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메모리얼 데이는 한 도시의 발명품 이라기보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던 미국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공동의 추모 문화에 가깝다.

해방노예들이 연 첫 대규모 추모식

역사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감동적인 장면은 1865년 5월 1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벌어진 추모식이다. 남북전쟁 직후 해방된 흑인 주민들은 옛 경마장에 묻혀 있던 북군 포로들의 유해를 정성껏 다시 안장하고, 약 1만 명이 참여한 행진과 추모식을 열었다.

이 행사는 오늘날 메모리얼 데이의 가장 이른 대규모 전몰자 추모 행사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에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죽은 이들을 먼저 기억했다”는 깊은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적군의 무덤에도 꽃을 놓은 여성들

미시시피주 콜럼버스에서는 1866년 여성들이 남부군 묘지에 꽃을 놓으러 갔다가, 근처에 방치돼 있던 북군 병사들의 무덤에도 함께 꽃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북전쟁 직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전쟁은 편을 갈랐지만, 무덤 앞의 꽃은 편을 가르지 않았다. 적군과 아군을 넘어 “죽은 병사”라는 사실 앞에서 같은 예우를 보인 이 장면은 메모리얼 데이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미시간도 큰 희생을 치른 주였다

메모리얼 데이의 뿌리가 남북전쟁 전몰자 추모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미시간 역시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 미시간 출신 군인들은 남북전쟁 중 800차례 이상 전투에 참여했다. 주 방위·보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장교와 사병을 포함해 수천 명이 전투와 부상,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당시 전쟁에서는 전투보다 질병으로 사망한 병사가 많았다. 이는 메모리얼 데이가 단순한 군사적 영웅담이 아니라, 전쟁이 남긴 고통과 상실을 기억하는 날임을 보여준다. 미시간의 메모리얼 데이는 남북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시간 청년들의 이름에서 시작된 기억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와 오클랜드 카운티의 오래된 퍼레이드 전통

미시간 곳곳에는 오래된 메모리얼 데이 퍼레이드 전통이 남아 있다. Ferndale Historical Society 자료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의 메모리얼 데이 행사는 186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언급된다. 폰티액은 1869년, 디어본은 1919년 무렵, 로열오크는 1923년, 펀데일은 1926년부터 퍼레이드 전통을 이어온 것으로 정리돼 있다.

펀데일의 경우 2026년 퍼레이드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99번째 퍼레이드로 소개된다. 메모리얼 데이는 워싱턴DC나 알링턴 국립묘지만의 행사가 아니다. 디트로이트, 폰티액, 디어본, 로열오크, 펀데일 같은 미시간 지역사회도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거리 행진과 묘지 참배, 헌화식을 통해 전몰 장병을 기억해 왔다.

2026년에도 이어지는 ‘작은 마을의 추모’

2026년에도 미시간 여러 지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 행사가 이어진다. 미들랜드 카운티에서는 5월 25일 오전 묘지 참배, 해군 전몰자 추모식, 참전용사 기념비 헌화,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올해 연사는 미 육군 대령으로 30년간 복무한 Laura Varhola다. 콜먼과 샌포드 에서도 조찬, 행진, 기념식이 이어진다.

이런 장면은 미국의 추모 문화가 거대한 국가 행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모리얼 데이는 작은 마을의 거리, 지역 묘지, 학교 밴드의 행진, 참전용사의 묵념 속에서 살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연휴’가 아니라 ‘이름들’

메모리얼 데이는 바비큐와 여행, 세일 행사가 이어지는 긴 연휴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밑바 탕에는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의 이름, 그들을 기다렸던 가족들, 그리고 그 희생 위에 세워진 오늘의 자유가 있다.

한인사회에도 남다른 의미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한인사회에도 단순한 미국 공휴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유엔군의 희생이 오늘날 한국의 자유와 번영과도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메모리얼 데이는 “미국의 추모일”이면서 동시에 “한국 현대사와 이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미시간 주 보훈·국립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미시간에서는 약 22만3,000명이 한국전쟁기에 미군으로 복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1,492명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시간 주 세인트조셉과 디트로 이트의 한국전 참전 기념물은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으며, 그중 341명은 전쟁포로 또는 실종자로 아직도 완전히 귀환하지 못한 이름들로 남아 있다.

메모리얼 데이는 단순히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아니다. 꽃 한 송이, 작은 성조기 하나, 조용한 묵념 속에 미국이 기억해야 할 희생의 이름들이 담겨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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