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현대자동차 정의선,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승진의 의미

그룹 지휘권 쥔 정 부회장…‘정의선의 현대’ 시작됐다

지난 9월18일 국내 유수의 대기업 총수들은 큰 서류가방을 들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양행을 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대북 사업’이라면 꼭 있을만한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잇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총수였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구 회장과 그의 후계자 정의선 부회장 모두 보이지 않은 것이다. 특히 최근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단 정의선 부회장의 불참에 국민들에게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은 어디에 있었을까? 같은 기간 정 부회장은 ‘수입차 관세’라는 위협을 막기 위해 미국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정의선 부회장의 승부수인 셈이다. 이처럼 그룹을 총괄하게된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를 위한 구상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14일 부로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임명된 정의선
돌파해야할 과제 산적…글로벌 변화에 선제적 대응 시급
직면한 문제는 미국 관세…다양한 플랜마련해서 위기 관리
미래기술이 해답…정몽구 ‘2020 프로젝트’ 조기 달성 목표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지난 9월14일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직에 오르면서,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래 경쟁력 강화라는 현대차 설명과 달리 그룹 계열사에서는 사실상 경영 승계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지금도 그룹의 주요 사안은 정의선 부회장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굳이 수석부회장직이란 직책을 만들며 그 자리에 정 부회장을 올린 것은 본격적인 ‘정의선의 현대’의 시작이라는 방증이다.

수석총괄부회장

지난 9월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 14일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을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임명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그룹의 통합적 대응능력과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몽구 회장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대차의 입장과 달리 그룹 계열사는 이번 인사를 사실상 경영 승계 수순이라 보고 있다. 수석부회장에 오르기 전부터 그는 그룹내 중요 사안에 대한 결정권자였다.

현대차그룹 한 계열사 관계자는 “이번 정 부회장의 인사는 어떻게 해석해도 경영 승계라 볼 수 밖에 없는 측면이 강하다”며 “삼성, LG 등 재계에서 3세 경영이 본격화하는 추세라 현대차 역시 이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제철 등기이사로 재선임될 때,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내년 3월(현대모비스)부터 2020년 3월(현대자동차)까지 차례로 정몽구 회장이 맡고 있는 대표이사 임기가 끝난다. 현대건설처럼 정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현대차그룹의 승계가 완료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수석부회장 임명은 ‘3세 경영’ 수순의 발판이라는 설명이다.

정 회장의 외동아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아버지처럼 일찌감치 현대차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199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과장)했던 정 수석부회장은 1년 만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한 뒤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99년 현대차그룹으로 입사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전반을 총괄하게 됐지만 당장 연말 고위 임원 인사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요직에서 이른바 ‘정의선 사람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꾸준히 교체 작업을 진행했었다”고 설명했다.

고(故) 정세영 전 회장이 이른바 ‘포니 정’으로 불리며 현대차를 주도할 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세영 라인을 정몽구 라인으로 교체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다만 부회장 라인은 보직 이동 등 교통정리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인사로 정 수석부회장이 정 회장을 보좌하는 2인자로 올라서면서 기존 정 회장을 보좌하던 일부 부회장은 역할이 모호해졌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는 “‘전략’자가 붙은 조직만 20여개나 될 정도로 업무 중복이 심하다”며 “조직통폐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주요 글로벌 자동차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1월초 미국 소비자가전쇼(CES)를 방문한데 이어 3월 뉴욕모터쇼, 4월 베이징모터쇼를 참관했다. 특히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관련 기술 동향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가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척 로빈스 시스토 CEO 등 미래차 선도기업의 주요 인사들과 접촉한 배경이다. 지난 7일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3세 경영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그는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완성차 제조 능력에 이스라엘 모빌아이 같은 시스템 기술, 앱티브 같은 차량용 솔루션 기술 등을 보완하고, 장기적으로 경영권·의결권을 조정해 장기 생존력을 갖춘 보쉬의 지배구조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이른바 ‘정의선 키즈’ 확산을 위해 기술인력 채용을 대폭 늘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과 관련 깊은 빅데이터·인공지능(AI) 관련 인재는 입도선매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3세 경영’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여전히 건재하며, 이번 인사도 정 회장이 직접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경영 핵심 사안만 선별해 직접 보고하는 식으로 회장 보좌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척 로빈스 시스코 대표가 커넥티드카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돌파해야할 과제

이처럼 수석부회장직을 맡은 정의선 부회장의 앞날은 녹록치 않다. 그룹 내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GBC 건립 이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수입차 관세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규제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하고 공식 발표했다.

이 방안은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한 뒤 분할회사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존속법인을 지주사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을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엘리엇을 포함한 ISS, 글라스루이스 등 해외 의결 자문사들이 잇따라 반대 의견을 내며,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을 결국 철회했다.

특히 지배구조 개편안은 정의선 부회장이 외신과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합당하다는 사실을 피력했기에 그에 따른 타격은 매우 컸다. 따라서 새로이 내놓은 개편안은 주주들의 충분한 이해와 적극적인 지지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5년째 지지부진한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도 정 수석부회장이 풀어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현대차는 2014년 한국전력으로부터 삼성동 부지 7만9342㎡을 10조5500억원에 매입했다. 현대차는 이곳에 높이 569m, 지하 7층∼지상 105층 규모의 GBC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공사금액은 약 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연내 착공에 들어가려 했던 GBC는 지난달 국토부 수도정비위원회의 심의가 보류되며,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 사업은  서울시 건축심의와 교통영향평가·안전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를 모두 마치고, 수도권정비위의 심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내달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권정비위의 심의만 통과하면, 현대차는 곧바로 GBC 건립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GBC 무기한 연기에 대해서는 현대차 측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GBC 건립 무기한 연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내달 열리는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만 통과하면 계획대로 연내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美 문제해결 승부수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수입산 자동차 관세 부과도 현대차에 위협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 방북 순방길도 마다하고 미국행 출장길에 올랐다. 해외 현안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정 수석 부회장의 그룹 경영 구상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이를 해결하러 간 것이다.

현대차그룹 등 업계에 따르면 정의선 수석 부회장은 지난 9월16일 미국으로 출국해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 미국 행정부 및 의회 고위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지난 9월18일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길에 오르지 못했다. 삼성, LG, SK 3대그룹 총수들이 동행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김용환 부회장이 정 수석 부회장 대신 방북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정 부회장이 윌버 로스 미 상무부장관 등 많은 미팅이 잡힌 것으로 안다”며 “가장 핵심 당사자로서 그 일정이 오래전부터 약속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 수석 부회장은 미국행에서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폭탄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업계선 미국 통상문제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 정부가 수입차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두고 날이 갈수록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에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상무부 조사결과에 따라 현행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미국 정부는 수입차 및 부품에 최대 25%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시각도 우세하지만, 고율 관세가 실현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가 입을 수출 타격이 막대할 것이란 우려가 더 크다. 업계선 관세폭탄으로 인해 연간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관세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엔 미국의 수입차 관세폭탄이 실현될 경우 향후 5년간 국내 일자리 65만개가 사라지고 대미 손실액이 약 7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8월 미국과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적용된 쿼터제도 업계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이번 재협상을 통해 미국은 멕시코에서 생산돼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하는 자동차의 역내 부품 비율을 상향하고 최저임금 노동자의 부품 생산비중을 40%로 정하는 요구안을 관철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의 멕시코 공장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강해짐에 따라 그 여파로 수입차에 대한 관세폭탄 부과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 수석 부회장은 미국 통상문제 해결과 함께, 부진한 해외 시장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올해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목표 판매량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현대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33만5000대로, 지난해보다 3.3% 판매 실적이 줄었다. 기아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0.7% 줄어든 29만4000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 시장의 전체 산업 수요는 전년 대비 1.9% 증가한 861만1000대로, 증가하는 시장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업계선 승용차급 수요 부진이 판매량 급감으로 직결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세계적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렌드에 뒤쳐져 제품군을 발 빠르게 꾸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시장 악재로 수익성도 놓쳤다. 상반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1% 감소한 1조6321억원을, 기아차 전년 대비 16.3% 뒷걸음질 친 658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미국시장에선 원화 강세 등 악재가 작용한 동시에 고비용의 인센티브 정책으로 수익성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휘청이다 보니 현대·기아차는 신흥국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해외 권역본부 설립 역시 이 같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지난 6월 현대차는 북미·유럽·인도에, 기아차는 북미·유럽 지역에 권역본부를 각각 설립하고 지난 7월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각 권역본부는 해당 지역의 현지 시장전략·생산·판매 등을 통합 운영하고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대외적인 통상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정 수석 부회장의 사업 구상에도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재계선 이번 미국행이 정 수석 부회장의 경영 시험대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수석 부회장이 이번 미국행을 통해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 문제를 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경우, 그룹 내 입지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그룹 경영 구상도 탄력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해답은 ‘미래 기술’

이로인해 정 수석 부회장은 차량공유,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역량에 집중해 위기를 돌파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정 수석 부회장은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해외 스타트업에 적극적인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은 물론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의 기술 역량을 키우며 미래차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실제로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특명인 ‘2020 프로젝트’의 조기 달성을 넘어 글로벌 최상의 미래차 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16년 “세계 최고 수준의 연비 경쟁력을 확보하라”는 지령을 통해 현대차그룹에서 생산하는 전 차종에 대해 평균 연비 25% 개선을 주문했다. 이는 소형차에서 대형차에 이르기까지 연비개선과 함께 친환경차 생산 목표를 염두해 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프로젝트는 2020년을 겨냥했지만 최근 출시하고 있는 가솔린 차량과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을 살펴보면 이미 80% 이상 목표치에 도달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2020 프로젝트 조기 달성은 현대·기아차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현대차는 글로벌 톱 메이커에 비해 약 50년 이상 뒤늦게 자동차 분야에 진출했지만 이미 수소전지차와 전기차 그리고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차량에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20 연비향상 로드맵’은 현재 목표치에 근접했고 뿐만 아니라 친환경차에 대한 부문까지 확대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간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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