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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물 아메리카] 치킨 샌드위치의 제왕 ‘칙필레이’ 창업자, S. 트루엣 캐시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이번 주는 최대의 치킨 샌드위치 프랜차이스를 창업한 S. 트루엣 캐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칙필레이(Chick-fil-A)’는 미국 내에서는 세 번째로 큰 패스트푸드 식당 연쇄점이다. 샌드위치 치킨만으로는 단연 1위로 47개 주에 2천300여 개의 식당을 갖고 있다. 칙필레이의 2018년 매출은 총 100억 달러가 넘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의 매상보다 많다.

이처럼 알찬 프랜차이스를 시작한 새뮤얼 트루엣 캐시는 1921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이톤튼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보험 외판원이었던 아버지와 하숙을 치는 어머니의 7남매 중 6번째였다.

캐시가 처음 식당을 시작한 것은 육군에서 제대한 다음인 194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 하퍼빌이라는 곳에서였다. 포드 자동차 조립 공장 부근이어서 공장 직원과 주민들을 상대로 주로 치킨 샌드위치를 팔았다. 워낙 작은 식당이라 식당 이름도 ‘드와프그릴(Dwarf Grill)’, 즉 난쟁이 식당이라고 붙였다.

캐시는 어느 식당보다 맛있는 치킨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압력 프라이어, 즉 튀김기를 개발했다. 뼈 없는 닭고기 가슴살로 치킨을 굽는데 아주 효율적인 기구였다.

캐시는 이 장비를 개발하고 난 다음 식당 이름을 ‘칙필레이(Chick-fil-A)’로 바꾸고 프랜차이스를 출범했다. “우리는 치킨을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치킨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라는 광고로, 닭고기 샌드위치에 관한 한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지아를 중심으로 남부 지방에서 많은 인기를 끈 칙필레이는 계속 여러 지역으로 퍼져 2016년에는 약 1천950개의 체인점을 갖게 됐다. 칙필레이는 70여 년 동안 어떤 매점도 연간 매출이 단 한 번도 줄지 않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칙필레이가 이처럼 알찬 기업으로 발전한 데는 다른 치킨집과는 차별화된 맛이라고 회사 측은 강조한다. 창업자 트루엣 캐시는 칙필레이의 간판격인 음식을 버터를 바르고 토스트 한 빵에 넣어주는 뼈 없는 닭가슴살 샌드위치라고 말한다. 어떤 치킨집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낸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 캐시는 다른 프랜차이스와 다른 가맹 조건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보통 프랜차이스 가맹점 경영을 따내기 위해서는 수십만 달러, 많은 곳은 수백만 달러까지도 필요하게 되는데, 캐시는 1만 달러만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칙필레이 프랜차이즈 가입 경쟁은 대단히 치열해, 해마다 2만 명 이상이 지원하지만 80명 정도만 선정이 된다. 비용이 저렴한 대신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돈이 많은 지원자가 아니라 사업을 잘할 수 있는 지원자인지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회사가 지정한 위치에서 매장 하나만을 맡아 전적으로 운영에 집중해야 하고, 수개월 동안 교육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과거 자산관리나 리더십 부문에서 특출 난 성과가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다.

칙필레는 ‘일하기 가장 좋은 기업’으로도 손꼽힌다. 직원 채용 시에는 결혼, 교회 활동, 지역 사회봉사 등 꼼꼼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캐시는 미국 남침례교도로 무려 50년이 넘도록 주일학교 교사를 할 정도로 교회 봉사에 열심이었다. 캐시에게 성경은 인생의 지침이자 경영의 바탕이었다. 그는 늘 성경은 사업을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며, 우리는 그것을 읽고 그대로 따르는 것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캐시는 그 가르침에 따라 모든 매점은 반드시 주일 날은 문을 닫도록 요구했다. 동성결혼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공표했다. 그러한 경영 방침은 미국 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칙필레이 불매운동에 나서는가 하면 어떤 대학들은 교내에 칙필레이를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칙필레이는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대학 미식 축구 경기 피치볼을 비롯해 여러 대학 연맹 스포츠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캐시는 종업원들에 대한 지도자 장학금 제도를 실시했다. 그는 35년 동안 장래가 촉망되는 직원들을 선정해 총 2천300만 달러를 지원해 주었다. 수혜자는 3만6천 명이 넘는다. 우수한 매니저들에게는 최고급 자동차를 상으로 주기도 했다. 1983년 같은 경우 46대의 고급 자동차를 상으로 주었다.

또한 30여 년 동안 어려운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포스터홈도 여러 개 운영했다. 그런 많은 기여로 캐시는 2008년 뛰어난 자선 활동가들에게 주는 ‘윌리엄 사이먼 상’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캐시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평생 봉사 대통령 상을 수여했다.

60년이 훨씬 넘도록 오직 치킨 샌드위치 식당만을 고집해 온 캐시는 2013년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아들 댄 캐시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은퇴한 바로 다음 해, 그는 타계했다. 향년 93세. 친구였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그의 삶의 모든 부분에는 기독교인의 신념이 스며 있었고, 그의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축복이었다”며 애도했다.

보수적인 경영철학을 고수하면서도 패스트푸드 소비자 만족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칙필레이는 이제 본격적인 국제 무대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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